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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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연주회장이 아무리 넓어도 끝없이 퍼져나가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은 아무리 슬퍼도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과 같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노래를 부르고, 과르네리는 말을 한다" -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명품에 에르메스가 있다면, 현악기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활동한 바이올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그의 집안에서 만든 현악기를 통칭합니다.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음색으로 전무후무한 세기의 명기(名器)로 불리죠.

깊고 심오한 소리는 물론 음장이 전 음역에 걸쳐 균형이 잘 잡혀 있는 특성에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라면 꼭 등장하는 악기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진 파가니니부터 타르티니, 비오티 등 천재적 연주자가 사랑한 대표적인 악기로 전해지죠. 특히 파가니니의 경우 그를 시기하는 이들이 '그의 역량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덕분'이라는 말을 만들어내, 파가니니를 화나게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기도 합니다. 당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치가 얼마나 높게 평가됐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죠.

불변의 가치 때문에 제작된 지 3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정경화, 예후디 메뉴인, 안네 소피 무터, 조슈아 벨, 아이작 스턴, 바딤 레핀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악기로 무대에 끊임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2011년 경매서 '172억' 최고가 기록…재현 실험 잇따라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주해보고 싶은 악기인 셈이지만,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악기 수량은 매우 적은 편입니다. 스트라디바리 일가는 바이올린뿐 아니라 첼로, 비올라 등 1000대가 넘는 악기를 제작했는데 현재는 600여대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하죠. 희소성이 큰 데다 맑고 아름다운 소리는 변하지 않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1703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나체즈’. 사진=연합뉴스
1703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나체즈’. 사진=연합뉴스
이를 돈으로 환산한 가치는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2011년 영국 시인 바이런의 손녀가 소유해 '레이디 블런트'라 불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980만파운드, 한화 약 172억원에 팔리면서 바이올린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한 손에 담기는 바이올린의 값이 강남에 자리한 빌딩 가격과 맞먹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스트라디바리우스만의 심오하고도 독특한 음색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이를 밝히기 위해 수십년간 전 세계 여러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 다양한 가설이 등장했습니다. 이 중 최근 업계의 이목을 끌었던 가설이 바로 '곰팡이균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을 만든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은 영국 텔레그래프가 2012년 스위스 연방 물질과학 및 기술연구소의 프란시스 슈바르체 박사 연구진이 나무에 두 종류의 곰팡이가 담긴 배양액을 투입해 명품 바이올린에 적합한 목재를 탄생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슈바르체 박사는 2009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 비결 중 하나가 나무에 번식한 '균류'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험에 착안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연구팀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나무가 '한랭기'인 1645년부터 1715년 사이에 자라면서 밀도는 낮고 탄성률은 높은 성질을 가진 점이 좋은 소리의 원천이라 분석했습니다. 당시 연구팀은 바이올린을 분해한 뒤 나무판의 공명 주파수를 측정해 균의 번식이 뛰어난 음색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디스커버리호 온라인판에 발표하기도 했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진은 현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가문비나무와 시카모어나무에 긴발콩꼬투리 곰팡이 등 2개의 효모균 배양액을 넣어 성질을 변형시킨 뒤, 나무의 밀도를 낮추는 단계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후 가장 적합한 소리를 낼 때 악기를 에틸렌 산화 처리해 균이 더 번식하지 못하도록 제어했죠.


이 결과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을 근접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연구진은 전문가들에게 변형된 목재로 만든 바이올린과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통해 연주한 소리를 구분하도록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대다수가 두 악기의 소리의 차이를 구별해내지 못했다는 결과가 알려지면서 신빙성을 더했죠.

그런가 하면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재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2011년에는 의료용 컴퓨터 단층 촬영(CT) 기술을 활용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복제품이 탄생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BBC 등 외신은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의 방사선학자 스티븐 서 교수와 바이올린 제작자 존 웨들, 스티브 로소가 미방사선학회에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복제품 3점을 정식 보고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죠.

보도에 따르면 세 사람은 CT 기술을 이용해 307년 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나무의 두께와 밀도, 굽어진 정도는 물론 벌레 먹은 구멍과 미세한 틈, 바이올린 줄의 강도 때문에 일어난 손상 등 음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물리적 요소를 정확히 재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연구진은 복제품의 소리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설과 복제 시도에도…스트라디바리우스 가치 '굳건'

이 같은 연구 발표 이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치는 떨어졌을까요. 전혀요. 여전히 국내외 내로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총애하고, 연주자라면 죽기 전 한번 쯤은 손에 담고 싶은 '천상의 악기'로 꼽히곤 합니다.

2011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경매서 사상 최고가를 찍은 사례에서 가치의 불변함은 증명됐죠. 슈바르체 박사가 이미 2009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 비결 중 하나가 나무에 번식한 균류 때문이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바이올린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음색을 뛰어넘었다는 연구 결과를 디스커버리호 온라인판에 발표했음에도 영향은 없었으니 말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복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세계적인 현악기 장인 새뮤얼 지그문토비츠는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악기 제작의 마지막 2%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숙련된 장인의 오랜 경험과 판단"이라고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스트라디바리가 장인 정신으로 직접 한땀한땀 제작한 악기의 가치는 어떠한 기술적 발전으로도 따라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셈입니다.

실제로 그의 노력을 살펴보면, 균 하나로 CT 촬영 한번으로 대체되기엔 억울한 면이 큽니다. 스트라디바리는 1685년부터 1700년까지 15년간 최고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시도한 끝에 독자적인 악기의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악기의 각 부분에 단풍나무, 등나무, 버드나무 등 적합한 재료를 사용하고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f홀의 경사를 날카롭게 해 보다 아름다운 울림을 구현했습니다. 여기에 악기의 표면에는 고품질의 니스를 통해 이중 바니시칠을 해 나뭇결까지 다 보이는, 스트라디바리우스만의 투명한 광택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천상의 음색은 물론 최상의 형태까지 창조하면서 그야말로 '명기'의 자질을 모두 갈아 넣은 셈입니다. 완벽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밤을 새우고 나무를 갈고, 바니시칠을 해댄 스트라디바리의 장인정신이 첨단기술 또는 한낱 화학적 시도로 변형된 목재로 대체될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 허무한 감정이 들 것입니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이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벌였던 대국에서 우리 모두가 느낀 서운하면서도 묘한 기분처럼 말이죠. 사랑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과 같은 인간의 고유 감정을 표현하면서 어떤 이는 희열을 느끼고, 어떤 이는 위로를 받게 되는 게 음악입니다. 그만큼 어떠한 과학의 기술도 범접하지 못하는 마지막 창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인간의 마음인가 봅니다. 300년 역사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숭고한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