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이사장(가운데 아래) 등 서울시설공단 임직원들이 지난 22일 실제 사무실을 본뜬 ‘개더타운’ 가상 사무실에서 자산관리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제공
조성일 이사장(가운데 아래) 등 서울시설공단 임직원들이 지난 22일 실제 사무실을 본뜬 ‘개더타운’ 가상 사무실에서 자산관리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제공
자신의 아바타가 가상 사무실로 들어선다. 아바타를 책상 앞으로 움직이면 그 시점부터 근무가 시작된다.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시설공단에서 근무하는 배준희 대리(33)는 이달 들어 매일 이런 방식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배 대리는 “몸은 집에 있지만 실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느낌을 조금은 받는다”고 했다. 그의 회사 생활이 달라진 것은 정보기술(IT) 기업들에서나 시행하는 것으로 알았던 ‘비대면 오피스 실험’이 서울시설공단에서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서울시 안팎에서 ‘얼리어답터’로 유명한 최고경영자(CEO) 조성일 이사장의 ‘실험정신’이 한몫했다.

아바타로 가상 사무실 출근

서울시설공단은 이달부터 ‘개더타운’에 가상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스타트업 개더가 만든 개더타운은 사무실 구조를 그대로 본떠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2차원(2D) 게임처럼 생긴 온라인 가상공간에 실제 사무실처럼 개인 책상, 회의실, 휴게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개인 취향에 맞춘 아바타를 이 공간에 입장시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서울시설공단의 기획조정실·총무처·주차시설운영처는 재택 근무자와 사무실 근무자가 모두 이곳에 모여 일한다.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 중 이처럼 개더타운을 도입해 비대면 근무에 나선 곳은 서울시설공단이 유일하다. 부동산 정보서비스 업체 직방이 올 2월부터 재택근무에 개더타운을 활용한 데 이어 보수적 이미지가 강한 공기업도 비대면 오피스 실험에 나선 것이다. 조 이사장은 “비대면 오피스 시대가 본격화되는 데 따라 업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사무실에 출근한 것과 비슷하게 업무 집중도를 높이면서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수단으로 활용 중”이라고 했다.

서울시설공단은 지난 9일 전략 데스크회의를 시작으로 코로나19 대책회의, 임원회의 등을 개더타운에서 진행했다. 지난 22일엔 ‘자산관리 트렌드’를 주제로 80여 명이 참석한 사내 교육도 가상공간에서 열렸다.

서울시설공단은 직원 간담회, 회의 등에서 솔직한 의견 수렴이나 소통이 필요할 땐 ‘슬라이도’란 앱을 활용한다. 슬라이도는 익명 대화(채팅) 플랫폼이다. 링크나 QR코드를 통해 특정 주제의 대화방을 만들어 익명 기반의 회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난 25일엔 99명이 참석한 공사현장 안전관리 중간점검 회의를 여기에서 진행했다. 공단 측은 “CEO나 임원 눈치 보지 않고 말단 직원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재택근무 한계 보완

비대면 오피스 실험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그동안 ‘줌’이나 ‘구글미트’ 등 화상회의 플랫폼을 활용해 회의 때만 잠깐 얼굴을 보고 말던 재택근무는 소통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 저하, 소통 및 업무 몰입 부족 등이 주요 단점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엔 이 같은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업무 효율을 높일 방안을 찾는 게 큰 ‘숙제’로 부상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를 기점으로 ‘메타버스 오피스’가 확산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VR) 기기 ‘오큘러스퀘스트2’에 가상 오피스 앱 ‘스페이셜’을 탑재했다. VR 기기를 쓰고 움직이면 화면 속에서 3D 아바타가 행동 그대로를 옮기는 식이다.

네이버는 올 1월 입사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해 사옥 투어 등을 진행했다. 재계에선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비싼 임차료를 지급하며 오프라인 사무실을 낼 필요가 없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보기술(IT)업계 한 임원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사무실 출근 개념은 갈수록 줄어들 공산이 크다”며 “비대면 오피스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향후 조직의 주요 운영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