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타버스 담론이 이슈화하는 이유는?
2006년 또는 2007년이었을 것이다. 샘 팔미사노 IBM 최고경영자(CEO)가 ‘세컨드 라이프’라는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에서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모든 IBM 직원에게 아바타를 할당해 세컨드 라이프를 통해 업무를 보게 한다는 기사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당시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세컨드 라이프는 지금 논의되고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의 형상과 서비스 기능 측면에서 다르지 않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 담론이 이슈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수의 혁신기업 CEO가 메타버스를 언급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필자가 이 용어를 처음 들은 것은 작년 엔비디아 GTC(Graphics Technology Conference)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CEO가 “메타버스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을 때다. 곧이어 실리콘밸리 기자단이 진행한 미국 게임엔진 회사 유니티소프트웨어의 존 리치텔로 CEO 화상 인터뷰에서 언급된 말이 신문기사에 인용됐다. “갈수록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눈앞에 볼 수 있는 메타버스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혁신기업 CEO의 인용은 파급력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최근 메타버스 이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과거와 다르게 실질적으로 메타버스 서비스 사용자 기반을 단기간에 확보한 사례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기업이 출현했다는 점이 더 크게 와닿는 게 사실이다. 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Z가 운영하고 있는 ‘제페토’는 출시된 지 3년도 되지 않아 글로벌 가입자를 2억 명 이상 확보했다. 로블록스는 지난 3월 미국 증시에 입성하면서 기업 가치를 약 53조4000억원(6월 23일 기준 시가총액을 한화로 환산)으로 인정받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그룹인 ‘Z세대’(1995~2013년 출생)가 있다는 점이다. 로블록스의 MAU(월간활성 이용자 수)는 약 1억5000만 명인데, 이 중 16세 이하 비중이 67%다. 게다가 이들의 하루 평균 사용시간이 약 2.4시간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메타버스 담론은 일시적 유행처럼 지나가지 않고 하나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상과학(SF) 모험 영화처럼 가상세계에서 친구를 사귀고 놀며, 재화를 취득하고 소비하는 삶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올 것 같다.
(2) 메타버스는 서비스일까? 개념일까?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가상의 신체인 아바타를 빌려 활동한다.전문가들의 메타버스 관련 발표에 자주 인용되는 미국 미래연구기관인 ‘가속연구재단(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이 2007년 발표한 ‘메타버스 로드맵’에선 메타버스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라이프로깅(Lifelogging)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거울세계(Mirror World) △가상세계(Virtual World)다. 이처럼 광의의 개념적 성격이 강하고 AR·VR 속성을 갖고 있다 보니 “기존 AR·VR과 메타버스 서비스는 뭐가 다르지?”라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필자는 기존 AR·VR이 실감형 콘텐츠 제작 기술의 성격이 강했다면, 메타버스는 ‘서비스’ 성격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나를 대표하는 아바타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현실과 유사한 경험을 할 뿐 아니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까지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메타버스의 개념적 관점이든, 서비스적 관점이든 핵심은 ‘실질적인 고객 가치가 무엇인가’다. 메타버스는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와 다른 아바타 간의 소통 및 교류 활동을 통해 연결·몰입·경험이라는 고객 가치를 제공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런 가치는 유의미하다. 이용자 간 상호관계가 형성되고 유대감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서비스 방문 빈도와 체류 시간이 증대될 것이고, 이렇게 확보한 트래픽은 새로운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잠재력을 갖기 때문이다.
(3) 메타버스를 지탱하는 생태계 요소는?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로는 커뮤니티(community), 콘텐츠(contents), 커머스(commerce) ‘3C’로 설명할 수 있다. 커뮤니티는 아바타와 소셜 기능으로 구성된다.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를 통해 다른 아바타와 다양한 놀이와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아바타 유형도 시각적 스타일에 따라 만화적인 스타일과 실사적인 스타일, 귀여운 스타일과 성숙한 스타일, 그리고 나를 닮은 스타일과 이상형 스타일로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로블록스는 레고 스타일의 귀여운 캐릭터 같은 아바타를 서비스한다. 로블록스는 최근 컴퓨터 비전 기술과 AI 딥러닝 기반의 아바타 기술을 보유한 룸.ai(loom.ai)를 인수하면서 “룸.ai의 세계 정상급 얼굴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 아바타에 감정 표현력을 제공함으로써 차세대 아바타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소셜 기능은 대체로 3차원(3D) 가상공간과 음성, 채팅 등 커뮤니케이션 툴과 소셜 피드 기능으로 구성돼 있다. 제페토에서 인기 있는 공간은 코로나 사태로 잘 가지 못하는 학교와 홍대·합정역 등 지하철 공간이라고 한다. 내 아바타가 만나는 3D 가상 공간에서 다른 아바타와 음성과 채팅으로 소통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SNS 계정에 업로드하며 자유롭게 소셜 활동을 한다. 10대들은 학교, 지하철 등 간단한 공간과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아바타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필자도 제페토에 들어가서 기본 아바타로 학교 공간 등에 들어가 봤는데, ‘예전 싸이월드 시절에 미니미 아바타로 받았던 감성과는 확실히 다르구나’라고 느꼈다. 멋지고 개성 있게 꾸민 아바타에게 다른 아바타들이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는 걸 보면 가상세계에서도 인기 있는 아바타는 따로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타깃 고객에게 호감 가는 아바타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가상공간에서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기존의 일방향 전달과 수동적 감상이 아니라 쌍방향 참여 중심, 경험 중심이다. 일례로 가상 캐릭터 기반의 메타버스 공연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스타트업 WaveXR은 가수 앨리슨 원더랜드의 가상 콘서트를 유료 모델로 진행한 바 있다. 가수의 만화 같은 아바타가 가상무대에서 팬들과 소통하는 공연은 기존 공연에서 경험할 수 없던 다양한 상호작용(무대효과 투표, 관객 이름 표시, 버추얼 댄스파티 등)을 통해 가수와 팬의 실시간 소통과 참여라는 차별적 경험을 제공했다. 적극적인 팬들은 버추얼 댄스파티 코너에 화상채팅 줌으로 참여해 집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수도 “당신 오늘 정말 멋지다”라고 호응하는 등 열광적인 소통이 일어났다. 이렇듯 메타버스 안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실시간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통해 보다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커머스 측면에서는 브랜드 협업, 디지털 아이템 판매, UGC 콘텐츠 유통 등 가상경제의 다양한 사례와 규모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구찌, 나이키 등 패션업계 및 엔터테인먼트업계와의 협업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전업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창작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제페토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렌지(Lenge)는 전업으로 아바타용 가상 옷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세 개 축으로 메타버스 생태계가 형성되고 3D 그래픽, 컴퓨팅, 5G,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관련 기술이 함께 발전하고 융합되면서 메타버스가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4) 10대 넘어 다양한 연령층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
닐슨 코리아의 앱 이용자 연령별, 성별 비중(올 1월 기준)을 보면 제페토 서비스 이용자 비중은 7~12세 50.4%, 13~18세 20.6%이고, 성별로 보면 남성 23%, 여성 77%다. 로블록스는 7~12세 49.4%, 13~18세 12.9%이고, 남성 45%, 여성 55%다. 10대 이용자 비중이 60~70%에 달한다.다양한 연령층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기존의 성인 대상 유사 서비스를 단초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VR 낚시게임 ‘리얼VR 피싱’에서는 낚시방을 만들어 아바타로 함께 낚시하면서 음성 채팅 기능으로 대화도 하고 유튜브 동영상도 볼 수 있다. 국내 낚시터를 실사 기반으로 제작해 몰입감이 좋고, 낚시라는 관심사를 매개로 소셜 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몰입감을 제공하는 3D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고, 취미 같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콘텐츠)가 가미되고, 회의나 콘퍼런스 같은 생산적 활동까지 지원한다면 다양한 연령층이 유입되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5) 현재 사용 사례(use case)는?
기사를 통해 여러 사용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 메타버스 사용 사례를 보면 상호작용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공연, 콘퍼런스, 체험 마케팅, 협업 관련 다양한 사례로 이뤄져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영역 중 공연 콘텐츠를 메타버스화해 가상 콘서트를 시도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가상 콘서트를 제공한 사례로 가장 유명한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공연은 포트나이트 게임(18~24세 남성이 핵심 유저, 글로벌 사용자 3억5000만 명) 내에 ‘파티로열’이라는 별도의 공간에서 열렸다. 게임회사들은 게임 유저가 게임만 즐기는 것보다 게임 내 별도의 소셜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소통하며 즐길 수 있다 보니 게임 아이템 판매 외에 광고, 유료 공연 등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고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업종 외에도 고객 대상 가상 체험활동, 브랜드 홍보, 플랫폼 확장 등을 위한 패션, 뷰티, 자동차, 스포츠, 건설 등의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어질 것이다.(6) VR·AR 디바이스는 필수일까? 선택일까?
현재 메타버스 서비스 제공 플랫폼을 보자. 제페토는 모바일로만 제공하고 있고, 북미에서 베타서비스를 제공하는 페이스북의 호라이즌은 오큘러스 VR플랫폼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로블록스는 모바일, PC, VR, 콘솔까지 다양한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제공 서비스의 ‘메인 타깃 고객’ 입장에서의 접근성과 편의성이다.기업 대상 VR 협업 플랫폼으로 유명한 미국 스타트업 스페이셜은 최근 VR 기기 없이도 웹브라우저에서 아바타 기반으로 가상 공간에서 협업할 수 있는 웹버전을 내놨다. 이용자들은 기존에 VR·AR 헤드셋이 있어야만 이용 가능했던 것을 VR 헤드셋 없이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VR·AR 디바이스는 ‘타깃 고객층에 보다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여부에 따라 필수와 선택이 결정된다. 앞으로 페이스북 오큘러스 퀘스트3, 애플의 VR헤드셋 출시가 예상되는데, 성능과 사용성이 대폭 개선된 VR 헤드셋이 새로운 변곡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7) 기업에서 메타버스 활용 방안은?
메타버스가 연일 화제를 모으다 보니 일회성 이벤트가 많아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메타버스가 제공하는 속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해소해 협업과 대규모 행사가 가능하고, 가상 체험 활동으로 브랜드 노출과 경험이 쌓이고, 아바타 기반의 소통으로 고객 참여도와 체류 시간을 증대시킬 수 있는 등 여러 속성을 갖고 있다. 이런 속성을 활용해 마케팅 활동뿐만 아니라 기존 서비스에 메타버스를 접목해 고도화하거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등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다.대규모 가입자를 확보한 SNS 사업자와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기반기술을 보유한 게임회사가 초기 모멘텀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취향에 따른 다양한 메타버스가 출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확장을 고민하는 기업에서는 별도의 세계관이 반영된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할지, 아니면 이미 활성화된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지가 고민해 볼 포인트다.
■ 김민구는
LG유플러스에서 기술 기반 미래 사업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고, 스타트업처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는 서비스인큐베이션Lab을 이끌고 있다. 5세대(5G) 통신 상용화와 함께 실감 미디어 서비스(AR·VR)를 기획하고 론칭한 경험을 보유한 비즈니스 개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