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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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모든 직장인이 바라고 바라던 휴가철이 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도 조심스러우나, 업무 걱정 없이 오로지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열대야로 밤잠 못 이루는 7월 중순까지도 휴가원을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들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먼저 휴가 얘기를 꺼내지 않는 상사 눈치만 보다 휴가 계획을 언급조차 못 하는 게 월급쟁이의 서러움이죠. 섣부르게 휴가원을 제출했다가 위아래 없는 직원으로 찍히기는 싫은 마음에 매일 아침 상사의 동태만 살필 뿐입니다. 휴가를 쓰기 위한 정당한 이유를 대라며, 밀린 업무를 다 마치고 가라며 압박을 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죠.

'나는 그런 상사가 아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휴가 가지고 눈치를 주느냐'는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2년 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고, 고용노동부도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관련 문제는 매년 직장갑질119에 들어오는 주요 신고 사례 중 하나로 꼽힙니다.

어찌 보면 참 서럽습니다. 연차가 낮을수록 쓸 수 있는 휴가일은 적은데,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마저 침해하는 상사라니요. 이번에는 자신도 모르게 갑질을 일삼는 일부 상사에게 250년 전에 쓰인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무려 30여년간 단원들의 존경과 공경을 한 몸에 받고, 죽어서도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따뜻한 호칭으로 불리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작품이 그 주인공입니다.

단원들을 위한 교향곡 '고별'…'완벽한 인성' 존경 한 몸에

하이든은 한국인이라면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봤을 법한 친숙한 음악가입니다. 꼬불거리는 머리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기억될지 모르겠으나, 음악계에서 그는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갖춘 완벽한 리더로 평가받는 유일무이한 인물입니다. 오죽하면 '파파 하이든'이라는 애칭까지 있었을까요.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사진=한경DB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사진=한경DB
하이든의 온유한 성품과 비할 데 없는 센스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선 그의 제45번 교향곡 '고별'의 뒷이야기를 살펴야 합니다. 하이든은 1761년부터 약 30년간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음악가였습니다. 궁정 음악가라 하니 고귀한 직함이라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 기본적으로 음악가가 가지는 신분은 철저한 '을(乙)'에 불과했죠. 자신의 역량을 알아주는 왕족이나 후원자를 만나는 건 더 없는 행운이었으나, 언제든 그들의 눈에 잘못 들면 가차 없이 쫓겨날 수 있는 열악한 직업이었습니다.

하이든 역시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총애를 받고 있어 쉽게 내쳐질 처지는 아니었으나, 그의 명령에 반하는 행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죠. 당시 하이든의 음악을 좋아했던 후작은 오스트리아에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별궁을 짓고 매일 손님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여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별궁에서 머물러야 했는데, 그 기간만 무려 1년이 넘었다고 하죠. 당시 단원 중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인물이 네다섯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원 대다수가 1년간 단 하루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쉬지 않고 연주만 했단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병을 앓는 단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자, 이들을 끔찍이 생각했던 하이든은 현 상황을 탈피할 묘책을 내게 됩니다. 후작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그리고 해고의 두려움으로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단원들의 심정을 전달하는 마음을 대신 전하기로 한 겁니다. 많은 고민 끝에 하이든이 내건 협상 도구는 바로 고별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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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단조의 고별 교향곡은 하이든의 음악 중 드물게 나타나는 슬픈 멜로디가 전반에 깔리는 작품입니다. 제1악장에서 이따금 밝은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내 사라지고 구슬픈 가락이 주를 이루죠. 이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제4악장입니다. 곡 후반부에서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듯한 곡조가 드리우면 호른과 오보에, 베이스와 첼로 등의 악기 연주자들이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떠나갑니다. 이처럼 한 악기군씩 무대를 벗어나면 마지막으로 무대에 남은 바이올린 주자 2명이 처량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작품을 마치죠.

하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저항을 한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후작이 평소 매우 애정했던 자신의 음악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했단 점이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방식으로 뜻을 밝혀 혹시라도 단원들에게 튈 불똥까지 차단하는 현명함이 돋보이는 지점입니다. 후작은 무대를 본 뒤 바로 하이든의 언어를 이해하고 단원들에 장기휴가 조치를 내렸다고 하죠. 지금도 이 곡을 연주할 때 단원들이 퇴장하는 행위를 선보이곤 합니다. 다만 당시에는 현재와 달리 공연장에 전기가 없어 단원들 각자의 촛불을 켠 상태에서 하나씩 꺼지는 퍼포먼스를 행했기에 '당장 무대를 마치고 떠나고 싶다'는 메시지가 더 피부에 와닿았을 듯 싶습니다.

'빈 고전악파' 실력도 최상위급…교향곡·현악4중주 양식 완성

그렇다면 하이든을 향한 존경의 근원이 뛰어난 인성뿐이었을까요. 이를 무시할 순 없으나 최상위급이었던 작곡 역량이 근저에 깔려있었을 것이란 게 중론입니다. 하이든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 함께 전형적인 고전주의 음악 형식을 확립한 '빈 고전악파'의 핵심 인물로 꼽힙니다. 특히 고전주의 기악 작품의 기본 양식을 창조해낸 점은 지금까지 회고되는 핵심 성과 중 하나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사진=한경DB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사진=한경DB
오늘날 우리가 듣는 4악장 교향곡 형식의 기틀을 완성한 음악가가 바로 하이든입니다. 당시엔 3개 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형식이 일반적이었는데, 하이든은 미뉴에트 구성의 1개 악장을 추가해 보다 합리적이고 풍부한 음악 형식을 고안해냈죠. 실내악 주요 구성 중 하나인 현악4중주의 탄생을 알린 작곡가도 바로 하이든입니다. '러시아 4중주'라 불리는 하이든의 현악4중주 작품은 2대의 바이올린과 1대의 비올라, 1대의 첼로 구성이 낼 수 있는 가장 정교한 기법을 구현한 시작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작품을 구상하는 하이든에 존경의 마음을 가졌던 모차르트는 자신의 현악4중주 제15번을 직접 하이든에 헌정하기도 했죠.

하이든의 천재적 작곡 역량은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서도 증명됩니다. 하이든은 108개의 교향곡, 68개의 현악 4중주곡 등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긴 작곡가입니다. 대작곡가들의 평균 교향악 작품 수가 10곡 안팎이란 점을 감안하면 10배가량의 차이죠. 눈여겨봐야 할 점은 양은 물론 질까지 완벽했단 점입니다. 하이든은 '슬픔' '놀람' '시계' 교향곡, '종달새' '황제' '세레나데' 현악4중주곡 등 세기의 역작을 남기면서도 졸렬한 태작은 단 한 곡도 선보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렇다 보니 당시 하이든은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음악가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기품을 갖춘 세련된 곡조,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 등으로 하이든의 음악은 전 유럽에 퍼졌고 각계 저명인사들이 그를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고 하죠. 1809년 나폴레옹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했을 당시 하이든을 존경했던 나폴레옹이 보초들로 하여금 그의 집을 지키도록 한 일화는 하이든을 향한 유럽인들의 공경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합니다.

엄청난 유명세에도 자만하지 않고 아랫사람을 돌보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악단 단원부터 당대 최고의 장군에까지 존경을 받았던 하이든. 그의 모습은 서거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주는 듯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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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직도 자신의 부서에 휴가원을 제출하지 못한 후배가 있다면 "라떼는 말이야"라는 언변보다는 "휴가는 언제 가니"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면 어떨까요. 자신의 몸보다 큰 업무 압박에 버거워하는 후배에겐 그 말 한마디가 자신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봐 주는 감사함으로 전달될 테니 말입니다. 후배가 마음으로 따르는 상사의 조건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과거 자신이 당했던 부당함을 그대로 투영하지 않고 현재의 그를 한 사람으로서 존중해주는 것. 잊지 말아 주십시오. 모두에겐 사회초년생 시절이 있었고 모든 순간이 뼈저리게 힘들었으며, 그 속에서 피어나는 존경심의 계기는 아주 사소했단 사실을 말입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