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상장 대어로 꼽히는 크래프톤이 공모가격을 낮추기로 했다. 이 회사는 고평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존 공모가를 고수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정정 요구를 받자 한발 물러섰다. 상장이 연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분석이다.
금감원 압박에…크래프톤, 공모가 10% 낮췄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이날 공모가를 약 10% 하향 조정한 증권신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지난달 16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을 때 희망 공모가격 범위는 45만8000~55만7000원이었으나 40만~49만8000원으로 내렸다. 공모 물량은 1006만 주에서 865만 주로 줄였다. 이에 따라 공모 규모는 4조6000억~5조6000억원에서 3조4000억~4조3000억원으로 1조2000억원가량 줄게 됐다. 상장 직후 시가총액도 최대 28조8000억원에서 24조4000억원으로 낮아진다. 청약일은 8월 2~3일로 연기됐다.

업계는 크래프톤이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공모가를 하향 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당초 주가수익비율(PER) 45.2배를 적용해 적정 시가총액을 35조원으로 평가했다. 국내 대표 게임회사인 넥슨(22조원)과 엔씨소프트(18조3000억원)를 뛰어넘는 규모다. 기업가치 산정 시 게임 회사가 아닌 월트디즈니(PER 88.8배)와 워너뮤직그룹(38.1배) 등을 비교기업에 포함시켰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크래프톤은 전체 매출에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중국 로열티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이다.

크래프톤은 이번 정정 신고서에서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을 비교기업에서 제외하고 카카오게임즈와 펄어비스를 추가해 기업가치를 재산정했다. 이들의 평균 PER 43.8배를 적용해 적정 시가총액을 29조원으로 산출했다. 업계 관계자는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국내 게임사를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신고서 정정 문제로 상장 시기가 밀릴 수 있다는 부담도 공모가 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해외 투자자에 제공하는 증권신고서에 포함된 재무제표를 작성한 날로부터 135일 안에 상장 절차를 마쳐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135일 룰(rule)’로 불리는 이 규정상 크래프톤은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3월 31일로부터 135일이 지나는 다음달 12일까지는 상장을 마무리해야 한다. 이 기한 내 상장하지 못하면 작년 사업보고서 대신 올해 상반기 재무제표를 제출하고 공모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상장 시점이 9월 이후로 밀릴 수 있다.

공모주시장에선 당분간 상장을 코앞에 둔 기업들이 깐깐해진 금감원 눈치를 보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진성/전예진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