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어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이 한마디에 전국이 들썩거렸다.

본뜻은 아파트 공급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말이었지만 국민들은 ‘빵’이란 단어만 기억했다.

마리 ‘빵’투아네트, 1인 2빵 구속, 김현미의 빵은 뻥 같은 비난과 조롱도 쇄도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반응한 것일까?

경영자나 정치인들이 공개 석상에 나서기에 앞서 조금만 더 고민하고 발언했으면 좋겠다. 청중들이 어떤 자세로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해봐야 한다.

자발적으로? 억지로? 현대인들은 누구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인지적 구두쇠들이다. 그래서 설득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생각의 양(개수)과 질(성격)의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페티와 캐시오포(Petty & Cacioppo)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신중하게 평가할 동기가 없다고 가정하고, 수용자의 정교화 가능성(받아들이는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려는 노력의 정도)에 따라 다른 경로를 거쳐 태도가 형성된다는, 정교화 가능성 모델(ELM: Elaboration Likelihood Model)을 제시했다.

수용자가 더 많이 생각해야 할 때는 중심경로(central route)를 거쳐 설득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주변경로(peripheral route)를 통해 설득이 이루어진다는 것.

쉽게 말해서 중심경로가 고속도로의 주행선이라면 주변경로는 갓길이다.

미국의 생활용품회사 유니레버는 지난 2004년부터 몇 년 동안 ‘진정한 아름다움(Real Beauty)’ 캠페인을 전개했다.

20개국 6,400여명의 여성에게 사전 설문조사를 해보니, 96%가 스스로를 아름답지 않다고 했고 오직 2%만 자신이 아름답다고 했다.

반면에 다른 여성이 아름답다는 응답은 80%에 이르렀다. 남의 떡을 크게 보는 현상에 주목한 도브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자는 ‘내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진정한 아름다움’ 캠페인은 그 원조 격이다.

도브 광고 ‘흰머리냐 우아함이냐’ 편(2006)에서는 정교화 가능성 모델에서 말한 중심경로를 통해 여성들을 설득했다.

광고 모델은 흰머리가 수북한 여성이다. 제품에 대한 설명도 없다. “□흰머리(grey)? □우아함(gorgeous)?”

여성 오른쪽에 질문을 제시하고 네모 칸에 표시하라고 했을 뿐이다. 얼굴은 늙어 보이지 않는데 벌써 은발이 된 여성을 염색해야 할 사람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흰머리 자체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고 봐야 할지, 소비자들은 망설이고 고민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더 깊이 숙고해보라고 권유하는 광고다.

광고에서는 빅 모델이 아닌 평범한 여성을 써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아름다움의 정의를 무시해버렸다. 광고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더 적극적으로 정보처리를 하라고 제안했다.

헐리웃 스타들의 긴 금발 머리를 동경하는 여성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누가 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라는 광고 메시지였다.

남들이 강요하는 미의 기준을 내려놓으라고 권유한 이 광고에서는 정교화 가능성 모델에서 말하는 중심경로를 통해 여성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도브 광고 ‘흰머리냐 우아함이냐’ 편 (2006)
도브 광고 ‘흰머리냐 우아함이냐’ 편 (2006)
도브 광고와는 달리 미국유가공협회교육프로그램(MilkPEP: Milk Processor Education Program)의 광고 ‘우유 있어요?’ 캠페인에서는 주변경로를 통한 설득 전략을 구사했다.

우유 소비량이 떨어지자 1995년에 조사를 실시했다. 아이들은 우유에 대해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저 그런 주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광고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우유 콧수염 비주얼과 “우유 있어요?(Got Milk?)”라는 슬로건이 우유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줄 아이디어로 채택됐다.

우유에 대한 관심을 끌고 건강을 강조하기 위한 설득의 주변 단서로 우유 콧수염이 활용됐다.

여러 시리즈 중에서 ‘마그 헬젠버거’ 편(2008)을 보자. 영화배우 마그 헬젠버거(Marg Helgenberger)가 출연한 광고에서는 우유를 마신 모델의 입술에 우유 자국을 남겼다.

마치 남자의 콧수염 같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슬쩍 보기만 해도 기억에 남을만한 우유 콧수염이다.

보통의 우유 광고라면 우유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이 광고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변 단서를 광고에 활용했다.

우유를 얼마나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기에 여성 모델의 윗입술에 우유 자국이 남아 콧수염을 만들었을까 싶은 호기심을 남겼다.

주변 단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일주일 후에 마트에 간 소비자들은 콧수염 광고를 떠올리며, 막연한 기억에 의지해 우유를 사려고 유제품 코너로 향하게 된다.

1995년 이후 20여 년 동안 운동선수, 영화배우, 슈퍼모델 등 까지 300명이 넘는 유명인이 광고 시리즈에 출연했다.

350여 종류의 우유 콧수염 광고가 미국 전역에 노출됐다. 많은 광고상을 수상한 이 캠페인은 20여 년 동안 우유 판매량을 늘리며 광고계의 대표적인 성공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유 있어요?’ 시리즈 중 ‘마그 헬젠버거’ 편(2008)
‘우유 있어요?’ 시리즈 중 ‘마그 헬젠버거’ 편(2008)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정교화(Elaboration)이다.

정교화란 심사숙고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게 할 것인지 메시지의 양과 질을 섬세하게 다듬는 과정이다.

경영자나 정치인들도 발언하기에 앞서 정교화 가능성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기를 바란다. 자발적으로 그 발언을 듣고 싶은 사람은 중심경로를 활용할 터.

정보처리 의지가 높은 사람들이 많을 경우에는 메시지 내용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핵심 주제 위주로 연설을 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에 정보처리 의지가 낮은 사람들이 많다면 유머 코드를 적절히 섞어가며 특이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들 졸고 있으리라.

거의 모든 연설에서는 청중들의 정보처리 의지가 낮기 때문에 주변경로를 거치는 설득을 시도해야 한다.

메시지 내용과 무관할지라도 주변 단서(peripheral cues)를 잘 활용해야 한다. 유머, 옷차림, 유행어, 손짓, 눈 맞춤 같은 긍정적인 주변 단서는 비록 일시적일지라도 긍정적인 태도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김현미 전 장관의 ‘빵’은 부정적인 주변 단서였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에 나오는 대사다.

이 말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바꿀 수 있겠다.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To think, or not to think?),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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