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너무 물렁물렁해 보이면 남들이 살짝 무시하고, 너무 강해보이면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다.

한줌도 안 되는 권력에 눈이 멀었다는 말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 권력이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간다는 뜻.

그래도 사람들은 힘을 갖고 싶어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끼리의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모두가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싶어서다. 힘이란, 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무한 질주를 경계하는 타이어 광고에서 답을 찾아보자.

피렐리(Pirelli) 타이어의 광고 ‘하이힐’ 편(1994)을 보면 근육질의 육상 선수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뭐지? 하이힐을 신고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싶어 자세히 보니 육상 영웅 칼 루이스(Carl Lewis, 1961~) 선수다. 그는 1984년부터 1996년까지 네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라는 그가 하이힐 신고 달리기를 하다니 당혹스럽다. 애니 레이보위츠(Annie Leibowitz)가 텍사스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현대 광고사의 명장면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하다.

사진 위쪽을 보니 헤드라인이 이렇게 쓰여 있다. “제어하지 못하는 힘은 아무 것도 아니다(Power is nothing without control).”

일발필도의 헤드라인에서 칼 루이스가 하이힐을 신고 있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권력에 연결시켜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겠다. “통제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 것도 아니다.”

광고회사 영앤루비컴(Young & Rubicam)에서 제안한 이 카피는 다른 광고에서도 계속 쓰이며 피렐리 브랜드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타이어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제동력이 떨어지면 대형 사고를 유발한다. 자동차가 달릴 때 노면과 유일하게 맞닿는 부분이 타이어다. 따라서 동력 전달, 코너링, 제동력, 주행 안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피렐리는 1996년까지 칼 루이스의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했다. 힘(칼 루이스)과 제어(하이힐)라는 모순되는 두 요소를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타이어의 제동력을 절묘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두 요소를 활용한 메시지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피렐리 타이어 광고 ‘하이힐’ 편 (1994)
피렐리 타이어 광고 ‘하이힐’ 편 (1994)
이 카피는 그 후에도 계속 활용됐다. 피렐리 타이어의 광고 ‘주먹’ 편(2007)을 보자.

이탈리아에서 집행된 이 광고를 보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타이어 4개가 도로를 질주한다. 타이어휠 4개가 굴러가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핵주먹이다.

굴러가는 타이어 위쪽에 앞 광고와 똑같은 영어 헤드라인을 배치했다. “제어하지 못하는 힘은 아무 것도 아니다.”

타이어 아래쪽에 있는 보디카피는 현지 사정에 맞게 이탈리아어로 썼다. “운전할 때 성능, 스타일, 안전성에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젖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피렐리는 당신의 자동차에 가장 적합한 장비다. 완벽한 제어를 원한다면 항상 리더에게 맡겨라.”

눈보라가 몰아치는 후속 광고의 보디카피는 이렇다. “운전할 때 성능, 스타일, 안전성에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최악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피렐리는 당신의 자동차에 가장 적합한 장비다. 완벽한 제어를 원한다면 항상 리더에게 맡겨라.”

좋은 타이어는 좋은 주행의 전제 조건이며, 최상의 주행은 타이어의 성능에 달려있다. 광고에서는 피렐리 타이어가 제동력이 좋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872년에 창립된 피렐리는 타이어 제품으로 유명하며 현재 세계 160여 개 나라에 진출해있다.

현재 포뮬러 원을 비롯한 자동차 경주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그 후 2015년에 중국 국영회사 차이나 내셔널 케미컬(China National Chemical)에 경영권이 인수되었다.
피렐리 타이어 광고 ‘주먹’ 편(2007)
피렐리 타이어 광고 ‘주먹’ 편(2007)
피렐리 광고에서는 강력한 제어 기능을 강조했다. 하이힐, 빗물, 눈보라는 피렐리 타이어의 제동력을 보여주기 위한 소품이다.

노면에 상관없이 제어할 수 있다는 것. 대부분의 피렐리 광고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설득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시각적 아이디어가 워낙 기발하기 때문에 카피는 가급적 짧게 썼다.

피렐리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제어되는 힘(Controlled Power)이다. 진정한 힘은 자발적으로 제어하는 억제력에서 나온다는 지혜를 광고가 알려주었다.

정치인을 비롯해 기업의 경영자들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당연시한다면 착각이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경영자는 절대로 존경받을 수 없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무슨 감투만 쓰면 함부로 날뛰는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완장을 잘못 차면 결국 완패하게 된다. 권력의 제어 문제는 우리 시대의 핵심 과제의 하나다.

‘권력무상(權力無常)’이나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같은 관용어는 제어하지 못하고 권력을 휘두르다 몰락한 사람들을 은근히 조롱할 때 썼다.

날이 갈수록 권력이 강해지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권력을 제어할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폭주 기관차는 결국 탈선하게 마련이다.

존경할만한 지도자가 그리워진다. 존경할만한 지도자란 자신의 힘을 제어할 방법을 꾸준히 찾는 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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