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보험 손실과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된 행사 보상 등의 이슈로 2020년 결산 결과 8억78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독일 보험기업 알리안츠(Allianz)는 코로나19로 인한 유럽 국가들의 잇따른 셧다운으로 기업 영업손실 보상 보험금 청구액이 증가하고 자동차·여행자 보험 수요가 감소해 2020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9.3% 감소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등을 계기로 기후변화 등 환경적 요인이 실제로 금융회사의 물리적 손실과 건전성, 유동성, 수익성 등 재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그리고 이는 지속가능금융 시장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2020년 글로벌 ESG 채권은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7000억달러가 발행됐으며, ESG ETF (지수연동펀드) 및 관련 펀드에 대한 자금 유입세도 폭발적이다. 글로벌 펀드평가사 모닝스타(Morningstar)에 따르면 ESG ETF 및 관련 펀드에 2021년 1분기 중에만 1853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으며, 2021년 1분기 말 운용자산이 1조 9845억 달러에 육박하는 등 글로벌 자금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글로벌 주요 금융사의 행보와 경영전략이 눈에 띈다. 블랙록은 2020년 1월 ‘기후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둔 포트폴리오 재편을 발표했으며, 핵심 투자 플랫폼 알라딘(Aladdin)에 지속가능성(Aladdin Sustainability)과 기후변화(Aladdin Climate) 기능을 탑재해 물리적·전환 리스크 측정과 평가, 기후리스크 조정 밸류에이션 기능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인덱스 투자뿐만 아니라 모든 액티브·사모투자에 ESG 요소를 반영하는 세부 계획을 내놨다. 현재 운용 중인 26개 ESG ETF 외 향후 다양한 ESG ETF를 출시하고, 투자상품에 풍부한 ESG 정보를 공시해 높아진 투자자의 눈높이를 맞출 계획이다.

유럽 디지털 금융의 선도주자인 BBVA는 2018년 발표한 2025 선언(Pledge 2025)에서 2025년까지 녹색금융 등에 지원하기로 한 1000억유로 중 이미 50%(501.6억 유로)를 이행했다. 이 중 60%는 녹색금융 상품으로, 녹색지수 연계대출, 녹색금융 프로젝트 금융, 녹색(구조화)채권 및 지속가능인증 주택 구입이나 사회적책임투자(SRI) 연계 개인연금 상품 등을 출시했다. 또한 BBVA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혁신 금융상품을 통해 금융접근성과 포용성 제고뿐만 아니라 중장기 고객 기반을 확보하며 지속가능금융을 실천 중이다.

한국은 유럽 등 타 국가와 비교했을 때 ESG 공시나 분류체계(Taxonomy) 기준 설정 등 상대적으로 ESG 환경이 다소 늦게 조성되고 있으나, 최근 금융사들이 발 빠르게 대응 방안을 수립 중이다.

2021년 3월 국내 113개 금융기관들은 ‘2050 탄소중립’ 지지와 동참에 대한 공동 선언을 하고, 주요 금융사들은 ESG 위원회 등을 신설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금융사는 2021년 초 146개 사로 2018년 대비 가입기관 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2018년 말 1조3000억원에 불과했던 SRI 상장 채권 시장도 2021년 6월 말 125조원으로 급성장했으며, 초기 은행 외 카드사, 캐피탈사 등의 참여 역시 활발하다. 국내외 ESG 경영 열풍 속 금융사들이 선언적 차원을 넘어 진정으로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전략과 연계된 ESG 경영의 장기 비전과 목표 수립이 필수적이다.

우선 금융사는 실물경제의 핵심적인 자금중개자이자 전 사회구성원이 이해관계자인 만큼 공공성을 포함한 ESG 비전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ESG 가치와 목표에 대해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이 확고한 의지와 책임성을 지니며, ESG위원회 신설과 기능 강화 등을 통해 ESG 가치가 전사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지배구조를 정립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임직원에게 ESG가치를 전파하고, 상품개발, 리스크 관리, 투자정책, 컴플라이언스, 내부감사 등 밸류체인에 ESG 요소를 유기적으로 내재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는 ESG 정보 취득과 리스크 식별, 측정과 평가, 모니터링과 보고 등 일련의 절차가 과학적이고 일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ESG 리스크 관리 프로세스와 자사 비즈니스 전략을 연계하며 금융사는 ESG 가치와 혁신을 지향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금융사들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은 단순한 기부활동이 아닌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접근성 등 금융 본연의 역할 강화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정부의 정책, 기업의 경영환경 변화,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금융회사의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이니셔티브 가입이나 선언을 통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장기 과제이자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금융회사의 특성을 반영하여 어떤 부분을 ESG와 접목하고, 장기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지 경영진의 치열한 고민과 이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자세와 인식 역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