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트렌드 타고 확산 전망
이같은 일상의 주인공은 이달 초 보험사 '신한라이프'의 새 브랜드 광고 모델로 소비자들에게 눈도장을 톡톡히 찍은 ‘로지(Rosy·사진)’다. 광고 속 개성 있는 얼굴의 여성 모델은 버스정류장과 온실, 지하철 등에서 세련된 춤선을 선보이며 세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튜브에 이달 1일 올라온 해당 광고는 채 3주도 되기 전에 조회수가 135만회를 돌파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속 그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러나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언뜻 의아함이 커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 시국에 번번히 '노마스크' 차림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는 이집트 룩소르에서, 하루는 타히티 보라보라섬에서 등장한 데 이어 눈 내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환상적인 사진을 찍는다. 이유는 그가 이른바 '가상인간'으로도 불리는 버추얼(가상의)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가상인간이라고 하면 일부 독자들은 1998년 등장한 ‘얼굴 없는 가수’ 아담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그래픽(CG)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23년여 간 기술의 발전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에게 전혀 다른 면모를 부여했다.
우선 '외면'이다. SNS 사진상 로지는 언뜻 봐서는 사람과 구분키 어려운 수준의 풍부한 표정과 포즈, 피부 질감 등을 갖췄다. 배경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도 이질감없이 어울린다. 글로벌 모델 아이린과 나란히 사진을 찍었지만, 인간적인 느낌으로도 '굴욕'을 겪지 않는다.
또한 '내면'의 성장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과 딥러닝으로 무장한 LG전자의 김래아가 있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김래아는 올해 1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 등장했다. 이날 김래아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해 낸 목소리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냈다. 래아란 이름은 ‘미래에서 온 아이’란 뜻을 담고 있다. 김래아는 다양한 심리를 SNS 채널에서 드러낸다. 우선 닌텐도 게임인 '모여라 동물의 숲' 속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섬에 방문해 '디제잉 파티'를 즐기는 밝은 면모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목소리 수집 일지'를 적으며 "전 목소리가 필요하다"며 토로하는 정적인 면모도 보인다. LG전자는 김래아 개발 당시 모션캡처 작업을 통해 7만여 건에 달하는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학습시켰다.
LG전자뿐 아니라 삼성전자 역시 다소 다른 결이지만 지난해 가상 인간 플랫폼 ‘네온(NEON)’을 공개한 상태다. 브라질 법인에서는 ‘삼성걸’이라 불리는 가상 영업 트레이너인 샘도 운영 중이다. 시장에서는 버추얼 인플루엔서의 미래 성장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디지털과 게임이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중 Z세대(1996∼2012년생), 그리고 뒤를 잇는 코로나 세대(C세대)의 성향에 비춰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확산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소비자에게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세계가 낯설지 않은 만큼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소구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로지를 통해 '헤라'의 상품과 행사를 알린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본질에 집중한 '보더리스 뷰티'를 지향하는 헤라의 브랜드 철학이 가상인간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헤라의 브랜드 철학을 이야기하고자 선정했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가상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다양한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샤넬 루이비통의 브랜드 모델로 활동한 릴 미켈라가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만 300만명, 틱톡, 페이스북 등을 초함해 5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스타다. 미국 AI 스타트업 브러드가 만든 그는 본인을 '미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19살짜리 로봇'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음반도 낸 미켈라는 지난해에만 1170만달러(130억원)를 벌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는 "2022년에는 전세계 브랜드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투입할 비용이 연간 150억달러(약 17조원)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작년 전세계 기업들이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투입한 돈이 80억달러로 추산되는 만큼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입지도 넓어질 전망이다.
각 사에서는 가상인간이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비춰지는 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로봇이 사람과 닮았지만 사람다움을 느낄 수 없다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불쾌한 골짜기’는 피했지만 과도한 상업성으로 가상인간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김진수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이사는 "신한라이프 광고 이후 로지에 대한 협찬 제안이 쏟아져들어왔는데 되레 아모레퍼시픽 등 일부를 제외하면 시도하지 않고 있다"면서 "추가적인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준비하는 만큼 시작부터 과도한 상업성을 띄는 것은 대중들과의 관계 형성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김래아의 SNS 사진상) 현재까지 외부 브랜드와의 협업이 일부 있었지만 경제적 대가가 오가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김래아씨를) 차근차근 키워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버추얼 인플루엔서라도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성과 도덕적인 문제는 AI 기술과 언제나 함께 따라붙는 문제다. 앞서 AI 챗봇 '이루다'는 개인정보 무단 사용, AI의 학습 과정에서 차별·혐오 등 편향성 논란에 휩싸여 서비스가 중단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를 계기로 개인정보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AI 서비스 개발자와 운영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을 배포한 상태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