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한 패스트푸드점 앞에 구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초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한 패스트푸드점 앞에 구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미국의 소셜미디어에서 펜실베이니아주의 버거킹 매장 밖에 내걸린 ‘계약 보너스 1500달러’란 현수막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시급제 직원을 뽑는 게 쉽지 않자 근로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이 돈을 일종의 보너스로 주겠다는 내용이다. 미 기업들이 겪고 있는 구인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 약 80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체인점 맥도날드는 처음 일을 시작하는 직원의 시급을 종전 11달러에서 17달러로 55%나 올렸다. 학업을 병행하는 직원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대학 등록금 혜택도 주기로 했다.

멕시칸 패스트푸드점 치포틀레 역시 초임자 시급을 평균 15달러로 일제히 인상하기로 했다. 미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자사 직원들의 최저 시급을 2025년까지 25달러까지 올리기로 결정했다.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 시급은 7.25달러다.

과거 전문직이나 프로 운동선수에게 주던 ‘계약 보너스’가 트럭 운전사와 호텔 청소부, 창고 근로자 등 서비스업 종사자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최근 보도다.
미국의 각 산업 분야마다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미 노동부 제공
미국의 각 산업 분야마다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미 노동부 제공
지난달 구직 사이트인 집리크루터에 올라온 전체 일자리의 20%가 “입사 보너스를 1회성으로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올 3월만 해도 이 비중은 2%에 불과했다. 3개월새 열 배 늘어난 것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무한 채용 경쟁에 나서는 건 인력 수급 불일치가 심각해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신규 채용 공고는 920만 건으로 사상 최고였으나 실제 채용은 590만 건에 그쳤다. 기업들은 경기 활황 속에서 인력을 더 뽑고 싶어하지만 구직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따지고 있다. 기업들이 ‘당근’을 더 제시할 수밖에 없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미 경제의 예상 밖 호황이다. 올 1분기 6.4% 깜짝 성장한 데 이어 2분기엔 8%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 저축액 및 저축률은 역대 최고치다. 발빠르고 광범위한 백신 배포 및 재정 정책이 제대로 작동한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최저임금 동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방 시급이 2009년 이후 12년째 동결돼 있어서다. 개별 주(州)에서 연방 기준보다 높은 시급 하한선을 둘 수 있지만 펜실베이니아 텍사스 위스콘신 등 20개 주는 여전히 연방 수준을 고집하고 있다.
'입사 보너스 1500달러'를 제시하고 있는 미 펜실베이니아의 버거킹 매장 모습. 월스트리트저널 제공
'입사 보너스 1500달러'를 제시하고 있는 미 펜실베이니아의 버거킹 매장 모습. 월스트리트저널 제공
작년 대선 캠페인 당시 민주당 소속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저 시급을 임기 내 15달러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으나 이마저 사실상 물건너갔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소상공인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집권당 내부에서도 적지 않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50명의 민주당 상원의원 중 최소 8명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미국에선 정부가 직접 임금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도 기업 스스로 소득 분배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다. 자발적이고 경쟁적인 임금 인상을 통해서다. 기업들은 경기가 살아나자 더 나은 직원을 뽑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 전략에 나서고 있다. 직원은 소득을 늘리고 기업은 매출을 확대할 수 있어 ‘윈윈’이다. 큰 부작용도 없다.

'소득주도' 고집한 韓 vs 경제 살려 임금 높인 美 [특파원 칼럼]
한국에서도 고용 및 임금 문제로 떠들썩하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인상된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6.4%, 2019년도엔 10.9% 각각 올렸다. 강제로라도 소득 하한선을 높이면 근로자들이 그 돈으로 소비를 더 할테니 결국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게 될 것이란 소득주도성장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을 더 뽑고 임금을 높이는 건 결국 기업과 경제 상황에 달렸다는 걸 미국이 보여주고 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