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관련 합동감찰 결과 브리핑을 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뉴스1
14일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관련 합동감찰 결과 브리핑을 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뉴스1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 의혹 사건'과 관련해 지난 14일 법무부·대검찰청의 합동감찰 발표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관련 사안을 취재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언제적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인가' 였습니다. 수사는 못해도 10년 전에 마무리 된 사건이고 1심도 아닌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6년 전에 난 사건입니다.

그리곤 또 하나의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뿐만 아니라 그외 다른 사건들도 함께 검토해 지난 수년간 검찰 수사 관행을 되돌아보겠다고 야심차게 시작된 합동감찰에서 왜 '한명숙 전 총리' 사건만 언급되고 끝났을까.

결국 돌고돌아 '한명숙'

지난 3월 법무부는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대검찰청에 합동감찰을 지시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들의 수사 과정도 들여다보며 "누굴 벌주거나 징계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제도개선, 조직문화 개선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 하는" 합동감찰을 진행하겠다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밝혔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은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건입니다. 만약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대법이 원심을 깨고 파기환송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법원은 징역 2년의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10일 대법원은 "유죄를 뒷받침한 증언이 검사의 압박이나 회유로 '오염'됐을 수 있다"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뇌물수수 사건을 파기환송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미 한 차례 마무리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지난해 한 언론이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무리하게 수사하기 위해 고(故) 한만호 전 대표 등을 압박해 진술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한 전 대표의 동료 재소자 최모씨는 "수사팀이 재소자들에게 위증을 하도록 사주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습니다.

대검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혐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에 박범계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다시 기소 여부를 판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대검은 박 장관의 의사를 받아들여 대검 부장·고검장 회의를 열고 해당 혐의의 실체가 있는지를 논의했음에도 재차 불기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박 장관은 '당시 수사에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다"며 법무부-대검 합동감찰을 다시 지시했습니다.

당시 박 장관은 한 전 총리 사건을 포함해 과거 검찰의 여러 직접수사 사례를 분석한 뒤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난 14일 있었던 합동감찰은 한 전 총리에서 시작해 한 전 총리로 끝났습니다.
징계시효(3년)가 지나도 한참 지난 한명숙 수사팀 검사들을 감찰한 것, 증인 4명이 1년치 소환된 것을 다 합해 마치 한 명을 100회 소환한 것처럼 '뻥튀기' 한 것, 그외 합동감찰 발표 중간중간 사실관계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한 전 총리 사건만 언급할 게 아니라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지난 몇년 간 특수수사 과정에서 검사들이 잘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들도 함께 지적했다면 이렇게까지 '한명숙 구하기'라는 비판은 안 나왔겠죠. 고칠 건 고쳐야 하는게 맞으니까요.

그런데 몇 년간의 수사 관행 뒤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하면서 결국은 돌고돌아 또다시 한 전 총리 사건으로 돌아오니 '한명숙 구하기'라는 비판이 안 나오겠어요?

-수도권 검찰청의 중간급 간부

"과거에 머물러 계시면 어떡하나"

2019년부터 법조팀을 출입하면서 해가 갈수록 사건들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창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도 따지고 보면 2013년 뇌물수수 사건이 시발점입니다.

옛날 사건이라고 파헤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옛날 사건을 파헤치는 만큼이나 지금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하는 수사도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복수의 현직 검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검찰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부검'과 같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어느 부분이 곪아 있는지, 그 부분을 어떻게 도려내 새 살을 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이미 한 차례 끝난 사안을 다시 꺼내보고, 또 꺼내보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14일 합동감찰 결과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법조계 지적이 쏟아졌고 이에 대한 입장을 묻자 박 장관은 "과거에 자꾸 그렇게 머물러 계시면 어떡하나..."라고 답했습니다.

십분 공감합니다.

다만 미래가 아닌 과거에 머무르게끔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는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박 장관 말처럼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하는 검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옛날 일만큼이나 현재 살아있는 권력을 정면으로 겨냥할 줄 아는 검찰, 정권에 민감한 사안이라고 하여 관련 수사를 뭉개지 않는 검찰, 오직 공정한 수사 하나만 바라보는 검찰, 그로 인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 검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라 배웠습니다. 약 2년간 짧은 시간이지만 법원·검찰을 출입하며 보고 들은 일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부족한 글솜씨로 한줄한줄 썼습니다. 법원, 검찰 안팎에서 '서초동 일지 잘 보고 있다'며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사가 나서 저는 이제 사회부 법조팀이 아닌 다른 부서, 다른 팀에서 다른 '기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서초동 일지가 훗날 이때를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