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 후에도 선사가 인도를 거부해 거제조선소에 방치돼 있던 삼성중공업의 ‘애물단지’ 드릴십이 2년 만에 바다에서 시추 작업을 개시한다.

삼성중공업은 이탈리아 시추 전문 선사인 사이펨과 드릴십 한 척에 대한 용선 계약을 29일 체결했다. 용선 기간은 오는 11월부터 2023년 8월까지다. 이번 계약에는 사이펨이 2022년까지 드릴십을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돼 매각 가능성도 열려 있다.

드릴십은 깊은 수심의 해역에서 원유·가스 시추 작업을 할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설비다. 척당 건조 비용만 최소 5억달러(약 5600억원)가 넘는다. 이번에 용선계약을 한 드릴십은 2013년 8월 그리스 선사인 오션리그(당시 트랜스오션)에서 수주했으나 2019년 10월 계약이 해지됐다. 고유가 시절 삼성중공업이 수주·건조한 드릴십들은 최근 몇 년 새 유가가 급락하면서 선주들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서 인도를 거부해 애물단지가 됐다.

업계에 따르면 드릴십의 유가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다. 원유 개발업체는 유가가 이보다 낮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 선사들은 설계 변경 등을 내세워 공정을 고의로 지연시킨 뒤 이를 빌미로 계약을 파기하는 방식으로 건조가 완료된 드릴십 인도를 거부했다. 이렇게 삼성중공업이 재고로 떠안은 드릴십만 5척에 달한다.

삼성중공업은 2013~2014년 2년 동안 PDC와 1척, 시드릴과 2척, 오션리그와 2척의 드릴십 발주 계약을 했다. 5척의 드릴십 계약가는 29억9000만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선주사의 일방적인 계약 취소로 10억달러 수준의 선수금만 받은 채 5척은 악성 재고로 남았다. 드릴십의 장부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삼성중공업의 영업손실에 매년 반영되고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경기 회복 기대와 유가 상승으로 글로벌 에너지기업의 해양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드릴십 매수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며 “나머지 드릴십의 매각도 조속히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진행 중인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드릴십 매각 등 현안이 해소되면 경영 정상화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