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B 장편소설 '콘크리트의 섬'

18세기 초반 소설 문학의 걸작인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바다에서 표류하다 무인도에 도착해 홀로 28년간 자급자족하며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환갑이 다 된 신인 작가 디포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준 이 서사는 이후 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지금까지도 여러 형태로 변용되는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세계적 흥행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대표적인 사례다.

위대한 영국 현대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JGB.1930~2009)의 '콘크리트의 섬'도 로빈슨 크루소의 현대판 서사다.

JBG의 '도심 재난 삼부작' 중 하나인 이 장편소설을 현대문학에서 조호근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한다.

도심 속 섬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
1970년대 작품인 이 소설은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당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현대문명이 극도로 고도화된 런던 도심에서 역설적으로 고립된 채 표류하는 한 남성의 모습을 통해 첨단 기술과 개발만능주의 속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단면을 상징한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현대판 오마주인 셈이다.

부유한 영국인 주인공 메이틀랜드는 옛날 무인도에 표착한 크루소를 지금 우리 곁으로 소환한 인물이다.

1973년 4월 22일 오후 성공한 30대 건축가 메이틀랜드는 재규어 승용차를 타고 런던 중심부 입체교차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한다.

경사면을 가까스로 기어올라 고속도로 위에서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세 갈래 고속도로 교차점에 있는 섬 같은 황무지에 고립됐음을 깨닫는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가 눈앞에서 달리고 하늘로 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크루소가 무인도에 갇혀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비상전화를 찾아 길을 건너다 크게 다치면서 움직이기도 어려워진 그는 운 좋게 구조되거나 기운을 회복해 자기 힘으로 이곳을 탈출할 때까지 망가진 차와 공구함, 정장, 백포도주 여섯 병만 갖고 살아남아야 한다.

메이틀랜드는 크루소처럼 생존과 탈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강인한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도시 안에 있는 교차로 아래 버려진 땅은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1960년대 SF 뉴웨이브를 이끈 JGB는 종말 이후 미래 디스토피아 대신 현재 우리 곁의 배경을 지옥 같은 환경으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을 향해 울리는 경고음을 증폭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