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 후 반년…고소사건 처리 '하세월'
지난해 8월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직장인 A씨는 이달 초 1년여 만에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1년 동안 그가 조사받은 건 지난달 말 고작 한 번. 그동안 사건은 경기 A서→B지검→C지검→서울 D서로 네 차례 이송됐다. 담당 수사관은 조사를 받기도 전에 세 번 바뀌었다. A씨는 “조사 한 번으로 불송치할 사건을 왜 1년 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이 부여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제도 안착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일선 경찰관은 사건이 쏠려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수사 서비스 이용자인 시민들은 늦어지는 수사와 복잡한 고소 절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검찰 개혁’이란 명분으로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검찰 힘 빼기’에 매몰되면서 수사 서비스 품질만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지부진해진 사건 처리

올해 1월 1일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은 1차 수사 종결권을 쥐게 됐다. 이전에는 경찰이 사건을 수사해 기소 혹은 불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넘겨야 했고, 최종 판단은 검찰이 했다. 혐의점이 미비하면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했다. 이제는 경찰이 사건을 종결할 권한을 갖게 됐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와 경찰공무원 범죄로 축소돼 경찰의 수사 범위가 대폭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수사 범위와 권한에 비해 인력 충원이 더딘 탓에 일선 경찰관은 업무 과중을 호소한다. 최근 시민단체의 고소·고발 사건이 급증하면서 서울 일선서 사이버팀은 수사관 1명이 40~50건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일선서 B경정은 “송치든 불송치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의견서를 써야 해 의견서 작성이나 수사기록 복사 등 부수적인 업무가 늘었다”고 말했다.

업무 과중은 고스란히 사건 처리 지연으로 이어진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고소 대리하고 있는 사건 중 1월에 수사를 끝내놓고 6개월째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경찰에 두 차례 진정서도 냈지만, 검찰 송치 결정이나 무혐의 결정 등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檢 보완수사 요구 5.6%포인트 늘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도 사건 처리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검찰의 보완수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이뤄진다. 주로 추가 혐의점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보강하거나 사실관계를 추가로 확인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수사권 조정 이후 크게 늘었다. 경찰은 올해 1~6월 32만3056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 가운데 9.7%(3만1482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건 중 보완수사 요구가 있던 사건이 4.1%인 것과 비교하면 5.6%포인트 늘었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사가 부실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가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이전에는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 조치할 수 있던 부분도 경찰에 요구하게 되면서 수치가 늘었다”며 “검사가 공소 제기와 유지에 집중하면서 경찰수사 기록을 더 엄격하게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한 법조인은 “경찰은 사건의 최종 종결권은 검찰에 있다고 주장하고, 검찰은 경찰이 1차 종결권을 갖고 있다고 서로 공을 넘기면서 수사권 조정 이후 형사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주체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길성/안효주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