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웃음기도 싹 빠진 부동산 시장 [김하나의 R까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심리·감정 보다는 '이성'으로 돌아가는 시장 분위기
믿음 깨진 연인과도 같은 부동산 시장
매수자들 '돈 된다'는 곳으로 언제·어디든 몰려
믿음 깨진 연인과도 같은 부동산 시장
매수자들 '돈 된다'는 곳으로 언제·어디든 몰려
"부산 연초에 계속 청약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여기는 분위기가 다르네요."(기자) "부산 사람들도 알거 다 알죠. 브랜드에 비싸도 좋은 물건은 무조건 잡지만, 외곽이나 비(非)브랜드는 쳐다도 안 봅니다. 서울에서 '똘똘한 한채', '강남'만 선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같이 우르르 가서 계약하고 그런거 안해요."(현지 부동산 업체)
시장에는 '부동산 민심',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을 보면 정서적인 면은 거의 작용하지 않는 듯 하다. 감정은 남아 있지 않고 '냉철한 판단'과 '이성'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집주인의 태도가 "누가 뭐래도 난 우리 동네 좋아"에서 "우리집 빼고 다 올랐다"고 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에 '감성'은 거의 없고 '이성'만 남았다며 이는 곧 믿었던 '정부와의 이별'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별후 심리를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남녀가 이별을 하면 처음에는 상황을 부인하고, 슬프고 우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상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물론 슬픔의 치유과정에서 또다른 만남을 갖기도 하지만, 이는 오래가기 어렵거나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시장 (참여자) 분위기는 작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집값에 대한 분노, 슬픔, 박탈감 등 감정으로 과잉됐던 시간은 지났다.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은 '뭐가 돈되는 집인지', '내가 가능한 대출로는 어느 집을 살 것인지'를 재단하기 바쁘다. 중개인에게 사정사정하지만 과도하게 매달렸다가는 진상손님으로 '손절'당한다는 걸 알게됐다.
매도자(최근에는 '양도세 납부 예정자'라고 부른다고 한다)나 집주인도 예전같지 않다. 중개인이 '사장님 좀 빼주세요'라는 애교섞인 말이 조금이라도 나올라치면 거래를 끊는다. 매수자나 세입자들의 사정을 얘기해도 어림없다. 오히려 거래에 질척거릴까봐 매매철회를 고려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내놓은대로 조건대로 받아갈 사람이 아니면 매수자도 세입자도 받지 않는 게 요즘 분위기다. 믿었지만 끝내 배신당한 연인은 이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한다리 건너 남의 조롱도, 걱정하는 듯 하면서도 뒷말을 지어내는 이들의 굴욕을 참는 시간까지 참아냈다. '진작 집 사라고 했잖아',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 아직도 그 말을 믿니?' 등이다. 여기서 멘탈이 흔들리면 안된다. 결국엔 내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나를 치유할 사람은 나 자신과 가족·친구들이다. 나를 믿고 대출의 힘을 믿는다. 속내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솔직한 사정을 얘기하고 증여나 자금대여를 요청해야 한다. 친구들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골프약속도 끊어야 한다.
헤어진 연인은 남이 됐지만, 행동이나 말에는 신경쓰인다. 지독히 그리고 오래 사랑했다면 마음 한켠으로는 재회를 꿈꾸기도 한다. SNS를 염탐하거나 지인을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한다. 미련의 한 조각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상대방 또한 냉철하게 자기 삶을 살고 있다면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연인은 내 마음도 모르고 또다른 사랑을 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는데다 사귀는 패턴도 나랑 같다. 그 친구들도 달라진 게 없다. 무던했던 감정이 '화'로 올라온다. 실낱같이 남아 있던 믿음 마저도 산산조각이 된다. 과거의 연인에게 온갖 정내미가 떨어지는 순간이다. 머리를 스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아차, 내가 X 밟았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빼고 다른 건 성공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언급한 지 이제 한달이다. LH사태가 터지고 사과도 하고 장관도 교체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과 홍남기 부총리, 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 등까지 줄줄이 상처를 후벼파고 있다. 규제강화, 보유세 인상, 토지공개념 등이 공약이라고 한다. 부총리와 장관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대출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후회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스쳐간다. 정부 믿고 집 안사고 버텼던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사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별의 아픔은 성숙함과 지혜를 남긴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은 '열정' 보다는 '냉정'의 시대가 됐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법원에는 경매물건이 쏟아졌다. 각종 상권들도 무너졌다. 경매 참여자들을 두고 '누군가의 눈물을 딛고 자산을 축적한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6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104.4%로 역대급 기록을 경신했다. 경매가가 매매시장에서의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강남 빌딩은 매물이 없다. 수년 만에 두세배씩 뛰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1층은 '임대' 표지가 붙어있지만 매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처지를 봐줄 때가 아니다. 내 가슴엔 불신이 심어놓은 피눈물이 고인지 오래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시장에는 '부동산 민심', '부동산은 심리'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을 보면 정서적인 면은 거의 작용하지 않는 듯 하다. 감정은 남아 있지 않고 '냉철한 판단'과 '이성'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집주인의 태도가 "누가 뭐래도 난 우리 동네 좋아"에서 "우리집 빼고 다 올랐다"고 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만난 한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에 '감성'은 거의 없고 '이성'만 남았다며 이는 곧 믿었던 '정부와의 이별'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별후 심리를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남녀가 이별을 하면 처음에는 상황을 부인하고, 슬프고 우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상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게 된다. 물론 슬픔의 치유과정에서 또다른 만남을 갖기도 하지만, 이는 오래가기 어렵거나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시장 (참여자) 분위기는 작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집값에 대한 분노, 슬픔, 박탈감 등 감정으로 과잉됐던 시간은 지났다.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은 '뭐가 돈되는 집인지', '내가 가능한 대출로는 어느 집을 살 것인지'를 재단하기 바쁘다. 중개인에게 사정사정하지만 과도하게 매달렸다가는 진상손님으로 '손절'당한다는 걸 알게됐다.
매도자(최근에는 '양도세 납부 예정자'라고 부른다고 한다)나 집주인도 예전같지 않다. 중개인이 '사장님 좀 빼주세요'라는 애교섞인 말이 조금이라도 나올라치면 거래를 끊는다. 매수자나 세입자들의 사정을 얘기해도 어림없다. 오히려 거래에 질척거릴까봐 매매철회를 고려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내놓은대로 조건대로 받아갈 사람이 아니면 매수자도 세입자도 받지 않는 게 요즘 분위기다. 믿었지만 끝내 배신당한 연인은 이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다. 한다리 건너 남의 조롱도, 걱정하는 듯 하면서도 뒷말을 지어내는 이들의 굴욕을 참는 시간까지 참아냈다. '진작 집 사라고 했잖아',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 아직도 그 말을 믿니?' 등이다. 여기서 멘탈이 흔들리면 안된다. 결국엔 내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나를 치유할 사람은 나 자신과 가족·친구들이다. 나를 믿고 대출의 힘을 믿는다. 속내를 털어놓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솔직한 사정을 얘기하고 증여나 자금대여를 요청해야 한다. 친구들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골프약속도 끊어야 한다.
헤어진 연인은 남이 됐지만, 행동이나 말에는 신경쓰인다. 지독히 그리고 오래 사랑했다면 마음 한켠으로는 재회를 꿈꾸기도 한다. SNS를 염탐하거나 지인을 통해 안부를 묻기도 한다. 미련의 한 조각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상대방 또한 냉철하게 자기 삶을 살고 있다면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연인은 내 마음도 모르고 또다른 사랑을 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있는데다 사귀는 패턴도 나랑 같다. 그 친구들도 달라진 게 없다. 무던했던 감정이 '화'로 올라온다. 실낱같이 남아 있던 믿음 마저도 산산조각이 된다. 과거의 연인에게 온갖 정내미가 떨어지는 순간이다. 머리를 스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아차, 내가 X 밟았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빼고 다른 건 성공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언급한 지 이제 한달이다. LH사태가 터지고 사과도 하고 장관도 교체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떤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들과 홍남기 부총리, 노형욱 국토교통부장관 등까지 줄줄이 상처를 후벼파고 있다. 규제강화, 보유세 인상, 토지공개념 등이 공약이라고 한다. 부총리와 장관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대출 조심하라'고 경고까지 하고 나섰다.
후회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스쳐간다. 정부 믿고 집 안사고 버텼던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사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별의 아픔은 성숙함과 지혜를 남긴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은 '열정' 보다는 '냉정'의 시대가 됐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법원에는 경매물건이 쏟아졌다. 각종 상권들도 무너졌다. 경매 참여자들을 두고 '누군가의 눈물을 딛고 자산을 축적한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6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104.4%로 역대급 기록을 경신했다. 경매가가 매매시장에서의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강남 빌딩은 매물이 없다. 수년 만에 두세배씩 뛰는 물건이 수두룩하다. 1층은 '임대' 표지가 붙어있지만 매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의 처지를 봐줄 때가 아니다. 내 가슴엔 불신이 심어놓은 피눈물이 고인지 오래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