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또 전셋값 '폭탄'…물량 예측도 못하는 정부
지난해 7월 31일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의 여파로 최근 1년 새 전셋값이 폭등했다. 내년에는 시장 불안이 더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하반기 계약갱신청구권이 행사된 계약이 내년 하반기부터 만료돼 시장에 쏟아져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어느 지역에서 얼마만큼의 신규 전세계약이 예정돼 있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말 임대차 2법이 시행된 이후 연말까지 전국에서 이뤄진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34만4903건으로 집계됐다. 서울만 놓고 보면 7만8508건이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2년 임대 기간에 한 차례 더 계약을 연장해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때 임대료 상승폭이 기존의 5%를 넘지 못하도록 한 게 전·월세상한제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8~12월 이뤄진 계약 중 상당수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인 것으로 추정한다.

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은 내년 8월부터 순차적으로 만료된다. 문제는 만료된 물량은 기존 임대료보다 두세 배는 더 줘야 할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다. 임대차 2법 시행 후 전세 물량이 줄고 임대료를 미리 올려 받으려는 집 주인이 늘면서 전셋값이 폭등했다. 국민은행 월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25.7%(3억4502만원→4억3382만원), 서울은 24.5%(5억1011만원→6억3483만원) 상승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집주인이 4년 동안 못 올리는 전세금을 한꺼번에 받으려고 할 것”이라며 “갱신계약이 시세보다 낮은 점을 감안하면 기존보다 전세가가 두 배 넘게 올라가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내년 하반기 전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정부는 시장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계약의 세부내용을 신고하도록 한 전·월세신고제가 임대차 2법 시행 후 1년 가까이 지난 올 6월부터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1일 서울 100대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5월 기준) 확정일자 신고서를 분석한 결과 갱신율이 57.2%에서 77.7%까지 높아졌다고 자찬했다. 하지만 의무기재 사항이 아니다 보니 이 가운데 몇 건이 청구권 행사 물량이고 몇 건이 양자합의에 의한 갱신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두 달여간 쌓인 전·월세신고 통계도 아직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월세신고제를 먼저 시행해 임대차 시장의 데이터를 축적한 뒤에 임대차 2법을 시행하는 게 옳았다”며 “순서가 뒤바뀌면서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