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 직권남용 혐의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이번 사건의 핵심 인사인 백 전 장관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현 정권 눈치를 본 반쪽짜리 기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檢, 백운규·채희봉 기소 결정

30일 검찰에 따르면 대전지방검찰청은 이날 월성 원전 1호기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백 전 장관과 채 사장, 정 사장을 각각 직권남용 혐의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백 전 장관은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기 위해 산업부 공무원들이 관련 자료 530건을 삭제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월성 1호기 폐쇄 문건을 삭제한 혐의로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A씨와 서기관 B씨, 또 다른 공무원 C씨 등 세 명을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겼다.

채 사장은 2017년 6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근무하는 동안 월성 1호기 가동을 멈추기 위해 산업부 공무원 등에게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검찰은 채 사장이 청와대에 파견근무 중이던 김모 산업부 국장에게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산업부 장관에게 보고한 뒤 확정한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월성 1호기는 가동 연한이 2년 이상 남아 있었지만, 조기 폐쇄를 위해 채 전 비서관이 산업부 공무원을 동원해 원전 운영 주체인 한수원을 압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정 사장은 조작된 평가 결과를 이용해 월성 원전 1호기 가동을 중단토록 하고, 한수원에 1481억원가량의 손해를 입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일부 혐의 수심위로…金총장 직권

검찰은 다만 백 전 장관이 정 사장에게 배임·업무방해를 교사한 혐의에 대해서는 김오수 검찰총장 직권으로 검찰수사심의위를 열어 검찰 외부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의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이 같은 혐의들에 대해서는 대검과 대전지검의 의견이 엇갈리자 검찰 밖으로 공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검찰수사심의위는 법조계·학계·언론계·종교계 등 검찰 외부 인사와 일반 시민이 참여해 중요 사건의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 등을 논의하는 기구다. 수심위 의견은 권고적 효력이 있을 뿐 검찰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날 전격 기소는 2일로 예정된 검찰 인사에서 월성 원전 수사팀이 교체되기 직전 이뤄진 것이다. 당초 검찰에선 “인사 이동이 있기 전에 대검에서 기소 승인이 날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총장이 쉽사리 기소를 결정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전지검이 전체 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백 전 장관과 채 사장, 정 사장 등에게 모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해야 한다는 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으고 이를 대검에 전달하면서, 김 총장이 더 이상 수사팀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 총장이 꺼낸 ‘수심위 카드’는 기소 판단에 대한 짐을 덜기 위한 방편일 것”이라며 “수사팀의 의견을 적절히 받아들이면서, ‘검찰 중립성’을 둘러싼 시비를 피하기 위해 검찰 외부의 의견을 구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월성 원전 1호기 의혹 수사는 지난해 10월 국민의힘이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수사팀인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지난해 12월 월성 원전 자료를 대량 삭제한 혐의로 산업부 공무원 3명을 기소한 바 있다.

안효주/남정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