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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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영광을 누리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처형됐다. 항간에는 처형되기 전날 그의 머리카락이 하룻밤 새 하얗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이런 속설에서 이름을 따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새치가 급격히 늘어나는 현상을 ‘마리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최근 스트레스로 인해 늘어난 새치를 다시 검게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번 하얗게 센 머리카락은 영구적이라는 기존 정설과 반대되는 연구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이라이프’에 스트레스와 새치의 관계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9세부터 65세 사이의 참가자 14명을 모집해 모발의 색과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해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1년 동안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과 심적으로 편안했던 경험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연구진은 한 달에 모발이 1㎝씩 자란다고 가정했다. 그러고 난 뒤 모발의 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의 양과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를 연결시켜 분석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이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기록한 시기와 머리가 희게 변한 지점이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험에 참가한 30세 아시아계 여성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별거했던 두 달간 자라난 모발 2㎝가량이 희게 변한 것을 확인했다. 이 여성은 이혼한 뒤 심리적으로 안정되자 다시 모발이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다른 참가자인 35세의 백인 남성은 회사에서 줄곧 스트레스를 받다가, 약 2주간 휴가를 다녀왔다. 이 남성의 모발을 분석하자 대부분이 흰색을 띠었지만, 휴가를 다녀온 기간에 자라난 모발은 검은색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마틴 피카드 컬럼비아대 교수는 “스트레스의 여부가 머리카락을 희게 만들거나 다시 검게 할 수 있다는 정량적인 증거를 제시한 첫 연구”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현상의 원인을 분석했다. 흰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검은 머리카락에 비해 유의미하게 많은 단백질이 있었다. 양이 늘어난 단백질의 약 27%는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단백질과 관련이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제공하는 소기관으로, 문제가 생기면 세포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문제가 있는 일부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과도한 흰머리 발생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멜라닌 색소의 분비와 연관이 있다. 머리카락의 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는 멜라닌 소체라는 작은 주머니에 들어 있다. 멜라닌 소체가 모발을 만들어내는 모낭세포로 이동해야 검은 머리가 나올 수 있다. 연구진은 흰 머리를 만드는 모낭세포는 이 과정이 원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대해 모발의 노화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화로 인한 새치까지 모두 돌려놓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피카드 교수는 “새치가 이전의 머리카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발 내 단백질과 색소 등 여러 수치가 일정 기준 이상이 돼야 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이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점점 더 되돌리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