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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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는 노련한 ‘아웃복서’다. 링 주위를 맴돌며 적의 틈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상대방의 수(手)를 끊임없이 탐색한 뒤, 때가 되면 결정타를 날린다. 쿠팡은 철저한 ‘인파이터’다. 목표가 정해지면 사주경계없이 돌진한다. 애초부터 타협이나 순응 따위는 ‘쿠팡 사전’에 없다.

국내 e커머스(전자상거래) 왕좌를 차지하려는 네이버와 쿠팡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네·쿠 전쟁’의 승패에 따라 한국형 e커머스 플랫폼 수출이라는, 지금껏 누구도 가져보지 못했던 ‘글로벌 트로피’의 향배도 결정된다. 이 싸움에 양보란 없다. 쩐(錢)의 전쟁임은 말할 것도 없고, 여론과 정책을 움직이는 장막 뒤의 암투도 치열하다.

현재 둘의 싸움은 백중세다. 쿠팡은 지난해 약 13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상품 직매입 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1P 쇼핑'에서 거둔 실적이다. 오프라인 대형마트 1위 기업인 이마트(15조원) 매출에 필적한다. 네이버는 상품 중개로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 업체이기 때문에 쿠팡과 외형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상품 유통 채널로서의 외형은 거래금액으로 대략 비교할 수 있다. 네이버는 1위임을 강조하기 위해 네이버의 여러 서비스를 통한 쇼핑 총거래액을 28조원(이하 작년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스토어만으로 범위를 좁히면 지난해 네이버 쇼핑의 외형은 17조~18조원 수준이다. 쿠팡의 외형은 직매입 매출에 쿠팡마켓플레이스에서 이뤄지는 상품 거래액을 합해 대략 22조원으로 추산된다.

거래금액이라는 막연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건 리테일 산업에서 네이버와 쿠팡이라는 e커머스 플랫폼 강자들이 누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느냐다. ‘바잉 파워’라는 측면에선 쿠팡의 힘이 압도적이다. 쿠팡에 일단 물건을 납품하면 소상공인도 일약 전국구로 도약할 수 있다. 쿠팡은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를 앞세워 제조사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 대형 제조사 관계자는 “기존까진 각사가 물류 창고를 별도로 운영했다면 이제는 물류와 재고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쿠팡에 맡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제조사들 사이에서 쿠팡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네이버는 엄밀한 의미에서 상품 유통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검색과 뉴스를 기반으로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하루에 적어도 한번쯤은 유입하게 만드는 거대한 광고 플랫폼으로서 상품 공급업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 신생 제조사 관계자는 “네이버가 선정하는 ‘브랜드 데이’에 들어가기 위해 업체들은 갖은 노력을 다한다”며 “단순히 광고비만으로는 안되고 기부 등 네이버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은 네이버에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함으로써 전국의 소비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네이버의 늪’에 한 번 빠지면 적자의 굴레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말들도 나온다. 한 소상공인은 “소비자들이 클릭할 때마다 광고로 맡겨 놓은 돈에서 일정액이 차감되는 걸 보고 있자면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며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은 네이버로 시작해 유명세를 타면 자사몰로 독립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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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코어’상 쿠팡과 네이버의 승패를 가리기는 만만치 않다. 둘의 우위를 가를 변수는 무엇일까. 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에 대한 ‘담론’ 형성의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쿠팡은 300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사상자 한 명 없이 화마를 이겨냈지만, 신기할 정도로 맹목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참여연대, 민중당 등은 팩트와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주장들로 쿠팡에 집중 포격을 가하고 있다. 쿠팡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외부의 공격에 일일히 대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소비자들을 위한 혁신 과제들의 실행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반(反)쿠팡 진영의 보이지 않는 ‘마타도어’도 쿠팡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는데 한몫하고 있다는 건 불문가지다(不問可知)다. 얼마 전 만난 e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로켓배송이 정말 필요한 것인 지 모르겠다. 아내가 쿠팡 탈퇴한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며 반쿠팡의 정당함을 넌지시 전파했다. 반쿠팡 연대의 폭은 생각보다 넓다. 네이버를 비롯해 쿠팡의 확장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e커머스 경쟁자들 뿐만 아니라 쿠팡에 가격 주도권을 뺏길까 두려워하는 농심, LG생활건강 등의 대형 제조사들, '계급장(자금력)' 떼고 소비자들을 위해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쿠팡에 반감을 갖고 있는 중간 유통상인들이 반쿠팡 연대 세력의 일원이다.

네이버가 쿠팡과 비교해 우위를 갖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네이버는 '게임의 규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중견 재벌'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GIO, 최고글로벌책임자)는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재벌 총수로 지정당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6촌까지 공정위 감시 대상이 된다"며 "평소 친하지도 않던 6촌 형제들이 이런저런 고초를 겪게 되면 총수로선 행동 반경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 롯데쇼핑 등 전통의 유통 강자들도 대형유통업법에 따른 영업 제한, '카트 노조'로 상징되는 노동집단과의 마찰 등을 거치며 '체제 순응형'으로 진화했다.

복서의 세계에서 아웃복서와 인파이트의 우열은 가리기 어렵다.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국내 e커머스의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사각의 링'이라는 엄격한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한 네이버가 쿠팡에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 앞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링의 범위를 무한으로 넓히는 것이다. 로켓배송처럼 소비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끊임없는 혁신만이 쿠팡의 살 길이라는 얘기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