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보이드의
   ‘무제TDHFTC’
다니엘 보이드의 ‘무제TDHFTC’
화면을 수놓은 점들이 모여 호주 원주민 무희 복장을 한 소녀의 형상을 이룬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한 그림 위에 풀(glue)로 볼록한 점을 찍은 뒤 그 위에 색을 다시 칠하는 작업을 무수히 반복해 만들어낸 모습이다. 소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화관을 매만지고 매무새를 고치고 있다. 눈빛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아닌, 공연을 앞둔 긴장감만이 감지된다. 호주 원주민과 식민지 역사에 천착해온 작가 다니엘 보이드(39)가 전통 춤 공연을 준비하는 누이의 어릴 적 모습을 그린 ‘무제(TDHFTC)’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보이드의 점묘 그림 24점과 영상작품 1점을 소개하는 ‘보물섬’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풀로 찍은 볼록한 점들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 즉 시각을 의미한다. 보이드는 “국가나 소속 집단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이 모두 다양하다”며 “이처럼 다양한 시각이 모여 세상을 구성한다는 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호주 원주민의 피를 물려받은 작가는 식민지 주민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의 한 장면을 주로 그린다. ‘무제(GGASOLIWPS)’는 1928년 그의 증조부 해리 모스만을 찍은 사진을 화폭에 옮긴 작품이다. 사진에 찍힐 당시 모스만은 영국 과학자 원정대의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탐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모스만은 호주 정부가 원주민 어린이들을 가족과 강제로 분리시킨 정책의 희생자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호주를 정복한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제임스 쿡 선장을 해적으로 표현한다. 호주 원주민에게 쿡 선장은 삶의 터전을 빼앗아간 침략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의 초기 작업 ‘노 비어드(No Beard)’ 연작(2005~2009)이 이런 시각을 담고 있다.

보이드는 “한국, 자메이카 등 호주처럼 식민지 역사를 겪은 국가들에 애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 컬렉터들도 그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린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완판됐고, 이번 전시에서도 작품 상당수가 이미 팔렸다. 전시는 오는 8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