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회사 경영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제가 했던 것처럼 주말도 없이 회사에서 일할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서울 근교에서 30년째 전선 부품을 생산하는 A사의 박모 대표는 기업승계 문제로 장남과 갈등을 겪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장남이 “금융권에서 일하겠다”며 회사에 들어오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평생 일군 기업을 물려주고 싶지만, 주 52시간제에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제조업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니 무조건 승계받으라 요구하기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접어든 1세대 중소기업 창업주의 상당수가 “요즘같이 경영 환경이 불확실하고 상속 절차가 까다로운 상황에선 회사를 팔아 자녀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지 않느냐”고 말한다. 인천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B사 대표는 “장부상 기업가치가 수백억원이어도 비상장 주식은 제값에 팔기도 어렵고 업황이 변하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며 “현금이나 부동산으로 주면 원금은 보전할 것 같아 매각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회사를 팔면 주식 지분에 대해 양도소득세까지 내야 하지만 자녀들이 매각을 선호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시행한 상속·증여세 부담 및 기업환경 설문을 보면 경영 승계 계획이 없는 창업주의 경우 그 원인으로 “자녀가 원치 않거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50.2%)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영위업종 전망이 불투명해서’(25.8%)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자녀에게 무거운 책무를 주기 싫어서’(14.6%)가 뒤를 이었다.

기업을 이어받기로 결정한 2·3세 경영자들도 ‘부의 대물림’이란 편견에 대한 고민이 크다. 3대가 소방업을 이어 오면서 소방 엔지니어링 기술을 개발하는 한방유비스의 최두찬 대표는 “재난과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고, 대표가 된 현재도 소방 관련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의 주관 실무를 맡고 있다”며 “가업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에서 승계를 준비했지만 따가운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의 기업승계는 수십 년간 축적된 경영 노하우 및 기술 전수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적으로도 중소기업의 기업승계는 보편적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은 360만 개 중소기업 중 93.6%인 338만 개 기업이 가족 구성원 중 최대 두 명이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각종 리스크를 떠안으며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오너십이 없었다면 기업엔 ‘복지부동’ ‘무사안일’식 문화만 자리잡았을 것”이라며 “창업정책에 버금가는 기업승계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