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만 前 산안국장이 들려주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지난 9일 공개했습니다. 12일부터 내달 23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입니다. 정부는 이 기간 노사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벌써부터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을 지내다가 지난 4월 법무법인 율촌에 합류해 중대재해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영만 변호사가 한경 CHO Insight 회원들을 위해 글을 보내왔습니다. 박 변호사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기도 합니다.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을 지낸데다 법무법인 최초의 중대재해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 변호사는 산업안전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분입니다. 박 변호사가 바라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 일독을 권합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보면서
◆시행령으로 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말 많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이하 시행령안)이 발표됐다. 전반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부 추상적인 표현이 있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시행령안으로 시작이 됐으니 이제 더 구체적인 사고 감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시행령안에 담지 못한 내용은 향후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2인 1조 작업 범위라든가 과로사를 직업성 질병에 포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 비판이 있지만 그러한 내용은 시행령에서 규정할 것은 아니다.
위험작업에 감독자나 신호수, 적절한 숫자의 작업자를 배치하라는 것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령에 규정되어 있고 사업주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고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서 규정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이란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조직 구성의 문제이다. 안전관리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대표이사 직속 안전전담조직을 두라는 의미이지 구체적인 작업 인원 배치기준을 법령에서 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과로사는 상당수가 고혈압, 당뇨병 등 기존 질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량이나 강도가 증가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고혈압,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뇌심혈관 질환이 바로 과로사이다. 과로사는 우리나라나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적인 사회현상이다.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지는 않는 듯 하다. 일본에서는 40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년 고혈압, 당뇨병에 관한 의사 상담, 심전도 검사, 고지혈증 검사 등을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성인병 관리를 개인에게만 맡기다 보니 고위험군도 스트레스를 받고 담배를 피우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같은 사회적 위기 속에 작업량이 급증하면 근로자들은 과로사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안전보건에 의욕적인 기업도 ‘질병은 개인정보’라는 현실과 ‘종사자집단의 보건관리’라는 당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일쑤이다. 과로사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이지 개인이나 일개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직업성 질병의 보상과 처벌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등이 처벌받을 수 있다. 시행령안 별표 1에서 규정한 직업성 질병들은 대부분 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시행령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 중 ‘급성 중독’ 항목에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산재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게 보상해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산재법 시행령도 그에 따라 보상 기준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산재법 내용을 형사처벌법령에서 인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산재법 시행령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한 급성 중독 증상 또는 소견’이라고 한 것을 시행령안에서는 ‘증상 또는 소견’을 삭제하고 ‘급성 중독’으로 하였다. 증상(symptom)이란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를 의미하고 소견(finding)이란 의사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 상태를 뜻한다. 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만으로 형벌을 부과할 수는 없으니 ‘급성 중독’으로 진단된 경우만 처벌 대상인 ‘직업성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형법 규정이라고 하기에는 일부 적절하지 않은 구절들이 눈에 띈다. 우선 “등”이라는 표현이다. 시행령안 별표 1 제13호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 21, 별표 22에 규정된 화학적 인자 등’에 노출되어 발생한 급성 중독도 처벌 대상으로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별표 21’은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 192종을, ‘별표 22’는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181종을 열거한 것이다. 별표 21과 별표 22에 규정된 화학적 인자 “등”이라면 그와 유사한 유해인자를 말할 텐데, 그러한 유해인자는 수십만 종에 달한다. 전후 맥락으로 봤을 때 이는 단순 오기(誤記)로 보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적절하지 않은 “등”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한편 ‘급성 중독’에는 두통, 현기증, 점막자극(눈이나 목이 따가운 증상) 같은 가벼운 증상에서 의식소실, 무호흡 등 중한 병증이 있을 수 있다. 이산화질소는 질소화합물을 제조할 때 발생할 수 있는데 단시간 저농도에 노출될 경우 점막자극 증상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행령안에 따르면 이산화질소 노출로 3명 이상 점막자극 증상이 나타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그가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하고 그로 인해 노출사고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일단 조사를 해야 하므로 당사자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행령안에는 작업자를 보호하면서도 처벌범위를 한정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나 일부 불명확한 표현은 개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자문 과정에서 만난 외국계 기업에서는 대표이사가 매일 전산시스템으로 사내 안전지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내용도 간단한 통계수치가 아니라 실무자만큼 자세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임직원에 대한 인사고과기준 중 안전 관련 배점도 국내 회사들이 통상 5~10%인데 비해 그 회사는 30%에 달했다. 물론 산업재해 발생률도 현저하게 낮았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 본사에 대한 특별감독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 내용에는 대표이사의 대내외적인 안전보건 관련 활동이나 메시지 전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 때에도 대표이사가 안전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 감독하지 않으면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이 진심으로 작업자의 안전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은 주위 환경에 쉽게 영향받는다. 실험에 따르면 관리자가 생산성과 매출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작업자는 안전보다 일의 속도를 우선시한다고 한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종사자들에게 “여러분이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퇴근하길 바란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안전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안전을 확보할 수는 없다. 우리 회사는 늦더라도 안전하게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박영만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이에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을 지내다가 지난 4월 법무법인 율촌에 합류해 중대재해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영만 변호사가 한경 CHO Insight 회원들을 위해 글을 보내왔습니다. 박 변호사는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이기도 합니다.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을 지낸데다 법무법인 최초의 중대재해센터장을 맡고 있는 박 변호사는 산업안전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분입니다. 박 변호사가 바라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 일독을 권합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보면서
◆시행령으로 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말 많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이하 시행령안)이 발표됐다. 전반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부 추상적인 표현이 있기는 하나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시행령안으로 시작이 됐으니 이제 더 구체적인 사고 감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시행령안에 담지 못한 내용은 향후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2인 1조 작업 범위라든가 과로사를 직업성 질병에 포함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 비판이 있지만 그러한 내용은 시행령에서 규정할 것은 아니다.
위험작업에 감독자나 신호수, 적절한 숫자의 작업자를 배치하라는 것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령에 규정되어 있고 사업주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고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에서 규정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이란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조직 구성의 문제이다. 안전관리를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대표이사 직속 안전전담조직을 두라는 의미이지 구체적인 작업 인원 배치기준을 법령에서 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과로사는 상당수가 고혈압, 당뇨병 등 기존 질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량이나 강도가 증가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고혈압,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뇌심혈관 질환이 바로 과로사이다. 과로사는 우리나라나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적인 사회현상이다.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지는 않는 듯 하다. 일본에서는 40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년 고혈압, 당뇨병에 관한 의사 상담, 심전도 검사, 고지혈증 검사 등을 시행한다.
우리나라는 성인병 관리를 개인에게만 맡기다 보니 고위험군도 스트레스를 받고 담배를 피우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같은 사회적 위기 속에 작업량이 급증하면 근로자들은 과로사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안전보건에 의욕적인 기업도 ‘질병은 개인정보’라는 현실과 ‘종사자집단의 보건관리’라는 당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일쑤이다. 과로사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이지 개인이나 일개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직업성 질병의 보상과 처벌
직업성 질병자가 1년에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등이 처벌받을 수 있다. 시행령안 별표 1에서 규정한 직업성 질병들은 대부분 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 시행령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 중 ‘급성 중독’ 항목에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산재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게 보상해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산재법 시행령도 그에 따라 보상 기준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산재법 내용을 형사처벌법령에서 인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산재법 시행령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한 급성 중독 증상 또는 소견’이라고 한 것을 시행령안에서는 ‘증상 또는 소견’을 삭제하고 ‘급성 중독’으로 하였다. 증상(symptom)이란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를 의미하고 소견(finding)이란 의사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 상태를 뜻한다. 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만으로 형벌을 부과할 수는 없으니 ‘급성 중독’으로 진단된 경우만 처벌 대상인 ‘직업성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형법 규정이라고 하기에는 일부 적절하지 않은 구절들이 눈에 띈다. 우선 “등”이라는 표현이다. 시행령안 별표 1 제13호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 21, 별표 22에 규정된 화학적 인자 등’에 노출되어 발생한 급성 중독도 처벌 대상으로 했다. 산업안전보건법 ‘별표 21’은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 192종을, ‘별표 22’는 특수건강진단 대상 유해인자 181종을 열거한 것이다. 별표 21과 별표 22에 규정된 화학적 인자 “등”이라면 그와 유사한 유해인자를 말할 텐데, 그러한 유해인자는 수십만 종에 달한다. 전후 맥락으로 봤을 때 이는 단순 오기(誤記)로 보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적절하지 않은 “등”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한편 ‘급성 중독’에는 두통, 현기증, 점막자극(눈이나 목이 따가운 증상) 같은 가벼운 증상에서 의식소실, 무호흡 등 중한 병증이 있을 수 있다. 이산화질소는 질소화합물을 제조할 때 발생할 수 있는데 단시간 저농도에 노출될 경우 점막자극 증상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시행령안에 따르면 이산화질소 노출로 3명 이상 점막자극 증상이 나타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그가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하고 그로 인해 노출사고가 발생해야 한다. 그렇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미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일단 조사를 해야 하므로 당사자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행령안에는 작업자를 보호하면서도 처벌범위를 한정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기는 하나 일부 불명확한 표현은 개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필자가 중대재해처벌법 자문 과정에서 만난 외국계 기업에서는 대표이사가 매일 전산시스템으로 사내 안전지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내용도 간단한 통계수치가 아니라 실무자만큼 자세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임직원에 대한 인사고과기준 중 안전 관련 배점도 국내 회사들이 통상 5~10%인데 비해 그 회사는 30%에 달했다. 물론 산업재해 발생률도 현저하게 낮았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 본사에 대한 특별감독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발표 내용에는 대표이사의 대내외적인 안전보건 관련 활동이나 메시지 전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 때에도 대표이사가 안전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 감독하지 않으면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이 진심으로 작업자의 안전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사람은 주위 환경에 쉽게 영향받는다. 실험에 따르면 관리자가 생산성과 매출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작업자는 안전보다 일의 속도를 우선시한다고 한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종사자들에게 “여러분이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퇴근하길 바란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안전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안전을 확보할 수는 없다. 우리 회사는 늦더라도 안전하게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박영만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