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에도 이중섭에도 담겼다…분청사기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美 뿌리담은 문화재·미술품 함께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한국美 뿌리담은 문화재·미술품 함께 전시
“봄 내내 신문지에 그리던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信)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1967년 미국 뉴욕에서 김환기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4년 전 홍익대 미대 학장 자리를 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이주해온 그였지만 현지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림이 팔리지 않자 생활고가 찾아왔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신문지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자신의 내면. 김환기는 내면에 비친 우주의 질서를 점을 찍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그의 전면점화(全面點畵)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완전 추상화인 그의 그림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시장에 있는 김환기의 그림 ‘19-VI-71 #206’ 옆에는 1400년대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 인화문(도장무늬) 자라병’이 놓여 있다. 병 표면에 새겨진 질박하면서도 그윽한 무늬는 영락없이 김환기의 작품과 그 리듬을 공유한다. 김환기가 직접 분청사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감이 그를 점화로 이끌었을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이처럼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 대표작들을 비교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 미술품 130여 점, 자료 80여 점을 통해서다.
근대 이후 국내 작가들은 밀려오는 서양 미술의 파도 속에서 ‘세계에서도 통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맸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이들은 조상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에 뿌리를 두고 걸작을 탄생시켰다. 예컨대 박수근의 ‘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주작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다. 그의 그림 특유의 거친 질감 역시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생광의 ‘창’에는 신라시대 기와인 ‘녹유귀면와’의 이미지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도 전시에 나왔다. 이중섭의 ‘봄의 아동’은 옆에 놓인 고려청자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의 그림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은 듯하다. 김환기가 “새로 도자기를 구입하면 반드시 도 선생에게 보였다”고 수필에 적었을 정도로 도자기 애호가였던 도상봉은 그림에도 조선 백자를 즐겨 그렸다. 이번 전시에 나온 ‘라일락’과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인 ‘정물A’가 대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이 전시에 나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화와 풍속화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경지에 올린 작품들도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는 조선 후기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를 변주한 디자인이다. 전시장에서는 ‘88 서울올림픽 포스터’와 함께 민화 ‘까치호랑이’를 감상할 수 있다. 나란히 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대에 따른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통 미술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미술 작품도 적지 않다. 백남준의 ‘반야심경’은 텔레비전 안에 불상을 넣은 작품으로, 옆에 전시된 폐불(廢佛)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佛頭)’와 미학적 조화를 이룬다.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신라시대 금관 ‘서봉총금관’(보물 제339호)과 이를 오마주한 이수경의 신작 ‘달빛왕관_신라금관 그림자’도 함께 전시돼 있다. 서봉총금관이 국립중앙박물관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따로 떼어놓고 감상해도 아름답지만, 관련 미술사 등을 미리 공부하고 가거나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보면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연구자 44명이 쓴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도 내용이 충실하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1967년 미국 뉴욕에서 김환기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4년 전 홍익대 미대 학장 자리를 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 이주해온 그였지만 현지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림이 팔리지 않자 생활고가 찾아왔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신문지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악전고투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자신의 내면. 김환기는 내면에 비친 우주의 질서를 점을 찍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그의 전면점화(全面點畵) 연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완전 추상화인 그의 그림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시장에 있는 김환기의 그림 ‘19-VI-71 #206’ 옆에는 1400년대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 인화문(도장무늬) 자라병’이 놓여 있다. 병 표면에 새겨진 질박하면서도 그윽한 무늬는 영락없이 김환기의 작품과 그 리듬을 공유한다. 김환기가 직접 분청사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미감이 그를 점화로 이끌었을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이처럼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 대표작들을 비교하며 한국적 아름다움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 미술품 130여 점, 자료 80여 점을 통해서다.
근대 이후 국내 작가들은 밀려오는 서양 미술의 파도 속에서 ‘세계에서도 통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맸다.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이들은 조상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에 뿌리를 두고 걸작을 탄생시켰다. 예컨대 박수근의 ‘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주작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다. 그의 그림 특유의 거친 질감 역시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생광의 ‘창’에는 신라시대 기와인 ‘녹유귀면와’의 이미지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도 전시에 나왔다. 이중섭의 ‘봄의 아동’은 옆에 놓인 고려청자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의 그림을 그대로 화폭에 옮겨놓은 듯하다. 김환기가 “새로 도자기를 구입하면 반드시 도 선생에게 보였다”고 수필에 적었을 정도로 도자기 애호가였던 도상봉은 그림에도 조선 백자를 즐겨 그렸다. 이번 전시에 나온 ‘라일락’과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인 ‘정물A’가 대표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이 전시에 나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화와 풍속화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경지에 올린 작품들도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는 조선 후기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를 변주한 디자인이다. 전시장에서는 ‘88 서울올림픽 포스터’와 함께 민화 ‘까치호랑이’를 감상할 수 있다. 나란히 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대에 따른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통 미술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미술 작품도 적지 않다. 백남준의 ‘반야심경’은 텔레비전 안에 불상을 넣은 작품으로, 옆에 전시된 폐불(廢佛)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佛頭)’와 미학적 조화를 이룬다.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신라시대 금관 ‘서봉총금관’(보물 제339호)과 이를 오마주한 이수경의 신작 ‘달빛왕관_신라금관 그림자’도 함께 전시돼 있다. 서봉총금관이 국립중앙박물관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따로 떼어놓고 감상해도 아름답지만, 관련 미술사 등을 미리 공부하고 가거나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면서 보면 더욱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연구자 44명이 쓴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도 내용이 충실하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