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소금쟁이와 환쟁이
젊은 시절에 들은 이야기인데 시대와 나라, 인물까지도 가물가물하나 대충 이런 내용이다.

한 나그네가 전국을 유유자적 여행하다가 우연히 염전을 지나게 됐는데, 유독 한 소금장수가 다른 소금장수와는 달리 손이 곱고 깨끗한 걸 보게 됐다. 하도 궁금해 물어보자, 소금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손도 거칠어지고 해서 나름 연구한 약을 바르고 있다고 했다. 그 나그네는 무릎을 탁! 치며 그 비법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 갔다. 그리고는 그 비법을 들고 수군 사령부를 찾아가 수군들이 겨울에도 손이 트지 않는 명약을 가져왔다며 흥정인지 거래인지를 했고, 결국 나중에는 수군통제사라는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서야 문득 그 소금장수가 생각이 나서 고마움을 표시하려 부하들을 대동하고 그 염전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나이만 더 들었을 뿐, 똑같은 모습으로 염전 일을 계속하고 있더라는 걸로 이야기는 끝난다. 같은 물건이라도 운용의 묘로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였을 것이고, 결국 그 소금장수는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한 20년쯤 흐른 지금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순간 화려하게 빛나는 것보다는 희미하더라도 꾸준하고 지속적인 것에 박수를 보내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 소금장수를 화가로, 나그네를 갤러리로 한번 바꿔 봤다. 작품의 예술성과 장래성을 단번에 알아본 갤러리에서 그 화가의 그림을 죄다 산 후, 널리 알리고 가치도 높이고 해서 갤러리가 큰돈을 벌었다. 세월이 지나서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준 화가가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갔을 때, 그 화가는 나이만 더 들었을 뿐 여전히 그때처럼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는 구도 말이다.

딱 떨어지는 비교는 아니겠지만 이번에는 의문의 1패가 아니라 고민할 것도 없이 쉽게, 당당한 1승이라고 여겨지는 걸 봐서 내 관점은 물론이고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자기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고 묵묵히 잘살고 있던 소금장수에게 준 1패는, 늦었지만 취소하고 오히려 1승을 안겨 주고 싶다.

소금장수는 한때 소금쟁이라고 불렸고 화가는 환쟁이라고 불렸다. 뒤에 쟁이라고 붙인 건 낮춰 부르던 말이었겠지만, 업으로 삼고 있는 그 한 가지에만 몰두해 숙련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 ‘쟁이’라는 말을 요즘 말로 바꾸자면 전문가, 선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우리는 이제 이런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한때 풍각쟁이라 불렸을 ‘BTS’의 경우를 보면 더 이상 설명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때 소금쟁이에게 환쟁이로서 그렇게 모른 척 1패를 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선수끼리 말이다. 반성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은 저염식이고 뭐고 상관없이 소금을 좀 더 넣고 짜게 먹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