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지렁이의 일생, 한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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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지렁이의 일생
한상순
한평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좋은 땅 일구느라
수고한 지렁이
죽어서도 선뜻
선행의 끈 놓지 못합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
밭고랑 너머
개미네 집으로 실려 갑니다.
[태헌의 한역]
地龍一生(지룡일생)
土豆田辣椒園(토두전랄초원)
盡平生歸本元(진평생귀본원)
身墾美地多辛苦(신간미지다신고)
死亦不釋善行絛(사역불석선행조)
今方絶氣一地龍(금방절기일지룡)
見載越壟向蟻巢(견재월롱향의소)
[주석]
* 地龍(지룡) : 지렁이. 지렁이를 ‘디룡이’, ‘지룡이’, ‘지릉이’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지렁이라는 말이, 지렁이를 뜻하는 한자어인 이 ‘地龍’에서 왔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一生(일생) : 일생, 생애.
土豆田(토두전) : 감자밭. / 辣椒園(날초원) : 고추밭.
盡平生(진평생) : 평생을 다하다, 일생을 다하다. / 歸本元(귀본원) : 본원으로 돌아가다, 죽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身(신) : 몸, 자신. / 墾(간) : ~을 개간하다, ~을 일구다. / 美地(미지) : 아름다운 땅, 좋은 땅. / 多辛苦(다신고) : 많은 수고, 수고가 많다. ‘辛苦’는 본래 ‘맵고 쓰다’는 말인데, 여기서 고생, 수고라는 뜻이 나왔다.
사(死) : 죽다. / 亦(역) : 또한, 역시. / 不釋(불석) : ~을 놓지 않다. / 善行絛(선행조) : 선행의 끈.
今方(금방) : 금방, 이제. / 絶氣(절기) : 숨이 끊어지다, 숨을 거두다. / 一(일) : 하나, 한 마리.
見載(견재) : ~에 실리다. ‘싣다’의 피동형이다. 여기에 쓰인 ‘見’은 피동을 유도하는 일종의 조동사이다. / 越壟(월롱) : 밭고랑을 넘다. / 向(향) : ~로 향하다, ~를 향해 가다. / 蟻巢(의소) : 개미집.
[한역의 직역]
지렁이의 일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한평생 다하고 본원으로 돌아가나니
좋은 땅 일구느라 몸이 수고 많았는데
죽어서도 선행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지금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가
실려서 밭고랑 너머 개미집 향합니다
[한역 노트]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렁이는 그 어떠한 생명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평생 동안 하는 일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렁이 스스로가 이렇게 착하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지각이야 없겠지만, 자기 천성에 따라 살기 위해 애를 쓴 것이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은 존재의 축복이라고 할 만하다. 태생이 해충(害蟲)이어서 태어난 순간부터거나 어느 시점부터 줄기차게 사람 혹은 사람이 고안한 장치에 의해 죽어가는 적지 않은 생명체에 비하면 축복 받은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분명 축복받은 존재인 이 지렁이는 그러나 생긴 모양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혐오시 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렁이를 징그럽게 여기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렁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의 눈에는 지렁이가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도 지렁이를 전혀 징그럽게 여기지 않는 부류 역시 적잖이 있다. 그럼에도 지렁이가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징그럽게 보여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지렁이가 다른 존재에게 끼치는 거의 유일한 해(?)가 아닐까 싶다. 시인이 이 동시(童詩)를 짓게 된 까닭이, 지렁이가 정말로 고맙고 소중한 존재임에도, 징그럽게 보인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아이들에게 외면되고 종국에는 잊혀지게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렁이의 일생을 예찬한 원시를 놓고 보자면, 1연과 2연은 시인이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묘사한 시구이고, 3연 이하는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상상을 노래한 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3연은 이 시의 주제가 되는 연이자 4연과 5연을 이끄는 도입부인데, 5연으로 이루어진 전체 시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전반부와 후반부의 연결고리 역할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시의 후반부 가운데 역자의 눈길이 특별히 머무는 곳은, 원시의 5연에서 지렁이가 “실려 갑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다. 실려 간다는 것은 함부로 다루어져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모셔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죽은 지렁이가 일개미들의 어깨에 실려 대접 받으며 간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나 미물에게나 음식은 언제나 하늘이다. 개미들이 자신들의 하늘인 지렁이의 시신을 모시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하늘인 먹거리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철학이 은연중에 투영된 시어로도 여겨진다. 이 대목은 또 지렁이의 전신(全身) 공양이 오롯이 수용되는 거룩한 의식(儀式)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지렁이한테 오줌을 싸면 ‘고추’가 붓는다고 겁을 준 할머니 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길을 가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면서도, 지렁이가 있나 없나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끝내 버릇이 되어버렸던 기억이 아직껏 생생하기만 하다. 지렁이에 대한 기억의 조각조차 이렇게 추억이 되니 세상 무슨 일인들 추억이 되지 않으랴만, 그저 이로운 벌레인 익충(益蟲)으로만 알아온 지렁이가 오늘날 우리나라 축산법으로는 가축(家畜)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조차 때로는 지렁이가 뒤집는 흙처럼 뒤집히기도 한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자는 5연 11행으로 된 원시를 육언(六言) 2구와 칠언(七言) 4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한역하였다. 육언 2구는 매구에 압운하였으며, 칠언 4구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園(원)’·‘元(원)’, ‘絛(조)’·‘巢(소)’가 된다.
2021. 7.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한상순
한평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좋은 땅 일구느라
수고한 지렁이
죽어서도 선뜻
선행의 끈 놓지 못합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
밭고랑 너머
개미네 집으로 실려 갑니다.
[태헌의 한역]
地龍一生(지룡일생)
土豆田辣椒園(토두전랄초원)
盡平生歸本元(진평생귀본원)
身墾美地多辛苦(신간미지다신고)
死亦不釋善行絛(사역불석선행조)
今方絶氣一地龍(금방절기일지룡)
見載越壟向蟻巢(견재월롱향의소)
[주석]
* 地龍(지룡) : 지렁이. 지렁이를 ‘디룡이’, ‘지룡이’, ‘지릉이’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지렁이라는 말이, 지렁이를 뜻하는 한자어인 이 ‘地龍’에서 왔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一生(일생) : 일생, 생애.
土豆田(토두전) : 감자밭. / 辣椒園(날초원) : 고추밭.
盡平生(진평생) : 평생을 다하다, 일생을 다하다. / 歸本元(귀본원) : 본원으로 돌아가다, 죽다.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身(신) : 몸, 자신. / 墾(간) : ~을 개간하다, ~을 일구다. / 美地(미지) : 아름다운 땅, 좋은 땅. / 多辛苦(다신고) : 많은 수고, 수고가 많다. ‘辛苦’는 본래 ‘맵고 쓰다’는 말인데, 여기서 고생, 수고라는 뜻이 나왔다.
사(死) : 죽다. / 亦(역) : 또한, 역시. / 不釋(불석) : ~을 놓지 않다. / 善行絛(선행조) : 선행의 끈.
今方(금방) : 금방, 이제. / 絶氣(절기) : 숨이 끊어지다, 숨을 거두다. / 一(일) : 하나, 한 마리.
見載(견재) : ~에 실리다. ‘싣다’의 피동형이다. 여기에 쓰인 ‘見’은 피동을 유도하는 일종의 조동사이다. / 越壟(월롱) : 밭고랑을 넘다. / 向(향) : ~로 향하다, ~를 향해 가다. / 蟻巢(의소) : 개미집.
[한역의 직역]
지렁이의 일생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한평생 다하고 본원으로 돌아가나니
좋은 땅 일구느라 몸이 수고 많았는데
죽어서도 선행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지금 막 숨을 거둔 지렁이 한 마리가
실려서 밭고랑 너머 개미집 향합니다
[한역 노트]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렁이는 그 어떠한 생명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평생 동안 하는 일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렁이 스스로가 이렇게 착하고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지각이야 없겠지만, 자기 천성에 따라 살기 위해 애를 쓴 것이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은 존재의 축복이라고 할 만하다. 태생이 해충(害蟲)이어서 태어난 순간부터거나 어느 시점부터 줄기차게 사람 혹은 사람이 고안한 장치에 의해 죽어가는 적지 않은 생명체에 비하면 축복 받은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분명 축복받은 존재인 이 지렁이는 그러나 생긴 모양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혐오시 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렁이를 징그럽게 여기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렁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의 눈에는 지렁이가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도 지렁이를 전혀 징그럽게 여기지 않는 부류 역시 적잖이 있다. 그럼에도 지렁이가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징그럽게 보여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소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지렁이가 다른 존재에게 끼치는 거의 유일한 해(?)가 아닐까 싶다. 시인이 이 동시(童詩)를 짓게 된 까닭이, 지렁이가 정말로 고맙고 소중한 존재임에도, 징그럽게 보인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아이들에게 외면되고 종국에는 잊혀지게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렁이의 일생을 예찬한 원시를 놓고 보자면, 1연과 2연은 시인이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묘사한 시구이고, 3연 이하는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상상을 노래한 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3연은 이 시의 주제가 되는 연이자 4연과 5연을 이끄는 도입부인데, 5연으로 이루어진 전체 시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전반부와 후반부의 연결고리 역할도 잘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시의 후반부 가운데 역자의 눈길이 특별히 머무는 곳은, 원시의 5연에서 지렁이가 “실려 갑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다. 실려 간다는 것은 함부로 다루어져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모셔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죽은 지렁이가 일개미들의 어깨에 실려 대접 받으며 간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나 미물에게나 음식은 언제나 하늘이다. 개미들이 자신들의 하늘인 지렁이의 시신을 모시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하늘인 먹거리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철학이 은연중에 투영된 시어로도 여겨진다. 이 대목은 또 지렁이의 전신(全身) 공양이 오롯이 수용되는 거룩한 의식(儀式)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지렁이한테 오줌을 싸면 ‘고추’가 붓는다고 겁을 준 할머니 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길을 가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보면서도, 지렁이가 있나 없나를 유심히 살피는 것이 끝내 버릇이 되어버렸던 기억이 아직껏 생생하기만 하다. 지렁이에 대한 기억의 조각조차 이렇게 추억이 되니 세상 무슨 일인들 추억이 되지 않으랴만, 그저 이로운 벌레인 익충(益蟲)으로만 알아온 지렁이가 오늘날 우리나라 축산법으로는 가축(家畜)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우리의 지식이나 상식조차 때로는 지렁이가 뒤집는 흙처럼 뒤집히기도 한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자는 5연 11행으로 된 원시를 육언(六言) 2구와 칠언(七言) 4구로 이루어진 고시로 한역하였다. 육언 2구는 매구에 압운하였으며, 칠언 4구는 짝수구마다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園(원)’·‘元(원)’, ‘絛(조)’·‘巢(소)’가 된다.
2021. 7. 27.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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