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의 공세가 잠시 주춤했던 지난해, 중견기업에 조찬특강을 나갔.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이미 진입한 경영환경에 팬데믹까지 겹쳐 많은 기업들이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위기의식 속에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단연 시장의 화두였다. 강의를 요청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선진기업들의 조직문화, 특히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들을 찍어서 그들의 '에자일(agile) 조직' 사례를 중심으로 특강을 주문했다. 특강과 질의응답을 진행한 후에 구성원들로부터 받은 익명의 피드백 건은 필자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만족스러웠던 표정과 피드백 내용과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피드백의 대부분은 "우리 사장님과 경영진의 마인드 자체에 변화가 없다면, 이런 형태의 프로그램은 정말 무의미하다" 소리였다.

다수의 기업들은 조직의 변화, 특히, 새로운 기업문화를 형성·구축할 보통은 외부로 눈을 돌려 무언가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이나 프로젝트를 주문하곤 한다. 김빠지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거의 용두사미로 끝나기 마련이다. 여전히 우리 기업의 현주소가 민첩하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변신하기에는 버거운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위계조직과 보고체제로 유연성이 떨어지기에 선진사례의 씨앗은 뿌리지만 현재 토양에서는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가장 변수는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임원들의 외적 메시지가 아닌 내재된 철학과 행동이다. 앞서 중견기업의 경우도 에자일 조직을 외쳤지만,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밤늦게 사무실을 떠나는 직원만이 최고로 인정받는 오랜 관성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임원들은 먼저 조직의 체질을 바꿔줘야 한다. 선진기업의 '베스트 프렉티스' 벤치마킹에 앞서 잘못된 제도나 관행의 제거가 우선돼 한다. 무엇이 조직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냉철히 숙고하고 그것을 폐기시켜야 한다. 해전 필자는 전체적으로 신체리듬이 무너져 건강에 적신호가 적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과음이나 과식을 하더라도 보양식과 영양제 먹고 운동하며 흘리면 해결되었지만 처방이 이상 통하지 않았다. 남들이 좋다는 음식을 섭취하기 전에 나의 체질을 정확히 진단해본 , 먼저 체질과 맞지 않는 음식을 금식하며 6개월 이상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몸의 독소가 빠져나갔고 과체중도 해결됐다. 그때부터 몸에 맞는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신체리듬과 건강지표가 정상적으로 회복됨을 확인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도입한 소위 선진 글로벌기업의 프로그램이 기대 만큼의 효력을 거두지 못한 상황을 차례 경험했다. 급한 마음에 다시 그럴싸한 제도 도입을 주문할 것인가. 2019년말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디지털시대에 임원이 해야할 새로운 역할과 관련해 "조직 내의 건강한 습관과 루틴을 만들어주는 개척자 역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조직 전체의 구조적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 제시했다. 김태규 고려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팀제 경영은 외환위기 이후 기존의 산업지도가 엎어지고 관성이 파괴되고 나서야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적한 부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기에 무참히 판이 깨진 후에 파도에 밀려 변화될 것인지, 아니면 선제적으로 체질을 바꾸고 변화를 이끄는 임원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남은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기업의 조직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주제는 전세계적으로 '핫 토픽'이다. 새로운 목적의식, 새로운 개념의 구성원 몰입도, 강화된 다양성과 포용성, 연결과 소통, 그리고 다시 에자일 조직 등이 거론된다. 결국 이 모든 키워드는 조직문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팬데믹의 위기에 임원들이 갇혀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조직의 정점에 있으며 기업의 조직문화 형성과 그로 인한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체적인 그룹이다.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에임즈 인터내셔널 코리아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