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는 12일 화상으로 개최된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결정문을 발표하고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공동조사단 보고서의 결론을 충분히 참고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가 2015년 해당 시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당시 세계유산위의 권고에 따라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 안내와 희생자를 추모하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번 결정문에는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 사실이 처음으로 본문에 적시됐다. 결정문 6항에는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해석 전략이 필요하다”며 “다수의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해당 내용은 2015년 등재 당시엔 각주에만 포함돼 있었다.
유네스코의 이같은 강경한 입장은 일본 정부가 지난해 도쿄에 설립한 산업유산 정보센터의 역사 왜곡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초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 설치를 약속했던 일본 정부는 이곳에 강제 징용 사실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들만 전시했고 희생자 추모 시설도 만들지 않았다. 이 센터는 전시 내용을 소개하며 “2015년 세계유산위원회 당시 일본 대표 발언에 따른 일본 정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당시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유감을 표명한데 이어 장관 명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유네스코는 한국 요청에 따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공동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했고,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60페이지 분량의 공동조사단 보고서의 이같은 결론은 이번 세계유산위 결정문에 반영됐다.
세계유산위 결정문에 한국인 강제징용이 적시되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에 보다 힘이 실릴 전망이다. 또한 일본 정부가 2015년 유산 등재 당시부터 한국 정부의 관련 협의 요청을 묵살해온 가운데 이번 결정문에 한·일 양국의 대화 촉구도 담기며 관련 양자 협의 개최 가능성도 높아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세계유산협약 가이드라인을 보면 등재 취소되는 경우는 유산 자체의 본질적인 특성이 완전히 훼손되는 경우로 국한되는 만큼 등재 취소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이번 결정문을 통해 한국이 일본에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