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사진=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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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멜로 한을 풀었어요."

tvN '마인' 종영 인터뷰에서 마주한 배우 김서형이 작품을 마친 소감을 묻자 내놓은 첫 마디였다. 극중 성소수자의 절절한 멜로를 설득력있게 그려낸 김서형은 "이런 소재의 좋은 작품을 이전부터 꿈꿔왔다"며 "그래서 더 '마인'을 한다고 했다"고 출연 후일담까지 전했다.

'마인' 세상에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마인'을 지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서형이 연기한 정서현은 재벌가 집안에서 태어나 뼛속까지 '성골'인 효원그룹 첫째 며느리다. 설정만 보면 익숙한 통속극과 막장이 엿보이지만, 김서형의 연기는 '마인'을 고품격 웰메이드 드라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망나니' 남편 한진호(박혁권)를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성소수자라는 자신의 정체성까지 자극적이고 튀는 설정들까지 김서형은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배우 출신 동서 서희수(이보영)와 시모 양순혜(박원숙), 시누이 한진희(김혜화)와의 관계 역시 '막장'이 아닌 연대와 포용으로 세련되고 현실적인 가족애를 선보였다.

'마인'을 집필했던 백미경 작가는 "성소수자라는 설정만 보고도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데 그 어려운 걸 김서형 배우가 해냈다"고 극찬했다.
김서형/사진=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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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호평에도 김서형은 "'마인' 촬영장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아 안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면서 오히려 "20년 넘게 연기를 하면서 제대로 멜로를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게 멜로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분명 멜로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단순한 감정들이 좋았어요. 오랫동안 바라왔던 작품을 끝내서 그래서 이전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 유명 미드, 영화를 보면서 제가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작품이 정말 좋다'라고 생각했고, '나도 저런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10년 전부터 말했어요. 그런 작품을 한국에서 제가 했어요. 소원 풀이했죠. 주변에서 '민감할 수 있다'고 했는데, 전 이거 때문에 한다고 했죠."

'마인'은 편견을 깨는 여성들의 이야기지만, 성소수자라는 정서현의 설정이 공개되기 전까지 재벌 배경 막장극이 아니냐는 편견에 휩싸였다. 초반 서희수와 기싸움부터 메이드 주집사(박성연)를 다그치는 모습까지 막장의 복선처럼 보였기 때문.

김서형은 그래서 더욱 "수지(김정화)를 만나기 전까지 가족들과 갈등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쌓으려 했다"며 "그래야 수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더 극대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서현이라는 인물이 저 속에서 참 외롭고 힘들었겠구나'라고 보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거 같았다"고 말했다.

"감정에 변주를 많이 줬어요. 집안 일들을 몰래 녹음을 해왔던 주집사를 다그칠 때에도 고함을 지르지 않고 말했죠. 서열 1위인데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어요. 다행히 촬영장에서 제 의견이 많이 받아들여졌어요. (이나정) 감독님이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그래서 저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날개를 달고 할 수 있었어요."
김서형/사진=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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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적인 인기를 모았던 JTBC 'SKY캐슬'에 이어 SBS '아무도 모른다', '마인'까지 김서형은 냉철하고 똑 부러지는 인물을 연기해왔다. 이런 김서형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갖는 '편견'에 대해 그는 "거슬리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어쩌겠냐"면서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50년을 함께한 저희 가족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해요. 심지어 스스로도 가끔은 제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죠. 똑 부러지는 김서형은 대본 속 역할이죠. 인간 김서형은 투박해요. 동네에서 슬리퍼만 신고 빨빨거리고 다니고요. 저희 엄마는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널 알아본다'고 하시기도 하는데, 전 '엄마, 그거 편견이야'라고 말해줘요.(웃음)"

그러면서 스스로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개개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에게 좋은 사람과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 이어 "'마인'은 다른 걸 틀리다고 물고 뜯는 작품이 아니라 시청자로 마주했을 때에도 좋았던 작품"이라고 거듭 애정을 드러냈다.

스스로를 '허당'이라고 칭하고, 연기를 하지 않을 땐 "강아지 산책시키고, 밀린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제가 나온 작품도 실시간 방송으로 모니터링하진 못한다"고 고백하는 김서형이었다. 그럼에도 김서형은 자신만의 '마인'으로 연기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저는 화면에서 보여지는 제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서 더 연기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달렸죠. 그럼에도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20년 넘게 이 일을 해왔다는 거예요.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연기했어요. 아마 다른 연기자들도 다 마찬가지일거예요."
김서형/사진=키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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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은 드라마 '파리의 연인', '굳세어라 금순아' 등 히트 작품에 출연했고, 특히 '아내의 유혹'의 주연으로 발탁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 '악녀'로 2017년 칸 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던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모교'에서도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었다.

"내년이면 50대가 된다"고 말했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김서형은 여전히 멜로도, 액션도 어느 장르든 기대감을 주는 배우였다. 김서형은 이런 내공에 대해 "처음부터 성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했다.

"저는 처음부터 정점을 찍은 사람이 아니에요. 한 번이라도 고꾸라지면 '이전 작품은 사람을 잘만났구나', '운이 좋았구나'라는 말이 나오죠. 그래서 늘 간절했어요. 연기에 대한 간절함은 놓을 수 없어요. 30대를 버티려 20대 때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나이 얘기를 자꾸 하는 게 손해라는 걸 알지만, 요즘은 이 나이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가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