(上) 정부, 반복수급 묵인 사업주에 페널티 부과 추진
실업급여 얌체수령 많은 사업장엔
보험료 0.2%P 할증 방안 검토
2만7천곳 중 5인미만이 대부분
세금 알바 늘려 '메뚜기 실직' 양산
기간제 사용 불가피한 사업장 많아
"얌체족 아닌 소상공인 잡을 판"
정부가 실업급여 반복수급자를 고용한 소상공인에게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소식에 영세 소상공인에게서 터져 나온 반응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앞두고 고용보험기금 건전성을 높이자고 시작한 논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고용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공공일자리를 대거 늘려 취업과 실직을 반복하는 ‘메뚜기 실직자’를 양산해놓고 그 책임을 영세 사업주에게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업주가 실업급여 반복수급 유발?
정부가 반복수급 대책 논의를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말 고용보험제도개선태스크포스(TF)를 재가동하면서다. TF는 공익위원 8명과 노사 2명씩 12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사실상 고용노동부가 주도하고 있다. TF는 정부가 2025년 전 국민 고용안전망 완성을 목표로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늘리기 위해 사전에 기금 건전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회의체다.몇 차례 회의 끝에 TF는 지난달 중순 습관적인 실업급여 반복수급자에 대한 제재 대책을 마련했다. 직전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에 대해 5년 내 3회째 수급 때는 10%를 감액하고 4회째 30%, 5회째 40%, 6회째는 50%까지 수급액을 줄이는 내용이었다. 실업급여는 직전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고용보험료를 내고 비자발적으로 실직했을 경우 보험료 납부 기간과 연령에 따라 4~9개월간 받을 수 있다. 실업급여 하한액은 하루 6만120원(주 40시간 근로 기준), 한 달에 약 181만원이다. 정부 방안대로면 5년 동안 다섯 번 실직하고 여섯 번째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월 90만원가량이다.
하지만 TF 논의 과정에서 일부 공익위원이 반복수급 근로자에 대해서만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초 정부는 근로자에 대한 페널티만 고려했으나 결국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업주에 대한 ‘처벌’ 규정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경감은 없고 할증만 있는 경험료율”
정부가 사업주에게도 페널티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반복수급에 대한 책임이 일부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령 근로자가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권고사직 처리를 요청했을 때 이를 받아주거나 임의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방관했을 것이라는 이유다.정부가 마련한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직전 3년간 해당 사업장 소속 근로자 중 근속 1년 이내 이직해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의 비율이 90%를 넘으면 기존 고용보험료 사업주 부담분 0.8%에 0.2%포인트를 더해 1.0%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장 수는 약 2만7000곳으로, 이 중 5인 미만 사업장(2만4000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실업급여 수령을 방관·유발하는 것보다 근로자 요구를 못 이기거나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며 “특히 계절성 사업 등 기간제 사용이 불가피한 사업장도 많이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 방안”이라고 했다.
마음 급한 정부의 ‘졸속 대책’
정부로서는 기존 고용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 육아휴직급여의 회계 이관 등에 대해 국회를 설득하려면 반복수급 등 기금이 새는 부분에 대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시간에 쫓기는 정부가 객관적인 조사나 합리적인 근거 없이 졸속 대책을 꺼내 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페널티 대상으로 지목한 ‘직전 3년간 1년 미만 근속한 실업급여 수급자 비율이 90%를 초과하는 사업장’ 등이 대표적이다.노동계도 사업주 페널티를 포함한 반복수급 제한 방침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반복수급을 제한해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 있고, 파급효과에 비해 기금 건전성 제고에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1본부장은 “고용보험기금 건전성을 높이려면 잦은 이직을 부르는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하고, 육아휴직급여 등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모성 보호 관련 예산부터 분리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