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어 다룬 차차기작 애니메이션, 2025∼2026년 완성 기대
봉준호 "스트리밍 시대에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은 7일(현지시간) 스트리밍 플랫폼이 부상하더라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봉 감독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전날 개막한 제74회 칸 국제 영화제의 관객 소통 행사인 '랑데부 아베크'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영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트리밍도 영화를 보는 좋은 방법"이라면서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극장은 소중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웅장한 음향, 관객의 집단 경험도 극장의 장점이지만 가장 강력한 매력으로는 영화관에서는 영화를 중간에 멈추거나, 이탈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영화를 극장 밖에서 보면)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잖아요.

보다 말고 다른 짓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극장이라는 곳에는 감독이 만든 2시간이라는 리듬이, 하나의 시간 덩어리가 존재해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영화를 틀겠다고 약속돼 있고 관객은 그걸 존중하죠."
만약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영화 한 편을 본다고 하면 외부에서 자극이 있을 때마다 영화를 중단할 테고, 그러다 보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봉준호 "스트리밍 시대에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
봉 감독은 "지금은 스트리밍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DVD, 블루레이와 같이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영화 매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이리시맨'을 만든 미국 영화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주치의에게 신작을 봤냐고 물어봤더니 "하루에 15분씩 일주일째 보고 있다"는 '웃기면서도 슬픈' 답변을 들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봉 감독은 "이런 부분이 스트리밍의 참 안타까운 지점"이라면서도 모든 스튜디오에서 제작을 거부한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옥자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저기서 거절을 당했는데 넷플릭스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감독에게 100% 통제권을 줬거든요.

묘하게 모순적인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
봉 감독은 슈퍼돼지 옥자와 산골 소녀 미자의 우정과 모험을 다루며 동물과 생명,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비판적 의식을 담아낸 영화 '옥자'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했다.

당시 극장용 영화가 아닌 스트리밍 영화의 칸 영화제 초청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결국 2018년부터 넷플릭스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없게 됐다.

봉준호 "스트리밍 시대에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
심해어를 소개하는 프랑스 과학 서적에서 영감을 받아 차차기 작으로 준비 중인 애니메이션은 늦어도 2025년, 2026년에는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사 온 아내가 너무 아름답다고 보여준 사진들에 감명을 받고 2∼3년 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고 올해 1월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봉 감독이 요새 주목하는 한국 영화 감독으로는 2020년 '남매의 여름밤'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등을 받은 윤단비를 꼽았다.

봉 감독은 "한국 영화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기 전에 한국에서 하나하나의 소중한 필름메이커들이 나와주고 있다"며 "최근 새로운 한국 영화가 궁금하다면 젊은 독립영화 감독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과 '마더'(2009)를 흑백으로도 만든 이유를 설명하다가는 어렸을 때 색약 판정을 받은 적이 있어 '영화를 못 만들면 어떡하나 걱정한 적도 있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평생 흑백 영화만 찍으면 되지, 하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며 성인이 된 후 정상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나 색약 때문에 영화 학교에 떨어질까 봐 색맹 검사 책을 사다 놓고 연습했다고 한다.

봉준호 "스트리밍 시대에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
1시간 20분 동안 400명이 넘는 관객을 만난 봉 감독은 칸 영화제 주최 측이 숨겨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그의 칸 영화제 참석 소식은 개막 당일에서야 공개됐다.

봉 감독은 전날 명예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미국 배우 조디 포스터, 시상한 스페인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미국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와 함께 영화제 개막을 선포했다.

그는 행사가 끝나고 연합뉴스와 만나 한국어로 세계 최대 영화 축제의 시작을 알린 소감을 묻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영화제가 취소된 만큼 가장 최근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사람이 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말로 보인다.

봉 감독과 관객의 만남은 칸 영화제 주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발'의 가장 꼭대기 층(한국 기준 6층)에 480여개 좌석을 구비한 부뉴엘관에서 열렸다.

봉준호 "스트리밍 시대에도 극장의 위력은 당할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