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없었다면 피카소 '역대급 전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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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마크 로스코…. 언제부턴가 우리는 거장의 명화를 한국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걸작들을 한국에 가져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림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세계 각국 대도시에서 빗발치는 데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아무 곳에나 그림을 빌려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여료로 돈 몇 억원을 더 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작품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고, 국민들의 교양 수준이 높아 전시 흥행이 어느 정도는 보장돼야 한다. 그래서 명화 전시가 잦다는 건 세계가 한국의 전시문화 수준 및 국민들의 교양을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같은 거장들의 대형 전시를 국내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선각자로는 서순주 박사(58)가 꼽힌다. 샤갈전(2004년)을 시작으로 모네전(2007년), 반 고흐전(2007~2008년), 르누아르전(2009년), 로댕전(2010년), 밀레전·모딜리아니전(2015년) 등 한국 전시 역사에서 손꼽히는 굵직한 전시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진행중인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기획한 전시총감독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은 오는 9일자 본지 A17~19면에 게재 예정인 피카소 관련 특집 지면과 관련해 최근 그를 만났다. 작품 해설을 비롯한 지면 전반에 서 감독의 해설과 견해가 녹아 있지만, 전시 커미셔너로서의 그를 조망하는 인터뷰 내용을 따로 인터넷에 하루 먼저 게재한다.
"사실 이 전시를 3년 전부터 기획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해 미국과 스페인 등 여러 곳에서 작품을 들여와 피카소의 반전 예술을 조망하려고 했죠.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엉켰습니다. 인적·물적 교류가 막히는 바람에 프랑스의 국립 피카소미술관 한 곳에서만 작품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피카소미술관의 작품을 오래전부터 빌려가기로 했던 다른 미술관들이 봉쇄 조치 때문에 전시를 취소하면서 예정보다 많은 작품을 들여올 수 있게 됐어요. 전 세계에서 항상 피카소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이 쏟아지는데 이렇게 작품을 많이 가져올 수 있게 된 건 일종의 전화위복이고 천운이 따른 거지요."
▶이번 전시의 특징을 꼽는다면요.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의 회화 34점이 걸렸어요. 피카소미술관이 보유한 300여 점의 회화 중 10% 이상이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례적입니다. 또 시대별로 피카소 미술의 대표작들을 가져오면서 기존 기획했던 반전 관련 주제와 비교해도 더 풍성해졌습니다. 이런 규모와 구성의 피카소 전시를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매번 대형 전시를 성사시키는 비결은요.
"비결이라고 할 건 없지만, 전시를 성사시키려면 외국어와 지식은 물론 네트워크를 비롯한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저는 프랑스에 20년 넘게 오래 거주하고 미술계에서 일하면서 인맥을 쌓았어요. 프랑스의 주요 미술관 관장들도 많이 알게 됐지요. 얼마 전 퐁피두센터 관장으로 영전한 로랑 르 봉 당시 피카소미술관장과도 친밀한 사이입니다. 이번 전시 기획을 시작할 때 관장은 두 번째 임기 중이었는데, 임기를 마치기 전에 큰 규모의 전시를 하고 싶어 했어요. 이런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죠."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서 감독은 84년 프랑스로 건너가 몽펠리에대학과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2008년에는 한불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예술문학기사장(Chevalier Des Arts Et Lettres)’을 받기도 했다.)
"피카소의 이름은 누구나 다 알지만 왜 그가 위대하고 천재라고 평가받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번째, 입체주의를 통한 혁명입니다. 르네상스 미술 사오백년에 걸친 원근법 등 각종 전통을 입체주의를 통해 통쾌하게 깨고 '생각하는 대로 그리는'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혔어요. 두번째, 사회 참여입니다. 폭격의 참상을 고발하는 '게르니카'를 통해 미술은 단순한 장식품을 뛰어넘어 현실을 고발하는 힘을 가진 매체로 변모했어요."
▶피카소가 천재인 이유를 또 꼽자면요.
"피카소는 20세 때부터 9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갔어요. 피카소는 젊은 날에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죠. 일반적인 작가들은 자신의 어떤 화풍으로 성공을 거두면 거기서 정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피카소는 달랐어요. 70년동안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고 작품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나갔어요. 매너리즘 없이 입체주의에서 사실주의로, 거기서 또 초현실주의로, 고전주의로 역행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 작품 양식을 창조해 나간 작가라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도전마다 또 성공을 모두 거뒀어요. 60~70세 무렵에는 도자기를 시작했어요. 아예 그림에서 장르를 바꾼 거죠. 단지 그림이 좋은 것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죽을때까지 에너지를 발산했다는 게 대단해요."
▶입체주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 대표작들은 뭐가 있을까요?
"입체주의에서는 일단 '만돌린을 든 남자'를 들 수 있겠죠. 입체주의는 분석적 입체주의와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뉘는데 이 그림은 전자의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이 그림 하나만 봐도 분석적 입체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만돌린과 남자의 형상을 완전히 기하학적으로 해체해서 알아볼 수가 없죠. 종합적 입체주의는 분석적 입체주의가 지나친 추상으로 흐르는 걸 경계하는 시각에서 나온 겁니다. 여기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대표작 중 하나에요. 여길 보면 그림에 글자와 이물질 등이 등장하는데, 현실감을 주기 위한 효과도 있지만 물감과 연필 뿐 아니라 회화공간에 다른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다른 작품을 꼽는다면요.
"가장 보험가액이 비싼 작품(800억원)인 '기타와 배스병'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단순히 나무 조각들을 붙여놓은 것 같지만 이 부조 작품은 현대 조각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사회 참여 부분의 피카소 작품으로는 게르니카와 '시체 구덩이',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이 네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한국에서의 학살은 사실 피카소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구도도 다른 작품을 참조했고, 상체는 피카소의 화풍이 드러나 있지만 하체에서는 피카소의 요소가 없고 그냥 다리죠. 그래도 한국을 주제로 한 그림이 국내에 처음 걸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단 작가의 인지도가 높은 게 첫번째 요소죠. 잘 알지는 못해도 누구나 이름은 들어본 작가니까. 두 번째는 최근 한국 전시문화의 문제점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몇 년새 거장의 레플리카(모작) 전시가 부쩍 늘었어요. 원화를 전시하는 줄 알고 갔더니 레플리카고, 유화는 없고 드로잉만 있고, 디지털로 작품 이미지를 인쇄해 놓은 것도 있고… 정통파 원화가 나오는 전시는 별로 없었어요. 그림은 원화만이 주는 감동이 분명히 있는데, 이런 전시에 진짜 감동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속는 기분을 느끼기 십상이에요. 일종의 사진찍기용, 과시용 전시가 돼버린 거죠. 사람들도 이런 전시에 싫증나 있었어요. 이런 전시를 프랑스나 유럽에서 열었다가는 사기꾼 취급을 받아요. 흥행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던 중 거장의 원화가 대거 한국에 왔군요.
"예. 디지털이나 레플리카 없이 원화만. 이런 기회는 드물어요. 앞으로 없을지도 몰라요. 피카소 140주년 기념 전시라는 이름답게 작품의 전시 구성이 피카소의 각 시기 대표작을 모두 보여줄 수 있도록 잘 돼 있는 것도 컸죠. 그래서 그림을 본 이들이 역시 피카소의 그림은 다르다고 입소문을 냈고,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보다도 많이 몰린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미술품 감상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요.
"미술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산물입니다. 미술을 감상하는 건 타인의 정신세계와 교감하면서 고달픈 일상 가운데 잠시 쉬어가는 거예요. 다르게 말하면 일상에서의 일탈과 휴식. 그게 문화를 탐하고 향유하는 행위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작품을 다 기억하기 쉽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딱 한 작품이라도 기억에 남는다면 그 전시는 기획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성공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 지친 마음을 명화와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치유하고 감동을 얻어갔으면 합니다.
▶어린이 관객들도 많은데요.
"교육 측면에서도 미술은 중요해요.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든 걸 알려줄 순 없어요. 스스로 깨닫게 하는 힘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의무죠. 그렇게 보면 자식에게 풍성한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합니다. 전시를 데려가 주는게 바로 그 기회를 주는 일이에요. 비록 작품의 모습조차 자세히 기억나지 않더라도 어릴 적 작품을 본 기억은 평생 갑니다. 어릴 때 이런 전시에 갔었다는 기억만은 남아 향후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겁니다. 2004년 샤갈전을 시작으로 대형 전시들을 쭉 해왔는데,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됐어요. 전시에서 이런 친구들이 나를 보고 인사하고 그 당시 전시가 기억난다고 해주면 기획자로서 그만한 보람과 행복이 없죠."
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이 같은 거장들의 대형 전시를 국내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선각자로는 서순주 박사(58)가 꼽힌다. 샤갈전(2004년)을 시작으로 모네전(2007년), 반 고흐전(2007~2008년), 르누아르전(2009년), 로댕전(2010년), 밀레전·모딜리아니전(2015년) 등 한국 전시 역사에서 손꼽히는 굵직한 전시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진행중인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기획한 전시총감독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신문은 오는 9일자 본지 A17~19면에 게재 예정인 피카소 관련 특집 지면과 관련해 최근 그를 만났다. 작품 해설을 비롯한 지면 전반에 서 감독의 해설과 견해가 녹아 있지만, 전시 커미셔너로서의 그를 조망하는 인터뷰 내용을 따로 인터넷에 하루 먼저 게재한다.
피카소 생애 망라 '역대급' 전시, 코로나19 덕도 봤죠
▶시대별 피카소의 명작들을 다수 가져오셨습니다."사실 이 전시를 3년 전부터 기획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해 미국과 스페인 등 여러 곳에서 작품을 들여와 피카소의 반전 예술을 조망하려고 했죠.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게 엉켰습니다. 인적·물적 교류가 막히는 바람에 프랑스의 국립 피카소미술관 한 곳에서만 작품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피카소미술관의 작품을 오래전부터 빌려가기로 했던 다른 미술관들이 봉쇄 조치 때문에 전시를 취소하면서 예정보다 많은 작품을 들여올 수 있게 됐어요. 전 세계에서 항상 피카소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이 쏟아지는데 이렇게 작품을 많이 가져올 수 있게 된 건 일종의 전화위복이고 천운이 따른 거지요."
▶이번 전시의 특징을 꼽는다면요.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의 회화 34점이 걸렸어요. 피카소미술관이 보유한 300여 점의 회화 중 10% 이상이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례적입니다. 또 시대별로 피카소 미술의 대표작들을 가져오면서 기존 기획했던 반전 관련 주제와 비교해도 더 풍성해졌습니다. 이런 규모와 구성의 피카소 전시를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거에요."
▶매번 대형 전시를 성사시키는 비결은요.
"비결이라고 할 건 없지만, 전시를 성사시키려면 외국어와 지식은 물론 네트워크를 비롯한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저는 프랑스에 20년 넘게 오래 거주하고 미술계에서 일하면서 인맥을 쌓았어요. 프랑스의 주요 미술관 관장들도 많이 알게 됐지요. 얼마 전 퐁피두센터 관장으로 영전한 로랑 르 봉 당시 피카소미술관장과도 친밀한 사이입니다. 이번 전시 기획을 시작할 때 관장은 두 번째 임기 중이었는데, 임기를 마치기 전에 큰 규모의 전시를 하고 싶어 했어요. 이런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죠."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서 감독은 84년 프랑스로 건너가 몽펠리에대학과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2008년에는 한불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예술문학기사장(Chevalier Des Arts Et Lettres)’을 받기도 했다.)
'만돌린을 든 남자' 눈여겨 보세요
▶피카소는 왜 위대한가요."피카소의 이름은 누구나 다 알지만 왜 그가 위대하고 천재라고 평가받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번째, 입체주의를 통한 혁명입니다. 르네상스 미술 사오백년에 걸친 원근법 등 각종 전통을 입체주의를 통해 통쾌하게 깨고 '생각하는 대로 그리는'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혔어요. 두번째, 사회 참여입니다. 폭격의 참상을 고발하는 '게르니카'를 통해 미술은 단순한 장식품을 뛰어넘어 현실을 고발하는 힘을 가진 매체로 변모했어요."
▶피카소가 천재인 이유를 또 꼽자면요.
"피카소는 20세 때부터 9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갔어요. 피카소는 젊은 날에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죠. 일반적인 작가들은 자신의 어떤 화풍으로 성공을 거두면 거기서 정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피카소는 달랐어요. 70년동안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고 작품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나갔어요. 매너리즘 없이 입체주의에서 사실주의로, 거기서 또 초현실주의로, 고전주의로 역행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자기 작품 양식을 창조해 나간 작가라는 점에서 탁월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도전마다 또 성공을 모두 거뒀어요. 60~70세 무렵에는 도자기를 시작했어요. 아예 그림에서 장르를 바꾼 거죠. 단지 그림이 좋은 것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죽을때까지 에너지를 발산했다는 게 대단해요."
▶입체주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 대표작들은 뭐가 있을까요?
"입체주의에서는 일단 '만돌린을 든 남자'를 들 수 있겠죠. 입체주의는 분석적 입체주의와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뉘는데 이 그림은 전자의 대표적인 걸작입니다. 이 그림 하나만 봐도 분석적 입체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만돌린과 남자의 형상을 완전히 기하학적으로 해체해서 알아볼 수가 없죠. 종합적 입체주의는 분석적 입체주의가 지나친 추상으로 흐르는 걸 경계하는 시각에서 나온 겁니다. 여기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대표작 중 하나에요. 여길 보면 그림에 글자와 이물질 등이 등장하는데, 현실감을 주기 위한 효과도 있지만 물감과 연필 뿐 아니라 회화공간에 다른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눈여겨봐야 할 다른 작품을 꼽는다면요.
"가장 보험가액이 비싼 작품(800억원)인 '기타와 배스병'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단순히 나무 조각들을 붙여놓은 것 같지만 이 부조 작품은 현대 조각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사회 참여 부분의 피카소 작품으로는 게르니카와 '시체 구덩이',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이 네 작품을 들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한국에서의 학살은 사실 피카소를 대표하는 걸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구도도 다른 작품을 참조했고, 상체는 피카소의 화풍이 드러나 있지만 하체에서는 피카소의 요소가 없고 그냥 다리죠. 그래도 한국을 주제로 한 그림이 국내에 처음 걸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원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 느껴보세요
▶관객이 굉장히 많은데, 이번 전시에 왜 이렇게들 열광할까요."일단 작가의 인지도가 높은 게 첫번째 요소죠. 잘 알지는 못해도 누구나 이름은 들어본 작가니까. 두 번째는 최근 한국 전시문화의 문제점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몇 년새 거장의 레플리카(모작) 전시가 부쩍 늘었어요. 원화를 전시하는 줄 알고 갔더니 레플리카고, 유화는 없고 드로잉만 있고, 디지털로 작품 이미지를 인쇄해 놓은 것도 있고… 정통파 원화가 나오는 전시는 별로 없었어요. 그림은 원화만이 주는 감동이 분명히 있는데, 이런 전시에 진짜 감동을 기대하고 갔다가는 속는 기분을 느끼기 십상이에요. 일종의 사진찍기용, 과시용 전시가 돼버린 거죠. 사람들도 이런 전시에 싫증나 있었어요. 이런 전시를 프랑스나 유럽에서 열었다가는 사기꾼 취급을 받아요. 흥행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던 중 거장의 원화가 대거 한국에 왔군요.
"예. 디지털이나 레플리카 없이 원화만. 이런 기회는 드물어요. 앞으로 없을지도 몰라요. 피카소 140주년 기념 전시라는 이름답게 작품의 전시 구성이 피카소의 각 시기 대표작을 모두 보여줄 수 있도록 잘 돼 있는 것도 컸죠. 그래서 그림을 본 이들이 역시 피카소의 그림은 다르다고 입소문을 냈고,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보다도 많이 몰린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미술품 감상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요.
"미술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산물입니다. 미술을 감상하는 건 타인의 정신세계와 교감하면서 고달픈 일상 가운데 잠시 쉬어가는 거예요. 다르게 말하면 일상에서의 일탈과 휴식. 그게 문화를 탐하고 향유하는 행위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작품을 다 기억하기 쉽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딱 한 작품이라도 기억에 남는다면 그 전시는 기획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성공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에 지친 마음을 명화와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치유하고 감동을 얻어갔으면 합니다.
▶어린이 관객들도 많은데요.
"교육 측면에서도 미술은 중요해요.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든 걸 알려줄 순 없어요. 스스로 깨닫게 하는 힘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의무죠. 그렇게 보면 자식에게 풍성한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합니다. 전시를 데려가 주는게 바로 그 기회를 주는 일이에요. 비록 작품의 모습조차 자세히 기억나지 않더라도 어릴 적 작품을 본 기억은 평생 갑니다. 어릴 때 이런 전시에 갔었다는 기억만은 남아 향후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하는 자양분이 되는 겁니다. 2004년 샤갈전을 시작으로 대형 전시들을 쭉 해왔는데,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됐어요. 전시에서 이런 친구들이 나를 보고 인사하고 그 당시 전시가 기억난다고 해주면 기획자로서 그만한 보람과 행복이 없죠."
글=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