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에 "건물명 한자·영어로 써봐라" 갑질한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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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숨진 청소노동자 A씨(59)가 인격모독 등 직장 내 '갑질'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 안전관리팀이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관계 없는 필기시험을 치르게 하고 점수를 공개하며 모욕을 줬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관계 없는 필기시험을 치르게 했다. 지난달 9일 노동자들이 푼 시험지에는 ‘919동의 준공연도’, '조직이 처음으로 개관한 연도' 등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문제가 나왔다. 노조는 "팀장은 시험 점수를 공개하며 50~60대 여성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시험은 6월 초부터 세 차례 치러졌다.
숨진 A씨와 함께 근무한 청소노동자 B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악학생생활관'을 한자와 영어로 쓰라는 시험 문제를 내고 누가 몇점을 맞았는지 공개했다"며 "너무 당혹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다른 청소노동자 C씨도 "나는 글씨를 잘 모르고 배우지도 못했는데, 너무 화가 났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노동 환경도 열악했다. 숨진 A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오래된 건물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A씨는 925동 전체를 혼자 담당했다. 대형 100L 쓰레기봉투 6~7개를 매일 계단으로 날라야 했다. 코로나19로 기숙사에서 나오는 쓰레기 양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들으면서 기숙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당들이 밤 10시까지만 매장을 열자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학생도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노조는 "쓰레기 양이 증가하며 업무 강도도 높아졌지만 서울대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달 26일 밤 11시경 925동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해 기숙사 청소 등의 업무를 한 후 낮 12시에 퇴근할 예정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18분에는 동료와, 11시 48분에는 딸과 통화했다. 이후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A씨의 남편이 밤 10시경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문순 노조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고인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파열”이라면서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유족과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남편인 이홍구씨는 이날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지 10일이 지났는데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며 "학교에 꼭 요청하고 싶다. 근로자는 일하러 출근했지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 근로자가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기숙사 준공연도는?"...필기 시험 점수로 망신 줘
7일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기숙사 안전관리 팀장 등 서울대 측의 부당한 갑질과 군대식 업무 지시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고인의 죽음은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사회적 죽음"이라고 주장했다.노조에 따르면 서울대는 청소노동자들에게 업무와 관계 없는 필기시험을 치르게 했다. 지난달 9일 노동자들이 푼 시험지에는 ‘919동의 준공연도’, '조직이 처음으로 개관한 연도' 등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문제가 나왔다. 노조는 "팀장은 시험 점수를 공개하며 50~60대 여성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시험은 6월 초부터 세 차례 치러졌다.
숨진 A씨와 함께 근무한 청소노동자 B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악학생생활관'을 한자와 영어로 쓰라는 시험 문제를 내고 누가 몇점을 맞았는지 공개했다"며 "너무 당혹스러웠고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다른 청소노동자 C씨도 "나는 글씨를 잘 모르고 배우지도 못했는데, 너무 화가 났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볼펜 없다고 감점, 작업복 입었다고 감점
노조에 따르면 안전관리팀장은 매주 한 차례 청소노동자 회의 때마다 볼펜과 수첩을 가져오도록 했다. 가져오지 않은 근로자의 인사평가에서 1점을 감점했다. '회의 드레스 코드'도 지정했다. "남성은 정장 또는 남방에 멋진 구두, 여성은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참석하라는 지시였다. 청소노동자들이 하는 업무에는 적합하지 않은 복장이었다. 근무시간인 평일 오후 3시 반부터 진행되는 회의에 청소할 때 입는 작업복을 입고 참석하면 역시 또 인사평가에서 1점을 감점했다.노동 환경도 열악했다. 숨진 A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오래된 건물로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A씨는 925동 전체를 혼자 담당했다. 대형 100L 쓰레기봉투 6~7개를 매일 계단으로 날라야 했다. 코로나19로 기숙사에서 나오는 쓰레기 양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들으면서 기숙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식당들이 밤 10시까지만 매장을 열자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학생도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노조는 "쓰레기 양이 증가하며 업무 강도도 높아졌지만 서울대 측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지난달 26일 밤 11시경 925동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해 기숙사 청소 등의 업무를 한 후 낮 12시에 퇴근할 예정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18분에는 동료와, 11시 48분에는 딸과 통화했다. 이후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A씨의 남편이 밤 10시경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 혐의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문순 노조 서울본부 법규정책국장은 “고인의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파열”이라면서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유족과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하러 출근했지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다"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에는 청소노동자가 에어컨과 창문이 없는 휴게실에서 폭염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대 재학생인 이재현 '비정규직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대표는 "2019년 공대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한지 2년이 다됐는데 서울대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며 "이런 학교에서는 서울대 학생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이회 민주노동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공동위원장도 "2019년 이후 서울대는 휴게실에 에어컨도 달고 창도 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며 "에어컨을 단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고,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고인의 남편인 이홍구씨는 이날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지 10일이 지났는데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제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근로를 이어가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서 섰다"며 "학교에 꼭 요청하고 싶다. 근로자는 일하러 출근했지 죽으러 출근하지 않았다.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배려해 근로자가 꼭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