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학력·학벌주의 비판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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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 법안 2건(차별금지법, 평등법 제정안)이 지난달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 명 동의를 얻으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절차적으로 바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되면서 그동안 속도가 붙지 않았던 관련 입법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차별금지법의 경우, 성별·장애·나이·언어·인종·성적 지향 등 모두 23가지 항목에 걸쳐 차별을 금지해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광범위한 권리구제를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여러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그중에서도 '학력'(대졸, 전문대졸, 고졸 등)과 '고용형태'(통상근로, 단시간근로, 기간제근로 등)에 따른 차별금지가 상당한 혼란과 진통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기업 채용 등 고용시장에서 과연 '부당한 차별'과 '합리적 이유가 있는 구별'을 법리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가려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곧 '신분'이고, 같은 신분에 속한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행이 차별과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인식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학력'이 아닌 '학벌'에 의한 차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대학 서열이 매겨지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직장 내 신분이 갈린다며 이른바 '학벌주의'에 대한 날 선 반감과 비판까지 꿈틀댈 수 있다. 같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 간의 연고주의, 다른 학벌은 배제하는 차별주의, 학력과 학벌을 개인의 업무능력과 동일시하는 유사 능력주의 등이 직장 내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인식이다.
객관적 검증이 쉽지 않은 이런 문제를 법정에 들고 와 피해 구제를 요구할 경우, 법원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숱하게 생겨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여러 방면의 가치를 '특정 학교 졸업'이라는 단순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이를 근로 현장에서 교묘하게 불평등과 차별을 조장하는 식으로 활용했다고 근로자가 주장하면 어쩔 것인가. 학력주의는 물론, 학벌주의가 자신에게 '낙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또 다른 문제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측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며 법적 쟁송에 나설 경우, 그 입증책임을 원고가 아닌,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피고(예, 고용주)에게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 채용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기업들은 우수 인재를 선별하고 적재적소 배치를 위한 '합리적 구별'이었을 뿐이란 점을 제소 당할 때마다 법정에 나가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부재로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정책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개별 법률상의 차별금지 규정에 호소해야 했던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법적 강제력이 확보되지 않아 사실상 처벌과 계도에 한계가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지우는 법의 일반 원칙에서 보면 최근의 과도한 반(反)기업 정서와 입법규제가 차별금지법을 통해 다시 나타난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기업의 채용, 승진, 임금 등 인사·노무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연 이들 법안에 '학력'과 '고용형태'를 명기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포괄적 기본법 제정의 취지라면 차별금지 대상 중 ' OOO 등' 정도에 학력과 고용형태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비생산적인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법적 안정성도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한 권리구제는 구체적 건별로 법원의 판단을 구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정 권고'라는 강제력 약한 수단밖에 없었던 한계는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서도 준사법적 판단을 구했던 과거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는 A은행이 개인금융 및 기업금융 부문 정규 직원을 모집하면서 지원자격을 '4년제 정규대학 졸업 또는 동등 학력 이상 소지자'로 제한한 것은 고용 차별이라 판단했다. A은행 주장처럼 개인·기업 금융 업무에 경영학, 법학, 회계학 전공자만 채용하고 있지 않고, 핵심직무라고 해도 입사 후 일정 경력을 쌓은 뒤 배치되는 게 일반적이며, 이 은행의 직무기술서상에 자격요건을 4년제 대졸자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한마디로 합리적 기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해 이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예, 고졸자)의 응시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에 학력에 의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학력별로 직급을 달리해 모집한 것도 출발선 자체가 달라지고, 능력을 키워도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채용 과정에서 학교별 서열을 매기고 그에 따른 가중치나 가산점을 주는 것도 학력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선진 각국 입법례가 많다는 점에서 제정 필요성은 없지 않다. 다만,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현재 법사위에 올라 있는 법안들이 몰고 올 문제는 무엇이고, 득에 비해 실이 크지 않은지 좀 더 디테일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차별금지법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막연한 학력·학벌주의의 비판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욱 그렇다.
장규호 논설위원
여러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그중에서도 '학력'(대졸, 전문대졸, 고졸 등)과 '고용형태'(통상근로, 단시간근로, 기간제근로 등)에 따른 차별금지가 상당한 혼란과 진통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기업 채용 등 고용시장에서 과연 '부당한 차별'과 '합리적 이유가 있는 구별'을 법리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가려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회의적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곧 '신분'이고, 같은 신분에 속한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행이 차별과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인식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학력'이 아닌 '학벌'에 의한 차별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대학 서열이 매겨지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직장 내 신분이 갈린다며 이른바 '학벌주의'에 대한 날 선 반감과 비판까지 꿈틀댈 수 있다. 같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 간의 연고주의, 다른 학벌은 배제하는 차별주의, 학력과 학벌을 개인의 업무능력과 동일시하는 유사 능력주의 등이 직장 내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인식이다.
객관적 검증이 쉽지 않은 이런 문제를 법정에 들고 와 피해 구제를 요구할 경우, 법원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숱하게 생겨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여러 방면의 가치를 '특정 학교 졸업'이라는 단순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이를 근로 현장에서 교묘하게 불평등과 차별을 조장하는 식으로 활용했다고 근로자가 주장하면 어쩔 것인가. 학력주의는 물론, 학벌주의가 자신에게 '낙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면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또 다른 문제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측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며 법적 쟁송에 나설 경우, 그 입증책임을 원고가 아닌, 차별했다고 지목받은 피고(예, 고용주)에게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업 채용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기업들은 우수 인재를 선별하고 적재적소 배치를 위한 '합리적 구별'이었을 뿐이란 점을 제소 당할 때마다 법정에 나가 설명해야 한다.
그동안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부재로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정책기본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개별 법률상의 차별금지 규정에 호소해야 했던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법적 강제력이 확보되지 않아 사실상 처벌과 계도에 한계가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지우는 법의 일반 원칙에서 보면 최근의 과도한 반(反)기업 정서와 입법규제가 차별금지법을 통해 다시 나타난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기업의 채용, 승진, 임금 등 인사·노무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연 이들 법안에 '학력'과 '고용형태'를 명기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포괄적 기본법 제정의 취지라면 차별금지 대상 중 ' OOO 등' 정도에 학력과 고용형태도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비생산적인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법적 안정성도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한 권리구제는 구체적 건별로 법원의 판단을 구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정 권고'라는 강제력 약한 수단밖에 없었던 한계는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서도 준사법적 판단을 구했던 과거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는 A은행이 개인금융 및 기업금융 부문 정규 직원을 모집하면서 지원자격을 '4년제 정규대학 졸업 또는 동등 학력 이상 소지자'로 제한한 것은 고용 차별이라 판단했다. A은행 주장처럼 개인·기업 금융 업무에 경영학, 법학, 회계학 전공자만 채용하고 있지 않고, 핵심직무라고 해도 입사 후 일정 경력을 쌓은 뒤 배치되는 게 일반적이며, 이 은행의 직무기술서상에 자격요건을 4년제 대졸자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한마디로 합리적 기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해 이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예, 고졸자)의 응시기회를 박탈하는 것이기에 학력에 의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학력별로 직급을 달리해 모집한 것도 출발선 자체가 달라지고, 능력을 키워도 격차를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채용 과정에서 학교별 서열을 매기고 그에 따른 가중치나 가산점을 주는 것도 학력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선진 각국 입법례가 많다는 점에서 제정 필요성은 없지 않다. 다만,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에서 현재 법사위에 올라 있는 법안들이 몰고 올 문제는 무엇이고, 득에 비해 실이 크지 않은지 좀 더 디테일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차별금지법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하고 막연한 학력·학벌주의의 비판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욱 그렇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