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소설가 심상대님의 산문을 모아 출판한 '갈등하는 신'이라는 책에 쓰인 글을 공유하고자 한다.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어려움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구절 구절 가득하다. 컴퓨터 전문가로서 살아가는 사회인으로 심상대님이 가지는 열정과 책임이 부럽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소설가 심상대님의 글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다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액자에 적힌 붓으로 쓴 글자는 '몽혼부도홍진기'라는 일연 스님의 한시 가운데 한 구절을 우리말로 풀어 쓴 “꿈길에서도 세속을 가지 않는다”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기를 목표로 살아왔고, 이런저런 글을 통해 소위 문학인들은 가난과 몰이해의 질곡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 비해 현실적 번민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홀연히 붓에 먹을 적셔 이러한 구절을 적고, 그 엉터리 글자를 부끄럼없이 액자에 담아 늘 책상머리에 걸어 두는 소이를 보면, 다른 이들보다 공명심이나 허영이 적다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적어도 이러한 다짐을 지님으로 내 삶의 중추인 문학이 나로 인해 그 고귀함을 훼손당하는 일이 없기 만을 바란다. 돌이켜보면 나는 소설가라는 직업인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을 품고 인생을 시작했던 셈이다. 설사 소설가로 살아가는 삶의 내막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천박한 재주로 소설가 비슷한 사람 시늉만 할 수만 있다면 영광으로 여기리라 다짐했다. 옛 소설가 분의 표현대로 “예술가는 별과 같아서 나타나는 그 자리가 곧 성좌의 일부분”이라는 말에 감동했고, 또한 공감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제 소설가 비슷한 것이 된 지도 십여년이 지났고 나이도 사십을 넘기고 보니, 내가 바라는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모양을 성좌의 일부분이라기 보다는 외진 물가에 선 한 그루 활엽수에나 비교한다.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을 지라도 스스로 아름다움을 다하는 한 그루 나무와 같기를 바란다. 봄이 오면 나만의 싹을 틔울 것이요, 여름이 오면 나만의 꽃을 피울 것이요, 가을이 깊어 가면 물든 이파리를 뚝뚝 물결위에 떨구면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흔들흔들 가지를 흔들뿐이다. 지금도 나는 머리 위에 걸린 “꿈길에서도 세속을 가지 않는다”라는 옛 구도자의 시구를 쳐다보면서 죽는 날까지 내 자신의 천성과 문학의 본질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기만을 기원한다. 그 어떠한 질곡이 또한 나를 희롱하더라도, 한때는 내 인생을 통제했고 이제는 내 인생의 동반자인 문학의 고귀함 앞에서 초발심을 버리는 비겁이 없기를 바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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