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
김태윤
또 한 소방관이 숨졌다. 쿠팡 물류센터와 비슷한 건물이 경기도권에 우후죽순으로 건설되고 있는데, 설계 및 건설 과정에서 소방당국은 건물의 안전과 방화능력에 대해 건건이 간섭하며 수많은 정보를 요구한다. 건물이 가동된 이후에도 각종 검사와 승인 과정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정보를 요구하곤 한다.

문제는 그런 압박과 정보가 정작 사고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건물을 짓고 운영하는 국민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정보를 요구할 뿐, 실제로 국민을 지키고 보살피는 데는 쓰지 않는다. 군림하고 약취할 뿐 도와주거나 구조하지는 않는 것이다.

축구장 15배 크기의 연면적 12만6000㎡가 넘는 거대한 건물에 엄청난 물량의 인화성 물건이 랙(rack)에 층층이 쌓여 있는 위험한 상황인데 소방관을 왜 투입하는가? 유사시에 탈출할 대피 계획을 세워놓고 투입했는가? 건물 구조와 상황에 대한 수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판단과 전문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일선 소방관이 희생되곤 하는 것이다. 서울 숭례문 화재도 불을 끄지 못했고, 국민 앞에서 의미 없는 분수쇼만 했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목욕탕의 유리가 깨지지 않는다는 걸 작전을 하면서 알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있다.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화재도 완전진화로 착오해 23시간 동안 서울 도심 건물을 태웠다.

도대체 전략도, 정책도, 작전도, 현장능력도 없다. 그저 아름다운 구호와 운이 나쁘면 발생하는 일선 공무원의 희생만 남는다. 책임져야 할 결정권자들은 국민의 허탈함과 좌절감의 그늘에 숨어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 정부와 공공부문 대부분이 사실은 이런 상황이라고 본다. 다만 소방의 실패가 눈에 두드러질 뿐이다.

코로나19 방역대책을 보자.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불안해하는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며 명부 작성이나 QR코드 등록을 해야 한다. 행정처분을 두려워하는 식당 주인의 불안한 눈길은 다만 거기서 그친다. 식당 안에서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큰소리로 담소를 나누는 일이 꽤 많다. 이게 무슨 거리두기인가?

동선을 파악하려는 행정은 강력하게 서 있으나 감염을 예방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은 조장되지 않는다. 행정은 정보를 독점해 국민을 가둬두려고 하지만 실질적인 결과를 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한다. 내부 환기를 조율해 공기 흐름을 방역에 적합하게 하는 방법을 식당에 알려주지 않는다. 손님이 식사하면서도 적절한 방역수칙을 지키도록 유도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방역행정은 있으나 감염 위험은 여전하다.

며칠 전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발표가 있었다. 소득 하위 80%라는 듣도 보도 못한 분류에 따른단다. 발표 후 며칠 내내 기준을 어찌 정해야 할지 이런저런 아이디어와 논란이 흘러나오면서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고가 아파트 소유자는 소득이 낮더라도 제외한다는 컷오프 이야기까지 나왔다. 국민을 갈기갈기 분리하고, 이간질하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와 행정이 구호로 국민을 호도하고, 각종 편 가르기로 여론을 조작하면서, 현장에서의 혼란과 혼동을 초래하고 이에 편승하고 있다. 냉철하고 치밀해야 할 전략은 미사여구만 있는 구호와 홍보 카피로 때우고 있다. 성과와 효율 및 공정성을 지향해야 하는 정책은 선거공학적 분리와 고립책으로 땜질한다. 국민 실생활의 현장은 혼란과 혼동으로 꽉 채워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고 있다.

국민은 피곤하고 잘 모르겠으니 최악의 험한 상황만 피하는 데 급급하다. 구호와 편 가르기와 혼란이 역할을 하니, 국가전략과 정책과 전문적 집행능력은 도외시되는 것 아닌가 싶다. 우리가 왜 이런 정부를 갖게 됐는가? 구호에 현혹됐고, 편 가르기에 선동됐고, 혼란과 혼동에서 성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부를 찾아야 하는가? 국민을 존중하고, 같이 성장하는 파트너여야 한다. 국민을 가두려 하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서 국민의 성찰과 판단의 수준을 높이려고 해야 한다. 재난지원금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을 위한 것이니 피해를 입은 국민의 신청에 따라 자동 지급하면 되는 것이다. 피해가 없는 국민은 신청하지 않으리라고 믿어주면 된다. 우리 국민은 그렇게 믿을 만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