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리가 몰랐던 중앙아시아의 찬란한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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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S 프레더릭 스타 지음
이은정 옮김
도서출판 길
880쪽 | 4만5000원
S 프레더릭 스타 지음
이은정 옮김
도서출판 길
880쪽 | 4만5000원
지명에 들어간 ‘중앙(central)’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오랫동안 중심지 취급을 받지 못해온 중앙아시아 말이다. 중국과 아랍, 유럽의 ‘문명지대’ 사람들에게 중앙아시아는 인식의 소실점(消失點) 근처에 있는, 야만인이나 사는 머나먼 변경일 뿐이었다. 오늘날에도 거대한 사막과 황무지가 펼쳐진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은 오지에 불과하다. ‘중앙’이나 ‘중심’은 가당치도 않은 ‘형용모순’으로 들린다.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는 중앙아시아가 문명 중심지로 군림하던 ‘황금기’를 상세하게 조명하는 역사책이다. 잘 봐줘야 ‘문명의 교차로’에 불과했을 중앙아시아에 ‘지적 허브’의 간판이라니….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이 영 어색하다. 하지만 저자가 내미는 화려한 ‘증거’를 접하고 나면 인식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750~1150년 중앙아시아에서 이뤄진 철학 수학 의학 천문학 화학 생리학의 발전상과 건축, 예술에서 빚어진 성과는 유라시아 내륙 한복판에서 최초의 르네상스가 꽃폈음을 당당하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권두에 등장하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븐 시나와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아부 라이한 알 비루니(비루니) 간에 오간 편지다. 998~999년에 쓰인 편지들에는 또 다른 태양계의 존재 가능성을 비롯해 지구의 타원형 공전궤도, 우주의 작동 원리인 상호작용하는 중력 같은 과학적 논증으로 가득하다. 다윈과 맬서스에 앞서 진화의 가능성과 생물 종의 확산 및 멸종도 예견했다.
이븐 시나와 비루니의 사례를 ‘예외적 천재’의 등장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어마어마한 문화적 에너지가 발산했다. 사마르칸트의 통치자 울룩벡은 후대의 코페르니쿠스보다 훨씬 정확하게 항성년(지구의 공전시간)을 계산했다. 콰리즈미는 최초로 근호를 통해 답을 구할 수 있는 방정식 이론을 내놨다. 오마르 하이얌은 3차 방정식의 기하학 이론을 정립했고, 무리수를 수로 받아들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븐 사흘은 만곡형 거울에 관한 논문을 쓰며 광학의 길을 열었고, 아흐마드 무사는 증기로 작동되는 플루트를 제작했다. 이븐 자카리아 알 라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최초로 홍역과 천연두를 구분했다. 중앙아시아는 “고대 이래로 언제나 각지에서 온 위대한 학자들의 집합소”(시인 루다키)였다.
중앙아시아의 빛나는 학문적·문화적 업적은 인류사의 방향을 바꿨다. 알 파르가니가 지구 둘레 길이를 계산하지 않았다면 500년 뒤 콜럼버스의 항해는 닻을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구면삼각형에 사인정리를 적용한 부즈자니는 대양 항해의 가능성을 열었다. 11세기 메르브에서 부활한 돔과 아치(피슈타크) 건설 기술은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짓는 산파 역할을 했다.
고대 현인들의 사상이 다시 빛을 본 곳도 중앙아시아였다. 메르브에선 고전 그리스어 문헌을 페르시아 궁정 언어인 팔라비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뤄져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유클리드가 되살아났다.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이 있었기에 ‘12세기 르네상스론’의 배경이었던 스페인 톨레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에서의 문예부흥도 가능했다.
‘계몽의 시대’에 중앙아시아는 인도 중국 중동 유럽 등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문명 중심지와 교류했다. 이들 문명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만 서로 접촉할 수 있었다. ‘길목 문명’이 주도권을 십분 발휘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은 탐구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사회를 만들었다. 시간적으로도 고대와 근대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떠맡았다. 아쉽게도 10세기 이후 수피 신비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이슬람의 이름을 앞세워 합리주의의 숨통을 조인 탓에 전성기가 급격히 막을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 중앙아시아가 이뤄냈던 성과에 큰 빚을 졌다. 비록 “나는 소멸하지 않고 세상천지가 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라는 시인 페르도우시의 호언과 달리 그 공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지만…. 책은 인류가 오랫동안 망각했던 중앙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귀중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는 중앙아시아가 문명 중심지로 군림하던 ‘황금기’를 상세하게 조명하는 역사책이다. 잘 봐줘야 ‘문명의 교차로’에 불과했을 중앙아시아에 ‘지적 허브’의 간판이라니….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이 영 어색하다. 하지만 저자가 내미는 화려한 ‘증거’를 접하고 나면 인식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750~1150년 중앙아시아에서 이뤄진 철학 수학 의학 천문학 화학 생리학의 발전상과 건축, 예술에서 빚어진 성과는 유라시아 내륙 한복판에서 최초의 르네상스가 꽃폈음을 당당하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권두에 등장하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븐 시나와 투르크메니스탄 출신 아부 라이한 알 비루니(비루니) 간에 오간 편지다. 998~999년에 쓰인 편지들에는 또 다른 태양계의 존재 가능성을 비롯해 지구의 타원형 공전궤도, 우주의 작동 원리인 상호작용하는 중력 같은 과학적 논증으로 가득하다. 다윈과 맬서스에 앞서 진화의 가능성과 생물 종의 확산 및 멸종도 예견했다.
이븐 시나와 비루니의 사례를 ‘예외적 천재’의 등장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어마어마한 문화적 에너지가 발산했다. 사마르칸트의 통치자 울룩벡은 후대의 코페르니쿠스보다 훨씬 정확하게 항성년(지구의 공전시간)을 계산했다. 콰리즈미는 최초로 근호를 통해 답을 구할 수 있는 방정식 이론을 내놨다. 오마르 하이얌은 3차 방정식의 기하학 이론을 정립했고, 무리수를 수로 받아들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븐 사흘은 만곡형 거울에 관한 논문을 쓰며 광학의 길을 열었고, 아흐마드 무사는 증기로 작동되는 플루트를 제작했다. 이븐 자카리아 알 라지는 임상시험을 통해 최초로 홍역과 천연두를 구분했다. 중앙아시아는 “고대 이래로 언제나 각지에서 온 위대한 학자들의 집합소”(시인 루다키)였다.
중앙아시아의 빛나는 학문적·문화적 업적은 인류사의 방향을 바꿨다. 알 파르가니가 지구 둘레 길이를 계산하지 않았다면 500년 뒤 콜럼버스의 항해는 닻을 올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구면삼각형에 사인정리를 적용한 부즈자니는 대양 항해의 가능성을 열었다. 11세기 메르브에서 부활한 돔과 아치(피슈타크) 건설 기술은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짓는 산파 역할을 했다.
고대 현인들의 사상이 다시 빛을 본 곳도 중앙아시아였다. 메르브에선 고전 그리스어 문헌을 페르시아 궁정 언어인 팔라비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이뤄져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유클리드가 되살아났다.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이 있었기에 ‘12세기 르네상스론’의 배경이었던 스페인 톨레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에서의 문예부흥도 가능했다.
‘계몽의 시대’에 중앙아시아는 인도 중국 중동 유럽 등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문명 중심지와 교류했다. 이들 문명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만 서로 접촉할 수 있었다. ‘길목 문명’이 주도권을 십분 발휘했던 것이다. 그리고 특유의 개방성과 관용정신은 탐구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사회를 만들었다. 시간적으로도 고대와 근대 세계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떠맡았다. 아쉽게도 10세기 이후 수피 신비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이슬람의 이름을 앞세워 합리주의의 숨통을 조인 탓에 전성기가 급격히 막을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 중앙아시아가 이뤄냈던 성과에 큰 빚을 졌다. 비록 “나는 소멸하지 않고 세상천지가 나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라는 시인 페르도우시의 호언과 달리 그 공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지만…. 책은 인류가 오랫동안 망각했던 중앙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귀중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