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부자 증세 군불 때는 '슈퍼리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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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관료들 "부유세 검토"
"재정적자·불평등이 경쟁력 위협"
'최저 법인세율' 충격도 대비해야
이태호 싱가포르 특파원
"재정적자·불평등이 경쟁력 위협"
'최저 법인세율' 충격도 대비해야
이태호 싱가포르 특파원
글로벌 세금 인하 경쟁에 앞장서온 싱가포르 고위 공직자들이 연이어 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재정 악화와 부의 불평등 확대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라비 메논 싱가포르통화청장은 지난 7일 한 강연을 통해 “전체 소득에서 금융 자산과 부동산 소득의 비중이 늘어나는 시장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가 자유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반인 능력주의(meritocracy)를 약화시킬 수 있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메논 청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 3월 헹스위킷 싱가포르 부총리의 ‘부유세(wealth tax) 검토’ 발언에 이어 정부의 부자 증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헹 부총리는 2021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순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자산운용업계는 싱가포르 관료들의 부유세 언급 자체를 충격적인 일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화교 자산가들의 조세피난처로 자리잡아 줄곧 증여세 상속세 자본이득세 없는 ‘슈퍼리치 천국’을 자처해왔기 때문이다.
부자 증세가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오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등 서비스산업 융성을 이끈 슈퍼리치들이 자산을 다른 대체 조세피난처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통화청에 따르면 슈퍼리치의 자산관리 전문회사인 단일 패밀리 오피스(SFO)는 지난해 말 기준 약 400곳으로 2019년의 두 배로 증가하며 경기 침체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 1인당 국민소득은 약 6만달러로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많다. 현재 개인 소득세율은 최고 22%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방역 및 보건 비용 급증에 따른 재정 압박 심화가 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는 진단이다. 싱가포르의 2020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인 649억싱가포르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3.9%에 해당한다. 한국의 2020년 재정적자 비율인 4.2%의 세 배를 웃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동안 경제활동 제한으로 사업장을 닫은 중위소득 이하 국민들에게 급여의 50% 이상을 지급하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폈다. 그러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5월 대국민 담화에서 코로나19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조세피난처를 겨냥한 세계 주요국의 최저 법인세율 도입 움직임도 싱가포르의 부자 증세 압력을 키울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9∼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최소 15% 이상’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안건을 논의한다.
로렌스 웡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지난 5일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 때의 파장을 묻는 의원들 질문에 “의심의 여지없이 싱가포르의 기업 투자 유치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표준 법인세율은 17%이지만 각종 인센티브와 공제 제도로 대다수가 15%를 밑도는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세제 혜택 축소에도 글로벌 사업 중심지로서 매력을 유지하려면 싱가포르는 더 나은 인력 및 사업 인프라 투자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런 불확실성은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주요 싱크탱크인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싱가포르정책연구소(IPS)의 크리스토퍼 지 선임연구원은 “현재 부동산세 중심인 재산세는 정부 세입의 6%에 불과하다”며 “자산 불평등이 심해지는 시대에 그나마 도덕적인 가중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부유세 부과를 우선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조세피난처로 자산을 옮겨둔 부자들도 코로나19와 부의 편중에 따른 청구서는 피해가기 어려운 모양새다.
싱가포르국세청(IRAS)의 최근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국세 수입은 약 535억싱가포르달러(약 44조원)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다섯 배 더 큰 한국의 2019년 국세 수입 294조원의 15% 수준이다.
부족한 재정은 국부펀드와 공기업의 기여로 충당하고 있다. 2019년도의 경우 중앙은행인 통화청(MAS),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 공기업(테마섹)의 투자 수익금 가운데 171억싱가포르달러가 정부 수입으로 들어왔다. 총세입의 23%에 해당한다.
정부 관련 기업들을 1960년대부터 지주회사인 테마섹홀딩스의 자회사로 모아놓고 수익 중심 경영을 독려해온 점도 재정 건전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현재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싱가포르항공 케펠코퍼레이션 등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일 싱가포르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면서 “국부펀드가 관리하는 대규모 재정 준비금과 건전한 재정정책 체계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라비 메논 싱가포르통화청장은 지난 7일 한 강연을 통해 “전체 소득에서 금융 자산과 부동산 소득의 비중이 늘어나는 시장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가 자유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반인 능력주의(meritocracy)를 약화시킬 수 있어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메논 청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 3월 헹스위킷 싱가포르 부총리의 ‘부유세(wealth tax) 검토’ 발언에 이어 정부의 부자 증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헹 부총리는 2021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순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밝혀 이목을 끌었다.
자산운용업계는 싱가포르 관료들의 부유세 언급 자체를 충격적인 일로 평가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화교 자산가들의 조세피난처로 자리잡아 줄곧 증여세 상속세 자본이득세 없는 ‘슈퍼리치 천국’을 자처해왔기 때문이다.
부자 증세가 소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오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등 서비스산업 융성을 이끈 슈퍼리치들이 자산을 다른 대체 조세피난처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통화청에 따르면 슈퍼리치의 자산관리 전문회사인 단일 패밀리 오피스(SFO)는 지난해 말 기준 약 400곳으로 2019년의 두 배로 증가하며 경기 침체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싱가포르 1인당 국민소득은 약 6만달러로 아시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많다. 현재 개인 소득세율은 최고 22%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방역 및 보건 비용 급증에 따른 재정 압박 심화가 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는 진단이다. 싱가포르의 2020 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재정적자는 사상 최대인 649억싱가포르달러(약 55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의 13.9%에 해당한다. 한국의 2020년 재정적자 비율인 4.2%의 세 배를 웃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동안 경제활동 제한으로 사업장을 닫은 중위소득 이하 국민들에게 급여의 50% 이상을 지급하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폈다. 그러다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5월 대국민 담화에서 코로나19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조세피난처를 겨냥한 세계 주요국의 최저 법인세율 도입 움직임도 싱가포르의 부자 증세 압력을 키울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9∼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최소 15% 이상’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안건을 논의한다.
로렌스 웡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지난 5일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 때의 파장을 묻는 의원들 질문에 “의심의 여지없이 싱가포르의 기업 투자 유치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표준 법인세율은 17%이지만 각종 인센티브와 공제 제도로 대다수가 15%를 밑도는 실효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세제 혜택 축소에도 글로벌 사업 중심지로서 매력을 유지하려면 싱가포르는 더 나은 인력 및 사업 인프라 투자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런 불확실성은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주요 싱크탱크인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싱가포르정책연구소(IPS)의 크리스토퍼 지 선임연구원은 “현재 부동산세 중심인 재산세는 정부 세입의 6%에 불과하다”며 “자산 불평등이 심해지는 시대에 그나마 도덕적인 가중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부유세 부과를 우선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조세피난처로 자산을 옮겨둔 부자들도 코로나19와 부의 편중에 따른 청구서는 피해가기 어려운 모양새다.
GIC 등 공기업이 정부 예산 20% 넘게 기여
싱가포르 정부가 낮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국가신용등급(Aaa)을 유지해온 주요 배경 중 하나로 공기업의 예산 기여가 꼽힌다.싱가포르국세청(IRAS)의 최근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국세 수입은 약 535억싱가포르달러(약 44조원)였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다섯 배 더 큰 한국의 2019년 국세 수입 294조원의 15% 수준이다.
부족한 재정은 국부펀드와 공기업의 기여로 충당하고 있다. 2019년도의 경우 중앙은행인 통화청(MAS),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 공기업(테마섹)의 투자 수익금 가운데 171억싱가포르달러가 정부 수입으로 들어왔다. 총세입의 23%에 해당한다.
정부 관련 기업들을 1960년대부터 지주회사인 테마섹홀딩스의 자회사로 모아놓고 수익 중심 경영을 독려해온 점도 재정 건전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현재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싱가포르항공 케펠코퍼레이션 등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일 싱가포르 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하면서 “국부펀드가 관리하는 대규모 재정 준비금과 건전한 재정정책 체계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