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는 사마귀일까? 실상은 예상과는 정반대다. 2014년 10월 사업을 시작한 두꺼비왕식자재마트는 240평 규모의 성수점을 본산으로 삼아 수도권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네이버 지도’에 두꺼비왕식자재마트라는 상호로 검색되는 곳만 6곳이다. 정확한 매출은 나와 있지 않지만 NICE 기업 정보에 따르면 연 매출은 100억~500억원(2019년 말)으로 나와 있다.
두꺼비왕식자재마트가 이마트의 텃밭에서 성공할 수 있던 건 대형마트 못지 않게 품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면서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은 덕분일 것이다.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성수 상권의 매력도 한몫 했다. 여기에 핵심 요인 하나가 더 있다. ‘소상공인’이라는,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고 애매한 ‘집단의 힘’이다. ‘두꺼비’를 포함해 전국의 대형 식자재마트들은 유통산업발전법이라는 규제가 만든 사각 지대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성장 중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를 명목으로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 휴업을 강제로 도입한 덕분에 식자재마트라는 새로운 유형의 유통업이 ‘돈방석’에 앉게 된 셈이다.
소상공인기본법에 따르면 소상공인이란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제2항에 따른 소기업(小企業) 중 상시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인 기업을 말한다. 다만, 광업 제조업 건설업 운송업을 제외한 기타 업종은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식자재마트 같은 유통업도 기타업종에 속한다.
두꺼비왕식자재마트가 법률적으로 소상공인에 속해 있는 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최소 6개 이상의 점포를 운영하는 슈퍼마켓 체인의 상시 근로자수가 5인 미만일 지는 의문이지만, 상시 근로자가 아닌 임시 고용인들로 필요 인력을 채워 법적인 기준을 맞췄을 수도 있다. 사실, ‘두꺼비’가 소상공인인 지 아닌 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질문이다.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휴업을 하는 동안에 주변에서 혜택을 봐야하는 이들이 모두 소상공인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롯데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킴스클럽 같은 이마트와 동류의 유통업체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
전문가와 일반인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을 평가하거나 외부의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분류라는 인식틀을 사용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책과 규제를 집행하려면 수혜 혹은 징벌을 받을 집단을 나눌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을 지정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이 아니라면 중견·중소기업으로 나뉘고, 그 다음은 소기업과 소상공인으로 분류된다. 소기업은 연매출을 기준으로 업종별로 10억~120억원 이하인 사업체를 말한다.
정책적 편의를 위해 만든 분류표는 때로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곤 한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여기에 꼭 맞는 ‘케이스’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영업 규제의 대상은 명확히 정해놨는데, 법의 적용으로 인한 수혜가 어디로 돌아갈 지에 대해선 불명확하게 정의해놨다. 제3조 유통산업시책 기본방향을 정해 놓은 1항은 ‘유통구조의 선진화 및 유통기능의 효율화 촉진’이고, 2항은 ‘유통산업에서의 소비자 편익의 증진’이다. 두꺼비왕식자재마트가 법의 수혜를 받을만하구나라고 감지할만한 항목은 3·4항이다. 이에 따르면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산업의 지역별·종류별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쯤에서 짚어봐야할 건 유통산업발전법이 태동된 배경이다. 애초 정치인들과 행정 공무원들은 대형마트 주변의 재래 시장 상인이나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땀흘려 일하는 소상공인을 위해서 대형마트에 재갈을 물렸던 것 아니었나. 이런 대의명분에 동의했기에 소비자들도 일요일에 인근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불편을 감수했던 것 아닌가.
소상공인에 관한 애매한 정의는 160조원 규모로 커진 e커머스(전자상거래) 영역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유통산업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디지털 거상(巨商)들이 탄생하고 있다. G마켓, 옥션, 11번가 등 주요 오픈마켓을 주름잡는 판매상들 중에는 연 매출이 100억원을 넘나드는 사업체를 영위하는 이들도 꽤 많다. 최근엔 롯데온, 쓱닷컴이 상품 판매 종류를 늘리기 위해 대형 판매상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e커머스 업계에선 이들을 ‘슈퍼을’이라고 부른다. 계약서상 ‘을’의 지위에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갑 못지 않은 영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e커머스의 온라인 거상들은 오랫동안 쌓아 온 사업 수완에다 광고비 등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여러 플랫폼에 물건을 올려 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수완과 자금력 앞에서 1인 사업자나 초보 창업자가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제 아무리 좋은 물건을 진정을 담아 만들어 팔아도 쇼핑 사이트에 노출이 안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처럼 쇼핑 플랫폼 안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판매상들은 규모면에서 다층적일 수 밖에 없는 데도 현행법률은 대형 플랫폼 안에서 활동하는 판매상을 모두 소상공인 혹은 소기업으로 간주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물건을 파는 업체만 45만개다. 이와 관련, 쿠팡이 최근 계급장 떼고 가격과 품질로 경쟁하라는 의미로 쿠팡마켓플레이스에 도입한 아이템위너 제도를 자진시정키로 한 것은 한번쯤 의미를 되짚어볼만하다. 판매상이 애써 모아 놓은 상품에 관한 사진과 댓글들을 ‘위너’로 불리는 최우수 판매상에게 몰아주는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조치다. 아이템위너의 문제점과 장점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논쟁적으로 다룬 사안이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다만, 자본력에 의해 좌우되는 대형 판매상의 승자독식 구조를 깨기 위해 아이템위너라는 극약처방이 도입됐다는 점 만큼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엔 소상공인 혹은 소기업, 중소기업이라는 집단의 힘 아래 숨어서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예전에 ‘나까마’라는 일본식 표현으로 불리던 이들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 귀금속 시장에는 ‘뒷금’ 거래를 주도하는 나까마라고 불리는 중간 상인들이 많다. 이들은 세금 당국의 그물을 피해 비정상적인 금 거래를 주도한다. 정보 비대칭성을 활용해 중간 유통 단계에서 이득을 취하는 집단들의 위세도 여전히 건재하다. 중고차 시장은 오히려 이들 중간 상인들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갖기 어렵다는 점과 정보를 얻으려면 발품을 팔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을 활용해 중간 유통 상인들은 상당한 차익을 거둔다. 산지에서부터 소비자 밥상에 오르기까지 최소 4~5단계를 갖고 있는 농산물 시장 역시 ‘나까마’들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미국, 유럽 정부가 구글, 아마존 등의 글로벌 플랫폼의 독점을 막겠다며 으름짱을 놓고 있다. 우리도 이 대열에 동참할 태세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일은 막아야 할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편익을 희생하고,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 정부의 규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나라가 보호하겠다는 집단에 대한 규정과 정의가 좀 더 명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