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우산 하나, 윤수천
우산 하나

윤수천

비오는 날에는
사랑을 하기 좋다
우산 한 개만으로도
사랑의 집 한 채 지을 수 있으니까.

[태헌의 한역]
一雨傘(일우산)

銀竹敲地日(은죽고지일)
愛戀固合適(애련고합적)
唯以小雨傘(유이소우산)
可造一愛宅(가조일애택)

[주석]
* 一雨傘(일우산) : 하나의 우산, 우산 하나.
銀竹(은죽) : 비[雨]의 이칭. 빗발을 ‘은빛 대나무’에 비유하여 생긴 말로 이백(李白)이 <숙하호(宿鰕湖)>라는 제목의 시에서 사용하였다. / 敲地(고지) : 땅을 두드리다. <비가> 내린다는 뜻으로 역자가 만든 말이다. 주어를 ‘銀竹’으로 하였기 때문에 주어에 어울리는 술부(述部)를 만들어 본 것이다. / 日(일) : ~하는 날, ~하는 날에.
愛戀(애련) : 사랑, 사랑하다. / 固(고) : 진실로, 정말. / 合適(합적) : 꼭 알맞다, 딱 좋다.
唯(유) : 오직, 다만. / 以小雨傘(이소우산) : 작은 우산으로, 작은 우산을 가지고. ‘小’는 원시의 “우산 한 개”라고 한 대목의 “한”을 역자가 바꾸어본 표현이다. 원시의 아래 행에도 하나를 나타내는 “한”이 쓰이고 있어 한역시에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바꾸게 된 것이다.
可(가) : ~을 할 수 있다. / 造(조) : ~을 만들다, (집 따위를) 짓다. / 一愛宅(일애택) : 하나의 사랑의 집, 사랑의 집 한 채.

[한역의 직역]
우산 하나

비오는 날은
사랑하기 정말 딱 좋다
오직 작은 우산만으로도
사랑의 집 한 채 지을 수 있으니까.

[한역 노트]
우산을 쓰는 것이, 동양에서는 평민의 경우 고마운 비를 내려주는 하늘에 대한 불경(不敬)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고, 서양에서는 신사의 경우 스스로가 나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지구촌 어디에서도 우산을 쓰는 것에 그런 거추장스런 편견이 따라다니지는 않는 듯하다. 대신 동양이든 서양이든 두 남녀가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광경이 아름다운 풍경화로 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산 하나”가 어느 남녀 둘 만의 “집 한 채”가 되기도 하는 이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어디 집 한 채 뿐일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 우산 속이 자신들만의 우주로도 여겨질 테니 우산 하나의 확장성은 그야말로 무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우산을 함께함’이 사랑의 조건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청춘남녀 연인들이 각자의 우산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불편하게 하나의 우산을 함께하는 정황으로 보자면, 그 ‘우산을 함께함’이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우산 속에서 그들이 “사랑의 집” 외벽(外壁)으로 두르는 밀어(蜜語)야 우리가 들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독자라면 상상 속에서 충분히 느껴볼 수는 있을 듯하다. 그런 경험도 없이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독자라 하더라도, 그 옛날에 비에 젖으며 가는 소녀나 소년에게 우산 같이 쓰자는 말 한 마디 건네지도 못한 어쭙잖은 추억이나마 있다면, 그것은 인정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부끄럽게 기억하고 있을 듯하다.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에서나 만남직한 그 작은 기억 한 조각조차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달달한 추억이 되니, 이래저래 “비”는 사랑을 몰고 다니는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자는 제법 오래 전에 시인의 시와는 매우 많이 다른 각도에서, 아래와 같은 시를 지어보았더랬다.

我愛雨天(아애우천)

雨傘但能遮雨滴(우산단능차우적)
何須心悅打而行(하수심열타이행)
於顔節節多欲掩(어안절절다욕엄)
我愛滿天銀竹橫(아애만천은죽횡)

나는 비오는 날이 좋다

우산이 그저 빗방울만 가릴 뿐이라면
어찌 기쁜 마음으로 쓰고 다니겠는가?
얼굴에 하나하나 가리고 싶은 게 많아
나는 하늘 가득 비가 비끼는 날이 좋다네.

역자는 일단 우산을 쓰면 얼굴 가운데 못난 데를 가릴 수 있어서 좋았고,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표정을 가릴 수 있어서 좋았고, 길거리나 학교 같은 데서 인사하기 싫은 사람에게 본인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 역자가 비오는 날을 왜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비가 오지 않아도, 우산을 들지 않아도 얼굴의 상당 부분을 가리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고 미덕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마스크라는 물건으로 얼굴의 많은 부분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 이 미증유(未曾有)의 세월을 뒤로하는 날이 온다면 다들 그 기념으로 무엇을 할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4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역자는 4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다. 짝수 구에 압운하였으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適(적)’과 ‘宅(택)’이 된다. 제1구의 한역 내용은 필히 주석 부분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2021. 7. 13.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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