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본 건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당시 나는 한국의 추운 겨울을 피해 더운 나라로 가고 있었다. 탑승 전 미리 다운로드하기 위해 출국장 의자에 앉아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넷플릭스는 가상의 이케아 같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출국이 임박했고, 면세점에 다녀온 일행이 쇼핑백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영화 한 편을 추천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 이야기’이다. 그는 몇 달 뒤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고, 이건 복선이 아닐까, 결혼에 대한 어떤 암시를 보내는 게 아닐까, 다잉메세지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분열된 가족 그 이후…우리의 구원자는 아이들 그렇게 育兒는 育我가 된다
이륙과 동시에 일행이 잠들었다. 나는 금방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찰리와 니콜이 이혼을 앞두고 소송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자 둘은 소송 과정 자체, 즉 이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한 여러 불편함을 느낀다. 둘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이의 양육권을 누가 갖는가 하는 것이다.

찰리는 연극 극단의 감독이며 니콜은 극단에서 연기하는 배우다. 니콜은 새 드라마 촬영을 위해 아이와 함께 고향인 로스앤젤레스로 간다. 찰리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아이를 위해 주기적으로 로스앤젤레스로 가야 한다.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학교를 다니는지를 두고 갈등이 발생한다.

변호사는 말한다. “형사 변호사들은 악당의 최선을 보고, 이혼 변호사는 선한 사람의 최악을 보잖아요.” 양측 변호사들은 승소를 위해 찰리와 니콜에게 싸움을 조장한다. 우리는 사이가 좋다고 찰리는 말하지만, 시간이 경과될수록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하지만 둘은 여전히 인간적으로 서로를 위하며, 이는 영화 곳곳에 드러난다. 변호사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정신이 반쯤 나간 찰리를 위해 니콜은 익숙한 점심 메뉴를 골라준다. 새로 이사한 집의 대문이 닫히지 않는다고 니콜이 전화하자 찰리는 한밤중에 그곳을 찾아가 고쳐준다. 이후 마지막인 심정으로 서로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누가 더 심한 말로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싸운다. 그런 싸움이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서로의 마음을 할퀴며, 끝내는 돌아갈 수 없음에 울며 상처받는다.

이제 다른 형태의 가족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다. 찰리는 로스앤젤레스에 새 집을 구하고 새 일자리도 얻게 된다. 언젠가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다. 로스앤젤레스가 앉을 수 있다면 뉴욕은 걸을 수 있다고. 영화가 끝나갈 때쯤, 아이를 안은 찰리를 멈춰 세운 니콜은 그의 풀린 신발 끈을 다시 묶어준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 《아이 이야기》는, 어쩌면 이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지도 모르겠다. 한트케는 1960년대 전위적인 작가로 주목받지만, 1970년대부터는 주제나 소재 측면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연극배우였던 부인과 결별한 뒤 여러 도시를 옮겨가며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된 한트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한트케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책에서 발견한다. “아이들은 모든 인간에게 영혼이다. 이것을 체험하지 못한 자는, 비록 별로 고통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 편안함은 온당치 못한 행복이다.” 개성이 강한 작가적 자의식을 벗어나 점점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아이의 세계를 관찰하고 그에 따라 아이와 함께 변해가는 자신의 세계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한트케의 직업적 환경 탓에 아이와 함께 거주지를 자주 옮기는데 그 때문인지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이를 바라보는 한트케의 시선을 따라 읽으면 가슴이 미어지기까지 한다.

“아이들이 많은 집단에 속하게 되자 아이는 즉각 조용한 아이에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공포에 떠는, 어느 누구보다 더 가엾은 아이로 변해 갔다. 아이는 더 이상 새침을 떼거나 마지못해하거나 단순히 재미없어하는 것이 아니라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었다. (…) 아이들이 많은 곳에 있기만 하면 아이는 마치 완력에 의해 물속에 밀어 넣어졌다가 살아보려고 다시 수면 밖으로 솟아올라 (…) 조용한 한 귀퉁이도 찾지 못하는 물건처럼 도망을 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함께 이를 극복하고 더욱 단단한 관계가 된다. 그의 표현을 빌려 ‘폐허’로 가득한 불행했던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사실 그에게 가족이란 ‘끔찍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 노력했고, 다른 무엇이 아닌 문학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결국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의미를 재고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고자 노력한다.

여행지에 도착한 뒤 그날 저녁, 일행은 내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나는 위와 같은 의견을 말했다. 반대로 결혼을 앞두고 어떤 심정인지 질문했다. 한밤중이었지만 더위가 이어졌고 우리는 긴 시간 대화했다. 그는 대화가 끊길 때마다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가족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어떨까에 대해서도 즐겁게 얘기했다. 그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에게 미래는 찬란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얼른 결혼하지 않고 뭘 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결혼식 사회를 봤고, 그는 요즘 종종 아이 사진을 보내주곤 한다.

민병훈 < 소설가·극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