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
피카소와 어깨 나란히 한 20세기 거장
프랑스 니스에 정서적 유대감 느껴
투명한 햇빛, 푸른 바다, 그리고 젊은 여인
'안락의자와 같은 예술' 펼치고 떠나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앙리 마티스(1869~1954)의 토포필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니스였다. 마티스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예술적 감흥을 얻었는데 특히 니스는 야수파를 이끌었던 그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야수파는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태동한 혁신적 미술 사조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야수처럼 거친 표현기법으로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던 화가 그룹을 경멸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마티스는 대상을 실물과 닮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전통회화의 제작 방식을 거부하고 강렬한 원색과 거칠고 대담한 붓질로 감정을 표현하는 야수파를 창안했다. 미술 역사에서 최고의 컬러리스트이자 색채심리학자로 평가받는 마티스에게 색은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창작 도구였다. 이는 “내 손에 물감 상자를 받은 순간, 나는 천국을 발견했다(…)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마티스의 말에서도 나타난다. ‘색채의 해방’을 선언한 그는 색이 인간의 감정뿐만 아니라 건강, 패션,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예술관을 평생에 걸쳐 작품에 구현했다.
니스가 마티스의 토포필리아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니스의 강렬한 빛과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바다색이 색채를 실험하던 마티스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1916년 마티스는 지중해의 신선한 공기가 기관지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사의 권유로 파리를 떠나 휴양도시 망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중해의 보석으로 불리는 니스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매료돼 애초 계획을 바꿔 니스에 짐을 풀었다.
한동안 파리와 니스를 오가며 그림을 그리던 마티스는 니스의 밝고 투명한 빛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니스의 찬란한 빛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이렇게 털어놓았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어이가 없고,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 황홀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내게 주어진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니스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거의 평생 그곳에 머물렀다.’ 마티스는 니스의 호텔과 아파트를 임차해 마련한 화실에서 니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그리면서 빛과 색의 효과를 탐구했다. 미술사에서는 마티스가 니스에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던 1917~1930년을 ‘니스 시절’이라고 부른다.
니스는 또한 마티스가 꿈꾸던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니스가 마티스 영혼의 피신처였다는 것은 ‘나는 파리에서의 고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숨을 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는 그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삶의 절망과 고통, 비극적 요소가 전혀 스며들지 않은 예술, 그가 평소 입버릇처럼 “내가 꿈꾸는 것은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은 예술”이라고 말했던 예술세계의 실현이 니스에서는 가능했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동양풍 문양으로 장식된 호텔 실내를 배경으로 젊은 미녀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열린 창문을 등지고 앉아 있는 여인’(1922)에는 마티스가 꿈꾸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것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투명한 햇빛과 눈부시게 푸른 바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매혹적인 여성과의 황홀한 조합을 말한다. 이 작품은 색채와 장식성, 관능성의 세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구성한 니스 시절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평온하고 이국적이며 관능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그림은 마티스가 왜 니스에 애착을 느꼈는지, 생을 마감한 1954년까지 왜 니스를 떠나지 못했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찬란한 빛 속에서 마티스는 색의 해방이라는 평생의 숙제를 풀 수 있었다. 또 그가 그토록 갈망한 휴식과 평온, 행복, 기쁨, 사랑의 감정도 누릴 수 있었다. 오늘날 마티스는 니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고 니스의 시미에 언덕에 있는 마티스미술관에는 그와 그의 가족이 니스시에 기증한 작품 450여 점이 전시돼 관객을 맞고 있다. 마티스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에게 니스는 영원한 예술의 토포필리아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