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들이여 먼저 인간이 되자[김태엽의 PEF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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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요즘 이런저런 채널들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이것저것을 여쭤보시는데 (참고로 인스타 디엠 뭐 이런 건 아니다), 그 중 이른바 ‘회장님’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을 공유해 보겠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그 질문.
“어떻게 하면 (좋은) 경영진을 구성하나요?” (실제 워딩: “사람 좀 추천 해 봐 아님 그 쪼만한 PE 때려치고 형한테 와서 일 좀 해 봐봐.”)
필자는 기본적으로 CEO-CSO-CFO 삼위일체를 골자로 하는 팀 구성 추종자이지만, 본고의 독자들을 고려해서 그 중에서 CFO 섹션만 싹 빼서 이야기 해보겠다. 시작해 보자.
유능한 CFO라고 이야기 할 때 이른바 ‘뽑는 분들’은 무엇을 가장 최우선 시 할까? 막 나열해보자 - 학력, 나이, 경력, 기술/자격증, 리더쉽, 꼼꼼함, 인성, 연봉, IPO 혹은 투자유치 경험, 현재 다니는 회사, 향후 희망 진로, 남들의 평가 등등. 자, 독자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가? 다 중요한 거 같은가?
나는 이 질문에 0.01초 만에 답할 수 있다. 정직함. 혹은, 좀 더 포괄적으로 인성. 놀라운가?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정 수준 이상’되는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려한 경력과 실력을 갖춘 “독사”보다는, 정직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분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럼 이런 관점에서 절대로 안되는 점들은 뭐가 있을까? 나는 금전 사고 이력, 나쁜 술버릇, 복잡한 사생활, 속을 알 수 없는 성격/말이 행동에 앞서는 허언증 환자들, 그리고 돈에 대한 너무 강한 집착을 극도로 기피한다. 여기서 제일 쉽게 체크할 수 있는 점은 ‘나쁜 술버릇’과 ‘돈에 대한 집착’이다. 내 마음의 상처들로 남겨진 사례를 들추어보자.
◆개인기 뛰어난 '젊은피' CFO X씨의 술주정
몇년전 소비재 유통을 주로하는 A회사를 투자하면서 경영진을 구성하는데, 늘 그러했듯이 CFO에 좀 파격적인 인사 채용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X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작은 회사에 CFO를 해 본 경험이 있었고,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CPA를 취득하고, 회계사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다양한 섹터에서 일해 왔다. 이런 다양한 경력 덕분에 이른바 ‘10년만 더 고생하면’ 최고 경영진이 될 자질이 보였던 꿈나무였다.
당시 A회사를 경영해 오시던 기존 대주주인 A대표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X씨를 적극 옹호 했다. 조직을 좀 더 젊고 역동적으로 바꾸자는 대의에 밀려 결국 A대표님도 필자의 의견에 동의해 주셨다. 얼마 지나지않아 X씨가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았다. 당시 X씨가 일하던 그룹, 그리고 X씨를 스카웃 하려고 눈도장을 찍어 두고 있었던 몇몇 대기업 오너분들은 우리들에게 연락해서 “똑똑이 빼가서 너무 부럽네”, “투자가 끝나면 그 친구 나한테 보내달라”, “비슷한 친구 추천 좀 해달라” 등등 필자의 어깨에 뽕이 들어갈만한 칭찬을 듬뿍 해주셨다.
X본부장의 첫 2년은 그야말로 화려한 개인기의 연속이었다. 소비재 산업의 관리 경험을 살려 신제품 출시를 주도하고, Bolt-on M&A를 발굴 및 실행하고, 그렇게 인수한 계열사 중 하나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슈퍼 CFO 역할을 해왔다. 자기 조직을 꾸리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전략팀을 신설하고 같이 일했던 외부 인재들을 하나 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내마음에 쏙 들었던 X본부장은, 그러나 회사의 다양한 조직에서 원망과 불평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는 회장님으로 직함을 바꾼 기존 대주주 A 대표님은 X본부장을 “니편 내편으로 나눠 조직에 분란을 불러일으키고 나이 든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버릇 없는 청년”으로 표현하셨고, 수차례 선수교체를 요청하셨다. X본부장과 함께 채용한 A회사의 대표이사 역시 X본부장이 함께 일하기가 좀 힘들만큼 성격이 세고, 이른바 '말이 잘 안통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급기야 그가 '내 편이 아니다'고 분류한 기존의 우수한 직원들이 줄퇴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회사의 기존 경영진이 너무 느리고 옛날 스타일의 조직 문화에 젖어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치부해왔던 나는,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방법을 찾아보자. 소통이다. 그래서 나는 그 X본부장을, 우리 팀과 A회사의 대표이사,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다른 회사의 믿을만한 경영진들과 사적인 자리에 많이많이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스킨십 전략. 당연히 이렇게 해서라도 버릇없는 천재를 겸손한 젊은 리더로 만들고 싶은 애정을 갖고.
곪은 곳은 들여다 보면 금방 찾게 된다. 공들여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X본부장이 심각한 술 문제(주사)가 있고, 다소 어려웠던 어린 시절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단기간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업을 준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경영진으로서 근본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기야 어느 날, X본부장의 되돌릴 수 없는 술 주정 사태가 또 터졌다. 주말 밤을 꼬박 새우며 논의한 끝에 나와 대표이사는 결국 지난 3년간 회사 성장의 일등 공신 중 하나였던 X본부장을 즉각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여러 중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기간 회사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성격 서글서글한 CFO를 새로 뽑고, 대표이사에 대한 리더십 코칭을 같이 붙이면서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회사는 해마다 30% 수준의 실적 상승을 보이고 있다. ◆호불호 갈리는 '여포 스타일' CFO Y씨의 고생담
해피엔딩으로 끝난 비슷한 사례도 있다. Y본부장은 내가 컨설턴트 때부터 알고 친하게 지내던 학교 선배였다. 똑똑하고, 리더십 있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Y본부장은 중견 그룹에서 계열사 대표도 해보고, 그룹 전체 전략도 총괄해 보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Y본부장의 성격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 내 정치도 참 못해서 기존에 몸담았던 그룹에서 Y본부장으로부터 숙청을 당했던 간신형 경영진들이 조직적으로 ‘술 문제가 있다’는 둥, ‘직원을 팬다’는 둥 온갖 모략을 하곤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호불호가 뚜렷한 여포 같은 캐릭터였던 것이다.
때마침 우리는 B그룹과 함께 회사를 인수하면서 CFO를 추천하기로 하였고, 나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늘 탐을 냈던 Y본부장을 바로 모시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과정에서 Y본부장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B그룹 사장단 귀에 들어간 것이다. 주주간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B그룹의 모 사장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10년 넘게 직접 알고 지내던 Y본부장의 사람 됨됨이와 정직함,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젊은 날의 성공과 그에 못지 않은 역경을 통해 쌓은 경험. 나는 Y본부장이 적임자라고 계속 밀어붙여서 결국 자리에 앉혔다. Y본부장의 관점에서 보면, 본의 아니게 미운털이 박힌 채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의 B그룹 초반부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Y본부장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 것은 시간이었다. 4년 가량이 지나 우리가 엑시트(exit·투자 회수)를 할 무렵의 Y본부장은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B그룹에 정착한 상태였다. 사람 됨됨이와 실력을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준 덕분이다. 처음에 그를 강력 반대했던 B그룹의 모 사장은 Y본부장의 팬클럽 회원이 됐다. B그룹에서는 ('어펄마 사람'이라는 도장이 너무 뚜렷하게 찍혀 있었음에도) Y본부장에게 계열사 대표이사로 남아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Y본부장은 필자와 아직 함께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가 인수한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정직한 CFO가 모두 훌륭하진 않지만, 훌륭한 CFO는 정직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진짜로 꿈을 꾼다. 잃어버린 탕아인 X본부장이 다시 새 사람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인생의 3막을 시작하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는 녹록치가 않다. 왜 그럴까?
나는 훌륭한 CFO의 가장 큰 자질을 ‘정직함’과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시간과 기회가 있으면 익힐 수 있다. ESG경영이니, IPO 경험이니, 인수 합병이니 하는 것 모두 열심히,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 글을 읽는 CFO 혹은 후보자라면 누구든 1-2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몸 안에서 우러나오는 정직함,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성실함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특히 돈을 만지는 직업인 CFO라면 정직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자 그럼 정직한 CFO 혹은 CFO 후보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물론 만능 열쇠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는 다음의 몇 가지를 확인한다. (맛집 비법 공개이다)
(1) 술을 마시면 (즉 이성의 영역이 약해지면) 사람이 변하는지
(2) 일이 먼저인지 돈이 먼저인지
(3) 행복한 (최소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쌈짓돈의 유혹에 무너질 리스크가 없는지)
(4)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 있는지
어펄마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직원들은 옛날 스타일로 회식 면접을 본다. 물은 누가 따르는지, 주문은 누가 하는지, 휴지는 누가 깔아주는지 잘 관찰해보면 말보다 훨씬 소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임원 후보들을 뽑을 때 그들의 예전 상사도 중요하지만 그들이랑 같이 일했던 동료나 가능하면 부하직원들의 생생한 피드백을 구해 본다. 그 후보의 본질에 근접한 정보를 준다. 많은 이들은 강약약강(强弱弱强)이기 때문이다. 보스에게는 알랑 방귀를 뀌고 부하에게는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사람의 본질은 아래쪽에서 더 잘 보인다.
가정도 중요하다. CFO도 사람인지라 집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일에 집중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식이 있고 결혼한 사람만 좋은 후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내 최애 CFO분들 중에도 싱글로 지내시는 분, 중년의 연애 중이셨던 분, 노키즈 부부셨던 분 등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받는 사람들이 사랑을 줄 수 있다. 회사도 조직도 사랑을 먹고 큰다.
정직하고 됨됨이가 좋고 성실한 CFO 후보를 찾았다면, 그다음은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팀을 짜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 “기술”은 금방 익힐 수 있다. 회계가 약하면 나이가 좀 많더라도 노련한 회계 팀장을 붙여주고, IPO 경험이 없으면 유능한 뱅커를 소개해 주고 과장급 정도에서 IPO 언저리 일을 해 본 팀원을 넣어주면 된다.
여기서 내가 상관 안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학력, 나이, 출신 기업 그리고 성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좋은 경영진을 구성하는데 비법은 없다고 본다. 비슷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이라면 성격 좋고 잘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모아주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쓸데없는 일들은 없에주고 원하는 곳에 자원을 지원해 주면 된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CFO들이여 좋은 인간이 되자. 나도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 나를 뒤돌아 보자 – 나는 주정뱅이인가, 부하 직원들이 진심으로 존경해 주는가,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은 미리미리 찜해두자. 좋은 사람들끼리 좋은 일을 즐겁게 하다보면 벌기 싫어도 돈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우리 다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
“어떻게 하면 (좋은) 경영진을 구성하나요?” (실제 워딩: “사람 좀 추천 해 봐 아님 그 쪼만한 PE 때려치고 형한테 와서 일 좀 해 봐봐.”)
필자는 기본적으로 CEO-CSO-CFO 삼위일체를 골자로 하는 팀 구성 추종자이지만, 본고의 독자들을 고려해서 그 중에서 CFO 섹션만 싹 빼서 이야기 해보겠다. 시작해 보자.
유능한 CFO라고 이야기 할 때 이른바 ‘뽑는 분들’은 무엇을 가장 최우선 시 할까? 막 나열해보자 - 학력, 나이, 경력, 기술/자격증, 리더쉽, 꼼꼼함, 인성, 연봉, IPO 혹은 투자유치 경험, 현재 다니는 회사, 향후 희망 진로, 남들의 평가 등등. 자, 독자 여러분은 무엇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가? 다 중요한 거 같은가?
나는 이 질문에 0.01초 만에 답할 수 있다. 정직함. 혹은, 좀 더 포괄적으로 인성. 놀라운가?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정 수준 이상’되는 후보들이 물망에 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려한 경력과 실력을 갖춘 “독사”보다는, 정직하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분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그럼 이런 관점에서 절대로 안되는 점들은 뭐가 있을까? 나는 금전 사고 이력, 나쁜 술버릇, 복잡한 사생활, 속을 알 수 없는 성격/말이 행동에 앞서는 허언증 환자들, 그리고 돈에 대한 너무 강한 집착을 극도로 기피한다. 여기서 제일 쉽게 체크할 수 있는 점은 ‘나쁜 술버릇’과 ‘돈에 대한 집착’이다. 내 마음의 상처들로 남겨진 사례를 들추어보자.
◆개인기 뛰어난 '젊은피' CFO X씨의 술주정
몇년전 소비재 유통을 주로하는 A회사를 투자하면서 경영진을 구성하는데, 늘 그러했듯이 CFO에 좀 파격적인 인사 채용을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X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작은 회사에 CFO를 해 본 경험이 있었고, 유수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CPA를 취득하고, 회계사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다양한 섹터에서 일해 왔다. 이런 다양한 경력 덕분에 이른바 ‘10년만 더 고생하면’ 최고 경영진이 될 자질이 보였던 꿈나무였다.
당시 A회사를 경영해 오시던 기존 대주주인 A대표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X씨를 적극 옹호 했다. 조직을 좀 더 젊고 역동적으로 바꾸자는 대의에 밀려 결국 A대표님도 필자의 의견에 동의해 주셨다. 얼마 지나지않아 X씨가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았다. 당시 X씨가 일하던 그룹, 그리고 X씨를 스카웃 하려고 눈도장을 찍어 두고 있었던 몇몇 대기업 오너분들은 우리들에게 연락해서 “똑똑이 빼가서 너무 부럽네”, “투자가 끝나면 그 친구 나한테 보내달라”, “비슷한 친구 추천 좀 해달라” 등등 필자의 어깨에 뽕이 들어갈만한 칭찬을 듬뿍 해주셨다.
X본부장의 첫 2년은 그야말로 화려한 개인기의 연속이었다. 소비재 산업의 관리 경험을 살려 신제품 출시를 주도하고, Bolt-on M&A를 발굴 및 실행하고, 그렇게 인수한 계열사 중 하나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슈퍼 CFO 역할을 해왔다. 자기 조직을 꾸리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전략팀을 신설하고 같이 일했던 외부 인재들을 하나 둘씩 데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내마음에 쏙 들었던 X본부장은, 그러나 회사의 다양한 조직에서 원망과 불평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는 회장님으로 직함을 바꾼 기존 대주주 A 대표님은 X본부장을 “니편 내편으로 나눠 조직에 분란을 불러일으키고 나이 든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버릇 없는 청년”으로 표현하셨고, 수차례 선수교체를 요청하셨다. X본부장과 함께 채용한 A회사의 대표이사 역시 X본부장이 함께 일하기가 좀 힘들만큼 성격이 세고, 이른바 '말이 잘 안통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급기야 그가 '내 편이 아니다'고 분류한 기존의 우수한 직원들이 줄퇴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회사의 기존 경영진이 너무 느리고 옛날 스타일의 조직 문화에 젖어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치부해왔던 나는,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방법을 찾아보자. 소통이다. 그래서 나는 그 X본부장을, 우리 팀과 A회사의 대표이사,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다른 회사의 믿을만한 경영진들과 사적인 자리에 많이많이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스킨십 전략. 당연히 이렇게 해서라도 버릇없는 천재를 겸손한 젊은 리더로 만들고 싶은 애정을 갖고.
곪은 곳은 들여다 보면 금방 찾게 된다. 공들여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X본부장이 심각한 술 문제(주사)가 있고, 다소 어려웠던 어린 시절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단기간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업을 준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경영진으로서 근본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기야 어느 날, X본부장의 되돌릴 수 없는 술 주정 사태가 또 터졌다. 주말 밤을 꼬박 새우며 논의한 끝에 나와 대표이사는 결국 지난 3년간 회사 성장의 일등 공신 중 하나였던 X본부장을 즉각 경질하기로 결정했다. 워낙 여러 중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기간 회사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성격 서글서글한 CFO를 새로 뽑고, 대표이사에 대한 리더십 코칭을 같이 붙이면서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회사는 해마다 30% 수준의 실적 상승을 보이고 있다. ◆호불호 갈리는 '여포 스타일' CFO Y씨의 고생담
해피엔딩으로 끝난 비슷한 사례도 있다. Y본부장은 내가 컨설턴트 때부터 알고 친하게 지내던 학교 선배였다. 똑똑하고, 리더십 있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Y본부장은 중견 그룹에서 계열사 대표도 해보고, 그룹 전체 전략도 총괄해 보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Y본부장의 성격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 내 정치도 참 못해서 기존에 몸담았던 그룹에서 Y본부장으로부터 숙청을 당했던 간신형 경영진들이 조직적으로 ‘술 문제가 있다’는 둥, ‘직원을 팬다’는 둥 온갖 모략을 하곤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호불호가 뚜렷한 여포 같은 캐릭터였던 것이다.
때마침 우리는 B그룹과 함께 회사를 인수하면서 CFO를 추천하기로 하였고, 나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늘 탐을 냈던 Y본부장을 바로 모시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과정에서 Y본부장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B그룹 사장단 귀에 들어간 것이다. 주주간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B그룹의 모 사장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나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10년 넘게 직접 알고 지내던 Y본부장의 사람 됨됨이와 정직함,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젊은 날의 성공과 그에 못지 않은 역경을 통해 쌓은 경험. 나는 Y본부장이 적임자라고 계속 밀어붙여서 결국 자리에 앉혔다. Y본부장의 관점에서 보면, 본의 아니게 미운털이 박힌 채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의 B그룹 초반부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Y본부장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 것은 시간이었다. 4년 가량이 지나 우리가 엑시트(exit·투자 회수)를 할 무렵의 Y본부장은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B그룹에 정착한 상태였다. 사람 됨됨이와 실력을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준 덕분이다. 처음에 그를 강력 반대했던 B그룹의 모 사장은 Y본부장의 팬클럽 회원이 됐다. B그룹에서는 ('어펄마 사람'이라는 도장이 너무 뚜렷하게 찍혀 있었음에도) Y본부장에게 계열사 대표이사로 남아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Y본부장은 필자와 아직 함께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가 인수한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정직한 CFO가 모두 훌륭하진 않지만, 훌륭한 CFO는 정직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진짜로 꿈을 꾼다. 잃어버린 탕아인 X본부장이 다시 새 사람이 되어 나에게 돌아와 인생의 3막을 시작하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는 녹록치가 않다. 왜 그럴까?
나는 훌륭한 CFO의 가장 큰 자질을 ‘정직함’과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시간과 기회가 있으면 익힐 수 있다. ESG경영이니, IPO 경험이니, 인수 합병이니 하는 것 모두 열심히,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 글을 읽는 CFO 혹은 후보자라면 누구든 1-2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몸 안에서 우러나오는 정직함,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성실함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특히 돈을 만지는 직업인 CFO라면 정직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자 그럼 정직한 CFO 혹은 CFO 후보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물론 만능 열쇠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는 다음의 몇 가지를 확인한다. (맛집 비법 공개이다)
(1) 술을 마시면 (즉 이성의 영역이 약해지면) 사람이 변하는지
(2) 일이 먼저인지 돈이 먼저인지
(3) 행복한 (최소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쌈짓돈의 유혹에 무너질 리스크가 없는지)
(4)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 있는지
어펄마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직원들은 옛날 스타일로 회식 면접을 본다. 물은 누가 따르는지, 주문은 누가 하는지, 휴지는 누가 깔아주는지 잘 관찰해보면 말보다 훨씬 소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임원 후보들을 뽑을 때 그들의 예전 상사도 중요하지만 그들이랑 같이 일했던 동료나 가능하면 부하직원들의 생생한 피드백을 구해 본다. 그 후보의 본질에 근접한 정보를 준다. 많은 이들은 강약약강(强弱弱强)이기 때문이다. 보스에게는 알랑 방귀를 뀌고 부하에게는 본성을 드러내곤 한다. 사람의 본질은 아래쪽에서 더 잘 보인다.
가정도 중요하다. CFO도 사람인지라 집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일에 집중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식이 있고 결혼한 사람만 좋은 후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내 최애 CFO분들 중에도 싱글로 지내시는 분, 중년의 연애 중이셨던 분, 노키즈 부부셨던 분 등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받는 사람들이 사랑을 줄 수 있다. 회사도 조직도 사랑을 먹고 큰다.
정직하고 됨됨이가 좋고 성실한 CFO 후보를 찾았다면, 그다음은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잘 극복할 수 있는 팀을 짜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 했듯, “기술”은 금방 익힐 수 있다. 회계가 약하면 나이가 좀 많더라도 노련한 회계 팀장을 붙여주고, IPO 경험이 없으면 유능한 뱅커를 소개해 주고 과장급 정도에서 IPO 언저리 일을 해 본 팀원을 넣어주면 된다.
여기서 내가 상관 안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학력, 나이, 출신 기업 그리고 성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좋은 경영진을 구성하는데 비법은 없다고 본다. 비슷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이라면 성격 좋고 잘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모아주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쓸데없는 일들은 없에주고 원하는 곳에 자원을 지원해 주면 된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CFO들이여 좋은 인간이 되자. 나도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 나를 뒤돌아 보자 – 나는 주정뱅이인가, 부하 직원들이 진심으로 존경해 주는가,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은 미리미리 찜해두자. 좋은 사람들끼리 좋은 일을 즐겁게 하다보면 벌기 싫어도 돈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우리 다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