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정서상으로는 먼 나라라는 의미다. 최근엔 수출 규제에 코로나까지 겹쳐 정말로 먼 나라가 됐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나라임은 분명하다. 싫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고대사에서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백제였다. 일본은 백제를 특별 대우했다. 대표적인 예로 백제(百濟)를 ‘구다라(くだら)’라고 불렀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구다라의 어원 중 하나는 ‘대국(큰 나라)’이다. 일본엔 ‘구다라 나이(くらだない)’란 표현이 있다. 구다라에 ‘없다’란 의미의 형용사 나이를 붙였다. 직역하면 ‘백제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으로 ‘촌스럽다’란 뜻이다. 백제스럽지 않으면 멋이 없다고 할 만큼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백제를 불렀다.

일본엔 백제와 관련된 지명도 많다. 나라현의 고료초 구다라(廣陵町 百濟)와 시가현의 햐쿠사이지초(百濟寺町)가 대표적이다. 시가현에는 백제인 후손이 건설했다는 일본 중요무형문화재인 ‘백제사(百濟寺)’란 유명한 절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백제의 사찰인 범각(梵閣) ‘용운사(龍雲寺)’를 본떠 창건했다.

백제의 술도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최고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응신천황(應神天皇)이라는 일왕이 수수허리(須須許理)라는 백제인이 빚은 술을 마시고 이렇게 말했다. “수수허리가 빚는 향기로운 술에 나는 취해 버렸네. 무사 평안한 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술에 나는 취해 버렸네.” 이는 일본 술 역사에서 큰 사건으로 일본 사케 소믈리에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이후 573년 교토의 사가 신사(佐牙神社)라는 곳에서 수수허리를 일본 사케의 신으로 모셨다. 수수허리는 일본 헤이안 시대에 쓰인 ‘연희식(延喜式)’이라는 문헌에서 수수보리(須須保利)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이 단어는 일본 남쪽 지역에서 누룩과 콩, 현미 식초를 넣은 발효 및 절임 음식의 이름으로 쓰인다. 재일동포 출신인 정대성 사가현립대 인간문화학부 교수는 저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음식》에서 사케의 어원이 한국어 ‘삭다’라고 썼다. ‘삭다→ 삭아→사카→사케’가 됐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사케의 신이 된 또 다른 한반도인이 있다. 일본 고대 역사의 기틀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하타(秦) 씨족이다. 일본 서기에 따르면 하타 씨족은 백제 궁월군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볍씨를 전해줘 저수지와 논을 만들었고,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는 고류지(廣隆寺)라는 절도 지었다. 무엇보다 술 빚기 기술이 뛰어났다. 하타 씨족을 기리는 신사는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인 마쓰오 타이샤(松尾大社)다. 일본 사케 양조장 대표와 기술자들은 매년 이곳에 와서 이 가문을 기린다. 자신들의 양조장에 위패를 모시고, 술을 빚기 시작할 때 술의 신 하타에게 절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2000년 전 일본에 술 빚는 기술을 전했다. 우리의 조상은 일본에서 사케의 신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본 사케는 모두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대로 문화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문화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술이 내게 알려준 또 다른 가치다.

명욱 <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