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통합의 시각으로…
나는 학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이론물리학을 전공했다. 당시에는 비교적 첨단 영역이라고 여겼던 큰통일장이론(GUT·Grand Unified Theory)을 탐구했다. 물리적 성격이 서로 다른 여러 힘들 즉,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등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 틀로 설명하는 분야다. 더 높은 에너지 수준에서 각각의 힘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나의 통일된 이론 틀로 묶을 수 있을까 궁리한다.

예를 들어, 전자끼리 혹은 전자와 양전자의 상호 작용인 전기력은 물리 현상으로는 자석이 서로 밀거나 끌어당기는 자기력과 다르지만, 맥스웰이라는 물리학자가 일찌감치 이론적으로 통합한 전자기론이라는 틀을 통해, 낮은 에너지 수준에서는 다르게 발현하지만 높은 에너지 수준에서는 결국 같은 하나의 힘이라고 이해한다. 그렇다. 낮은 수준에서는 갈라져 있더라도, 더 높은 에너지 수준에서는 통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구조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로 갈라져 대립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상임을 수긍하며, 그저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분명 있기는 하다. 하지만 좀 더 높고 폭넓은 시각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통합된 견해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 조금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필경 통일된 의견 합의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통합된 관점을 지니려면 무엇보다 제기된 상황이나 문제를 위에서, 아래에서 그리고 옆에서, 그야말로 다양하게 접근하고 성찰해야 한다. ‘위에서 본다’는 것은 분명 큰 그림 즉, 이념이나 더 높은 가치 수준에서 점검해 본다는 의미다. 가치도 분명 서로 다른 수준이 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이상적 수준의 가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현실 수준의 가치도 있다. 사회와 국가는 종종 이념이나 명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아래에서 본다’는 것은 현실의 여러 제약이나 실제 경험하는 지평에서 당면하는 여러 체험을 통해 평가해 본다는 맥락이다. 체험은 많은 경우 우리의 시야를 넓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한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그림자를 만들거나 맹점을 만들기도 한다. ‘옆에서 본다’는 것은 같은 지평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이나 연관된 상황들과 어떤 함의가 있는지 등을 따져본다는 의미다. 협력과 대화는 바로 이런 경험의 지평을 확장한다.

살다 보면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불화가 고조되는 때가 있다.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의견이나 시각 때문에 곤혹스러운 순간도 있다. 때로는 두려움이 앞서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젊은 시절에 궁리한 큰통일장이론을 떠올린다. 통합적 시각과 성찰적 대화는 언제나 지식과 지평의 확대를 가져다주는 감사한 선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