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선 국책은행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은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한다. 지점장·본부장 등 조직을 관리하는 중책에서 하루아침에 업무 뒷선으로 밀려나거나 수개월씩 ‘강제 교육’을 받기도 한다. 중장년 인력의 ‘퇴로’를 마련해주는 게 회사와 직원 모두 윈윈하는 길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돈받고 수개월씩 강제 연수…코로나 후엔 재택 연수까지
국책은행의 임피제 직원 업무에 대해서는 은행별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업무 보조 및 후선 지원 등을 하는 게 보통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점 업무가 늘어났을 땐 일시적으로 현장 실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기본적인 업무 처리 및 점검을 담당하는 한 국책은행 직원은 “기존에는 지점장을 하면서 최전방에서 영업을 책임졌는데 임피제 이후에는 숫자 확인 등 단순 작업만 하고 있다”며 “업무 경험과 네트워크를 생각하면 아직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예 업무에서 배제되는 일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직원 교육이나 연수로 대체한다. 6개월가량을 연수에만 투입하는 곳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대규모 연수 등마저 어려워져 재택 연수를 시키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탓에 임피제 직원들의 심리적 박탈감도 크다. 임피제가 시작되면 임금이 깎일 뿐 아니라 직급도 내려간다.

하지만 대부분 관리자급 이상인 탓에 이미 노조에서 탈퇴한 사람이 대다수다. 단체 협상 등에서 임피제 직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할 뿐 아니라 복지 등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많다. 이 때문에 각 국책은행은 별도의 임피노조(시니어노조)를 꾸려 단체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노사 갈등도 커졌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지점장급 이상 관리직을 거친 인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상황을 받아들면서 느끼는 무력감이 컸다”며 “명예퇴직 제도를 현실화해 생산성이 떨어진 임피 직원들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신입 직원을 뽑는 게 은행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