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이 ‘탄소중립’ 목표연도인 2050년까지 이어지면 필요한 전력설비 투자비용이 139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와 주목을 끈다. 현재 원전 수명을 연장하며 신규 원전을 가동할 때와 비교하면 453조원이 더 든다. 나아가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며 탈원전에서 탈피해 원전 비중을 50%로 끌어올린다면 물경 741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원자핵공학 전공자로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37년간 연구·개발 업무를 해온 현장전문가 이종호 씨의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공급 시나리오’를 보면 무모한 탈원전의 대가는 두려울 정도다. 불필요한 비용이 ‘수백억’ 수준이 아니라 ‘수백조’원이다. 무분별한 태양광 난립에 따른 환경파괴 같은 간접비용은 빼고 설비 계산만도 이처럼 천문학적이다.

탈원전에 따른 비용계산서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논문 은폐 논란까지 빚어졌던 정용훈 KAIST 교수 연구에 따르면 원전수명 20년에 따른 손익이 513조원에 달했다. 뉴욕 증시에도 상장된 한전이 2018~2019년 3조4379억원의 손실까지 내며 국제유가 추이만 바라보는 대표적인 ‘정책리스크 공기업’이 된 것도 국민·국가적 손실이다. 법정으로 간 원전 경제성 조작과 고의적 손실 수사는 또 무엇을 말하고 있나.

여러 번 양보해 탈원전이 당당하다면 최소한 그에 따른 비용이라도 부담하자고 해야 할 텐데, 정부는 그럴 용기도 없다. 압도적인 ‘탈원전 반대’ 여론을 살피느라 전기료 인상요인을 반영도 못 한 채 이번 여름 성수기에도 어정쩡한 동결로 미래 부담만 키웠다. 중장기 비용 계산은커녕, 적절한 가격 조정으로 단기 수요관리도 못 하니 이 폭염에 블랙아웃 위험만 치솟는 것이다.

탈원전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고,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위기다. 소형모듈원전(SMR) 등으로 여권에서조차 문제를 지적하는 엉터리 정책을 고집할 근거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탄소국경세가 발등의 불로 다가오는 등 ‘탄소 리스크’가 급부상하고 있다. 결국 고공행진인 국제유가와 2018년 말 이후 최고치에 오른 LNG 가격에 가슴조이며, 폭염 예보에 울고 웃는 천수답식 전력 수요관리에 급급한 지경이 됐다.

가공의 공포에서 비롯된 탈원전이라는 ‘미신·감성’에서 벗어나 ‘과학·이성’으로 하루속히 복귀해야 한다. 지금 전환한다 해도 10년 만에 원전 확대에 나선 일본이나 ‘원전굴기’를 선언한 중국과의 경쟁이 벅차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