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영업을 일삼는 국내 보험업계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최고경영진의 성과·보수 체계가 수술대에 오른다. 금융당국은 스톡옵션 확대 등 회사의 중장기 성과를 임원 보수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연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국내 CEO 기본급 60% vs 미국은 11%

보험사 CEO 임금, 성과 중심으로 '대수술'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 보험업계,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보험사 단기 실적주의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30일 발표했다.

보험연구원은 이날 회의에서 국내 보험사의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의 보상 체계가 장기 성과를 반영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임원의 총보수 중 성과와 연동되지 않는 기본급 비중이 64.2%로 미국(16%), 영국(47.6%) 등 선진국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CEO만 놓고 보더라도 국내 보험사는 총보수의 59.5%가 기본급이었지만 미국은 11%에 불과했다.

실제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에서 각각 상위 3개 보험사를 살펴보니 해당 CEO들이 지난해 수령한 총보수 가운데 성과와 무관하게 지급된 기본급 비중은 30~60%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58.1%),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52.4%), 김정남 DB손해보험 부회장(50%), 최영무 삼성화재 대표(39.6%),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37.3%) 등이었다. 지난해 성과급이 5600만원에 그쳤던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는 기본급 비중이 93%에 달했다.

금융사 지배구조 감독 규정은 성과보수를 장기간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만 최소 이연 기간이 3년으로 짧다는 것도 한계로 꼽혔다. 임원 성과보수 중 현금보상 비중은 54.6%로 높고, 반대로 주식 또는 주식 연계 방식이 45.3%로 낮아 경영진의 장기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선 임원 성과보수 중 스톡옵션 등 비중이 68%에 달했다. 또 영국과 호주 등은 이연 기간이 최대 7년으로 길고 이 기간 내 장기 성과에 따라 일부 금액을 환수할 수 있는 규정도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연내 개선 방안 마련할 것”

연차보고서에 임원 성과 평가 방식이나 보수 체계가 상세하게 공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개선 과제에 포함됐다. 보험사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임원의 보수 총액을 사업보고서에 공시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산출 방식과 기준은 여전히 ‘블랙박스’에 싸여 있다. 반면 미국 호주 영국 등은 구체적인 성과평가지표, 평가비중, 평가절차 등을 낱낱이 공시하고 있으며, 성과평가 지표별 반영 비중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진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성과보수 비중을 확대하고, 현금 이외 주식 기반 보상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할 경우 책임을 물어 성과보수를 환수하는 방안도 내놨다. 성과평가 시 고객 만족도 등 비재무적 지표 활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문도 제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사의 단기 실적주의로 인해 과도한 출혈 경쟁과 장래 손해율 상승, 불완전판매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경영진 성과평가 및 보수체계, 공시기준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을 연내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성과에 연동한 보수 체계 개편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당국의 과도한 경영 개입을 경계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각 보험사들이 속한 금융지주나 대기업 그룹, 외국계 등 회사별로 사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동일 잣대를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배당 제한에 이어 CEO 보수까지 시시콜콜 정해주려고 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