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교육부 폐지할 대선주자는 없는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캐나다, 칠레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새로운 디지털 무역협정 초안 마련에 착수했다.” ‘아시아의 짜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디지털 분야 경제 플랜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나온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다. 사실이라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이후 미국이 디지털 무역협정으로 아시아 지역 복귀를 선언하는 것이 된다. 미국은 왜 디지털 협정을 들고 아시아 쪽으로 진군하는 것일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은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운명을 극명하게 바꿔놓을 전망이다. 코로나로 날개를 단 디지털 전환으로 무역 비용은 더욱 떨어지고 있고, 무역 품목의 지도도 확 바뀌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무역은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가 비교우위를 좌우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성공하는 국가가 GVC 재편을 주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탈락하고 말 것이란 얘기다. 코로나 이후 필요성이 커졌다는 국내 공급망 확충도 임금 비용을 상쇄할 정도로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국가만이 해낼 것이다. 디지털 무역으로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는 서비스 분업, 상품과 서비스가 결합된 GVC 확대 역시 디지털 전환 국가의 잔치가 될 것 또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이 바꿔놓을 산업과 무역 지형을 상상해 보면 미국이 디지털 협정으로 아시아 지역으로 들어오는 의도가 자명해진다. 상품과 서비스를 분리하는 기존의 무역규범(GATT와 GATS), 국경 간 교역을 전제로 하는 양자·다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는 상품과 서비스의 동시 소비·공급과 초국경이 특징인 디지털 무역을 포괄하기 어렵다. 미국은 캐나다·멕시코와의 협정(USMCA)에 담은 디지털 무역 조항, 미·일 디지털 무역협정의 여세를 몰아 호주·싱가포르 디지털 무역협정,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디지털 무역협정을 모두 엮는 디지털 연합체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국가들을 연결하면 표준이 중요한 디지털 기술패권 전쟁에서 중국을 포위하고, 아시아를 발판으로 유럽연합(EU)과의 디지털 무역규범 경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읽힌다. 미국, EU, 중국 어느 쪽이든 아시아 지역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쪽이 국제 규범을 주도할 것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일본은 일본대로 미국이 그리는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핵심 위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GVC 재편은 한마디로 디지털 영토 전쟁이다. 누가 디지털 시대 GVC를 주도할지 치열한 전략게임이 시작됐다. 한국은 이 전쟁에서 싸울 준비가 돼 있는가. 미국이 디지털 무역협정을 맺겠다는 인도태평양 국가 명단에 한국은 안 보인다. 정부는 올해 싱가포르와 디지털 무역협정을 맺고 내년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 디지털 무역협정에 동참할 계획이라지만, 디지털 무역협정에 속도가 붙더라도 본질적인 문제가 남는다. 한국은 디지털 영토를 위해 싸울 전사(戰士)들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전사들이 있더라도 제대로 무장하지 못하면 당장 인공지능(AI) 등에서 한국의 몫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주요국들이 서둘러 소프트웨어(SW)·AI 교육에 올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초·중·고 학생들이 주역이 될 2030~2040년대로 가면 디지털 무역규범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국가 간 데이터 이전 자유화, 공공 데이터 상호접근 보장, 소스 코드 및 알고리즘 공개 강제 금지, 데이터 저장 장소 제한 금지 등과 같은 조건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한다. 밀리는 국가는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하지 말란 법도 없다.

7년 만에 초·중·고 교육과정 개정 기회가 왔지만, 불행히도 한국의 교육부는 시대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현 세대의 기본 책무이자 최상위 국가전략이어야 할 미래 세대 생존을 위한 교육보다 기득권의 저항을 더 걱정한다. 2022 교육 과정을 수술하지 않으면 앞으로 7년이 아니라 70년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교육부를 해체해서라도 교육혁신에 승부를 걸겠다는 대선주자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