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간산업 중요성 눈감은 공정위
“심사가 지연될수록 항공산업 부활이 늦어지는데….” 금융권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합병 결정을 신중히 심사하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말끝을 흐리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슨 얘기일까. 공정위는 올초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에 대한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초 올 6월 승인을 낼 예정이었지만 연말로 미뤄졌다. 연내 결과가 나올지조차 불투명하다. 이렇다 보니 두 항공사 통합의 첫 단계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점도 가늠하기 어렵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시점을 ‘국내외 기업결합 승인이 완료되는 시점’으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통합을 주도한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 일각에선 두 항공사 통합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1999년 현대차와 기아차 합병 사례가 20여 년 흐른 이 시점에 공정위 내부에서 회자된다는 후문도 들린다. 두 업체 합병을 항공사 통합에 빗대 다시는 이런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고 언급하는 일부 간부도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막고 소비자 편익을 보호하겠다는 공정위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두 항공사 결합으로 대형 항공사가 한 개로 줄면서 독점이 우려된다는 우려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항공업은 국가 간 운송 서비스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경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다른 제조업과 달리 국가별 시장 개념이 모호하다.

일각에선 통합에 따른 대규모 구조조정을 우려하지만 산은과 대한항공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한항공이 이를 어기면 산은이 경영권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충분하다. 더욱이 통합 절차가 완료되려면 국내를 비롯해 9개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터키와 태국, 대만에서만 승인이 이뤄졌다. 자국 공정위마저 결합 승인을 미루는 상황에서 어떤 국가가 먼저 승인을 내주려고 할까.

공정위 심사가 늦어질수록 국내 항공산업 부활은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도 “글로벌 항공사들이 ‘포스트 코로나’에 재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이 늦어진다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항공사 통합은 정부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공정거래법 1조엔 부당한 공동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정위의 설립 근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 조항엔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조장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을 공정위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