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북부 세네카호수의 수온이 치솟고 있다. 그 배경에 암호화폐 채굴기업이 자리잡고 있다고 NBC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뜨거운 욕조를 연상케 할 만큼 수온이 높다 보니 물고기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녹조 현상이 잦아졌다고 한다.

주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세네카호수의 수온은 겨울에는 21.1도, 여름엔 최고 36.7도까지 상승하고 있다. 종전엔 겨울보다 따뜻한 3~4월에도 수온이 7.8~12.2도 정도였다. 수온이 급격히 올라간 것은 수년 전 그리니지제너레이션이란 비트코인 채굴업체가 들어선 이후 시작됐다. 8000대 이상의 고성능 컴퓨터를 1년 내내 하루 24시간 가동하면서 엄청난 열을 호수로 뿜어내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암호화폐를 채굴하기 위해선 복잡한 수학 연산을 풀어야 하며 막대한 전기를 소모한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는 쉴 새 없이 열을 뿜어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따르면 암호화폐 채굴에 들어가는 전력은 연간 129TWh(테라와트시)로 칠레와 스웨덴이 1년간 쓰는 전력량보다 많다. NBC는 “화폐는 가상이지만 소모하는 전력과 화석연료는 진짜”라고 했다.

그리니지 공장은 2011년 문을 닫은 호수 옆 석탄발전소 부지에 들어섰다. 이 회사는 2014년 건물과 부지를 통째로 인수한 뒤 천연가스발전소로 개조했고, 2017년부터는 자체 생산한 전력으로 비트코인을 캐왔다. 회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컴퓨터 한 대당 2869달러의 비용을 들여 1186개의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비트코인 시세가 개당 약 3만4000달러란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이익을 본 셈이다. 사모펀드 아틀라스가 최대주주인 이 회사는 연내 뉴욕증시에도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승승장구해온 이 회사의 최대 걸림돌은 여론이다.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공장 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주의회는 발전소를 개조해 암호화폐를 채굴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제프 커트 그리니지 최고경영자(CEO)는 “공장 내 모든 시설은 연방 및 주정부 환경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미국 내 암호화폐 채굴사업은 갈수록 번성하고 있다. 중국에 집중됐던 채굴업체들이 단속을 피해 미국으로 잇달아 옮겨오고 있어서다. 전기료가 저렴하고 환경 규제가 적은 텍사스, 테네시 등이 주요 타깃이다. 환경단체 세네카가디언의 이본 테일러 부대표는 “값싼 전기로 암호화폐를 캐는 건 끔찍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